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산업 흥국생명 유상증자 참여 두고 비판 제기“이호진 전 회장 등 대주주 위해 소액주주 희생” 업황둔화로 현금창출력 저하… 투자계획 영향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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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광그룹의 섬유·화학 계열사 태광산업이 흥국생명 유상증자에 참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흥국생명의 자본 확충은 필요하나 이는 대주주 소유의 상장사가 아닌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등 오너일가의 사재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

    12일 재계에 따르면 태광산업은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이와 관련 오는 13일 이사회와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해당 안건을 의결할 것으로 알려졌다. 제 3자 배정 형태로, 흥국생명이 발행하는 약 4000억원 규모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인수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시장에서는 흥국생명이 만기가 최대 1년인 환매조건부채권(RP)을 상환하고 추가로 자금을 조달하고자 유상증자를 실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환매조건부채권은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 다시 사들인다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경과 기간에 따라 소정의 이자를 붙여 되사는 채권을 말한다. 

    지난달 흥국생명은 2017년 기발행한 5억달러의 신종자본증권(영구채)에 대해 조기상환을 연기한다고 밝혔다가 시장이 혼란에 빠지면서 상환하기로 번복했다. 신종자본증권은 만기가 30년 이상으로 길지만 통상 3년이나 5년이 지나는 시점에 금리가 높아지면서 조기상환할 수 있는 조건이 부여돼있다. 이에 따라 조기상환권을 행사하는 게 관례로 여겨져왔다. 

    하지만 금리인상 등 여파로 새 외화 영구채 발행이 어려워진 흥국생명은 조기상환을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는 시장에 흥국생명의 재무상태가 어렵다는 신호로 해석됐고 국내 금융사들이 발행하는 외화표시채권의 신뢰도 급락으로 이어졌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흥국생명은 당시 시중은행으로부터 환매조건부채권 형식으로 4000억원을 발행하고 그룹으로부터 1600억원을 지원받아 조기상환을 이행하기로 했다. 

    당시 흥국생명 측은 “이번 결정은 최근 조기상환 연기에 따른 금융시장 혼란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며 “흥국생명 대주주인 태광그룹도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자본확충을 지원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일단락되는 것 같았던 흥국생명 리스크는 태광산업이 유상증자 지원에 나서기로 하면서 그룹 전체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현재 태광산업의 주요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과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등 시민단체는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지원을 두고 거센 반발에 나선 상황이다. 이들은 연결고리가 전무한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태광산업이 참여하는 것은 단순히 이 전회장 등 오너일가를 살리기 위한 방편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흥국생명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이 지분 56.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100%에 달하는 오너일가의 회사다. 반면 태광산업은 이 전 회장 지분 29.45%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54.53%에 불과하다. 이어 트러스톤자산운용이 지분 5.8%, 소액주주 3000여명이 지분 48.73%를 갖고 있다.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주식을 1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사실상 두 회사의 연결고리는 이호진 전 회장이 대주주라는 점 뿐이다. 트러스톤은 유증 참여가 현실화 되는 경우 법적 절차를 포함한 모든 수단을 강구해 태광산업 주주로서 권리를 행사한다는 방침이다. 

    유증 참여의 적법성 외에도 태광산업의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태광산업은 올해 3분기 말 연결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이 6251억원으로 유상증자에 참여한다고 해서 당장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다만 올해 들어 섬유‧화학 업황이 부진을 겪으면서 태광산업 자체의 현금 창출력도 저하된 상황이다. 태광산업은 2분기 연결기준 78억원의 영업손실을 냈고, 3분기에도 영업손실 334억원을 내며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다. 

    태광산업이 연결기준 영업손실을 낸건 2012년 2분기 이후 처음이다. 3분기말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 또한 –785억원으로 마이너스로 전환됐다. 특히 태광산업은 그간 현금자산을 본업 경쟁력 강화에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어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경우 투자 등 미래 전략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경제개혁연대 관계자는 “흥국생명의 주주가 아닌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것은 대주주의 책임을 대신 떠안는 것”이라면서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의 상환전환우선주에 투자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불분명하나 흥국생명의 대주주들은 사재출연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는 이호진 전 회장 등 흥국생명 대주주가 져야할 책임을 태광산업이 대신 부담하는 것이며, 사실상 이 전 회장 일가가 지분 100%를 보유한 흥국생명을 계열회사가 지원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현재 태광산업이 흥국생명의 유상증자에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면 즉각 중단해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태광그룹 관계자는 “아직 유상증자 참여나 이사회 개최 등은 정해진 바가 없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