원·달러 환율,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4개월여 만에 1360원대 돌파한국 경기 침체 전망… 스테그플레이션 우려원·달러 환율 안정 위해서는 대외 불확실성 리스크 해소 절실
  • ▲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원달러 환율이 1,360원을 돌파한 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정상윤 기자
    ▲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원달러 환율이 1,360원을 돌파한 2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전광판에 환율이 표시돼 있다. ⓒ정상윤 기자
    원·달러 환율이 잇따라 연고점을 경신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4개월여 만에 처음으로 1360원대를 돌파하면서 1400원대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4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지난 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한때 1363.0원까지 고점을 높이고 1362.6원에 거래를 마쳤다.

    환율이 1360원대까지 오른 것은 금융위기 당시인 지난 2009년 4월 21일(고점 기준 1367.0원) 이후 처음이다. 금융위기급으로 원화 가치가 하락했다는 의미다.

    환율은 지난 6월 23일 13년 만에 1300원을 돌파한 이후 7월 6일 1310원, 7월 15일 1320원, 8월 22일 1330원·1340원, 8월 29일 1350원 선을 차례로 넘었다.

    최근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는 미국 달러의 강세가 주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고강도 긴축 의지를 드러내면서 달러 가치가 뛰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다른 통화들도 가치가 내려갔으며 원화 가치 하락 폭은 유로, 엔, 위안 당 다른 통화에 비해 더 컸다.

    최근의 '킹달러'(달러 초강세)를 촉발한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잭슨홀 미팅' 발언 이후 변동 폭을 비교해보면 원화 가치 하락이 눈에 띄게 가파르다.

    원·달러 환율은 잭슨홀 미팅이 열렸던 지난 8월 26일부터 9월 2일까지 1주일간 2.35% 뛰었다.

    반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같은 기간 0.7% 올랐으며 유로화는 달러 대비 0.13% 내렸다. 엔·달러는 1.89%, 위안·달러는 0.40% 올랐다.
  •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뉴데일리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뉴데일리
    원·달러 환율이 금융위기급으로 치솟으면서 한국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환율이 고물가·고금리를 부르고 무역수지 등 대외지표에도 악영향을 미치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이 커지고 있는 것.

    고환율은 물가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원화의 가치 하락이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국내 물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비록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7%로 7개월 만에 상승률 고공 행진을 끊어냈지만, 산유국들의 원유 감산 움직임과 우크라이나 사태 동향 등 대외변수가 커진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부담스러운 요인이다.

    고환율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결정 과정에서도 상승 압력으로 작용한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우리나라를 큰 폭으로 웃돌면 외국인 투자 자금 유출은 물론 원화 약세, 수입 물가 상승으로 국내 물가 오름세가 커지는 만큼 한은으로서는 기준금리 인상 압력을 더 크게 받을 수 밖에 없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7일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의 긴축 강화 지속 연설 직후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보다 금리 인상을 먼저 종료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과거와 달리 환율 상승은 국내 기업에도 큰 호재로 작용하지 못한다.

    특히 달러로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을 지급해야 하는 항공사들은 고환율의 부담을 크게 받고 있다.

    국내 주력 산업인 메모리반도체 업계 또한 미국이 추가로 금리 인상을 단행할 경우 하반기 업황 악화가 더욱 가속할 것이라는 관측으로 인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원유 도입 과정에서 대규모 채권을 발행하는 정유업계는 금리 인상에 따른 이자 부담이 늘고, 자동차 업계는 환율 상승에 따른 가격 경쟁력으로 매출이 증가할 수는 있지만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 또한 늘기 때문에 호재로만 보기는 어렵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은 원자재 가격과 환율 변동이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 분석에서 원자재 가격과 원·달러 환율이 각각 10% 상승하는 경우 수입은 3.6% 증가하는 반면 수출은 0.03% 늘어나는 데 그친다고 분석했다. 원자재 가격과 환율이 동시에 상승할 경우, 수출보다 수입 증대 효과가 더 크다는 것이다.

    실제 8월 무역수지가 100억달러 가까운 적자를 내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환율이 꼽힌다. 무역수지 적자가 심화돼 경상수지도 위험해질 경우, 환율이 다시 상승하는 악순환으로 접어들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선 대외신인도의 안전판 역할을 하는 외환보유액도 고환율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7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4386억1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전월 말(4382억8000만달러)보다 3억3000만달러 증가했지만, 전고점이었던 지난해 10월 4692억 달러보다는 6.6% 감소했다.

    고환율이 고물가·고금리를 부르고 수출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 침체 속에 물가만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질 전망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산하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최근 발표한 '스태그플레이션 경험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올 하반기 경제성장률이 2%대 초반까지 떨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하이투자증권은 지난 2일 보고서에서 최근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 하는 원인으로 주요국의 긴축 강화 움직임과 엔화 가치 하락, 중국의 코로나19 방역 정책으로 인한 경기 우려 등 대외변수를 꼽았다. 원·달러 환율이 안정을 찾기 위해서는 대외 불확실성 리스크 해소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달러 강세 상황에서 외환보유액을 헐어 달러를 내다 파는 행위 역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위기 때는 무역수지 적자가 곧바로 경상수지 적자를 증폭시켰지만, 지금은 무역수지 적자와 경상수지가 다르게 나온다"면서 "전체적인 틀에서는 국제기구나 미국 등 주요국에서 우리나라를 평가할 때 외환 건전성에도 문제가 없고 충분한 외화보유고도 있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2일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우리의 대외 재무 건전성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할 상황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추 부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주현 금융위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참석하는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를 5일 열다. 참석자들은 외환시장 등 금융시장 전반에 대해 논의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