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기소건수 11건에 불과… 최고경영자 처벌‘0’정의 모호·인과관계 불명료… 해석 및 적용 어려워예방 중삼 로드맵 내놨지만… 처벌 가중·모호 여전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오는 27일이면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1년을 맞는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에도 사업장의 사망사고가 크게 줄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면서 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9일 재계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실행 이후에도 현장의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입법조사처의  ‘2023 올해의 이슈’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1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그해 상반기 재해율은 전년과 비교해 0.31%로 같았다. 산재로 사망한 근로자가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할 때 사용하는 사망만인율(사망자수의 1만배를 전체근로자 수로 나눈 값)은 0.01%포인트 감소하는 데 그쳤다. 

    책임자 처벌을 통해 산업재해를 줄이자는 취지였지만 사고 발생 후 형벌을 부과하는 규제위주의 정책으로는 효과가 미미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작년 고용노동부가 송치한 33건 가운데 기소된 건수는 11건에 불과했다. 처벌대상으로 특정된 최고경영자가 처벌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첫 수사 대상이 된 삼표산업의 양주 채석장 사고는 약 1년째 공회전 중이다.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첫 기소된 두성산업도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한 상태다. 두성산업의 변호인단은 중대재해법에 대해 헌법상 명확성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 평등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대산업재해 및 중대시민재해 개념에 대한 정의 규정의 모호함, 인과 관계 확정의 불명료성, 처벌 규정의 해석의 어려움 등에 따라 해석과 적용에 상당한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 점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한 대기업 법무팀 관계자는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은 통상적 개념과 불일치하거나 모호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이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를 수범자가 알 수 없다면 법 집행 당국에 의한 자의적 집행이 가능해 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작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의 징역형 처벌을 내리도록 한 법안이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24년 1월 27일부터 적용된다.

    한국비교노동법학회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한 노동법제 체계와 그 실효성 제고 방안’ 보고서를 통해 “중대재해처벌법의 규율체계를 처벌법이 아닌 예방법으로 전환시켜야 한다”면서 “경영책임자가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산업 안전·보건 영역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중대재해법의 실효성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지속되면서 정부는 작년 11월 30일 처벌보다 예방에 초점을 맞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다. 

    해당 로드맵은 산업안전 패러다임을 규제와 처벌이 아닌 자율과 책임, 참여와 협력으로 전환하는 것이 골자다. 기업이 핵심사안을 지키지 않으면 처벌할 수 있도록 한 점은 유지했지만 유연한 대처가 필요한 사항은 예방규정으로 바꾸겠다는 것. 

    구체적으로는 ▲위험성 평가 중심의 ‘자기규율 예방체계’ 확립 ▲중소기업 등 중대재해 취약 분야 집중 지원·관리 ▲참여와 협력을 통한 안전의식 및 문화 확산 ▲산업안전 거버넌스 재정비 등 4대 전략과 산하의 14개 핵심 과제로 구성돼있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중 노사정이 추천한 전문가들로 ‘산업안전보건 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중대재해법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명확히 하는 등 개선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다만 이 또한 중대재해처벌법에 대한 구체적 개선 대책이 없고 오히려 상습·반복, 다수 사망사고 등에 대한 처벌이 가중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노사가 사업장 내 위험요인을 스스로 파악해 맞춤형 개선대책을 수립하고 이행하되,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처벌하겠다는 내용의 ‘자기규율 예방체계’의 경우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의 중복규제, 자의적 법 집행 방지를 위한 명확한 기준 마련 등이 전제되지 않으면 또 다른 규제로 작용할 수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아울러 기존에 문제로 지적돼온 적용대상 범위 모호, 처벌수준 등은 여전히 변화가 없어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재계에서는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 등 복합위기로 경영환경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실제 지난해 경총이 전국 10인 이상 총 1112개 기업(응답기업 기준)을 대상으로 ‘2022년 기업규제 전망조사’를 실시한 결과에서도 중대재해법은 업종별로 12개 중 8개 업종에서 기업 부담이 가장 높은 1순위 규제로 집계된 바 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법이 불명확해 무엇을,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다는 것”이라며 “로드맵을 통해 불확실성이 어느 정도 제거되겠지만 실질적인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명확한 의무 내용을 제시하고, 이를 이행한 경영책임자에 대해 면책하는 등 법령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임우택 한국경영자총협회 안전보건본부장은 “많은 기업들이 산재예방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처법 대응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면서 “정부의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 후속조치 과정에서 중처법의 모호성과 과도한 형사처벌을 개선하는 방안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