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VS 中' 패권 전쟁… '옮겨가는' 기회의 땅'세계의 공장'→ '기회손실의 땅' 전락 베트남 등 아세안 이동… '포스트 차이나' 급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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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VS 中' 패권 전쟁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4대그룹 총수 중 한명이 최근  '엑시트(EXIT)' 포함 중국 시장과 관련해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방안 마련을 각 계열사에 지시하고 보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중국 엑시트 등 현지 사업 리스크에 대한 다양한 방안을 마련할 것을 주문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는 공식은 더욱 흔들릴 전망이다. 한 때 다국적 글로벌 기업들이 미래 생존과 연결할 만큼 주요 전략 요충지였지만 이제는 발을 빼기 위한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휘청이는 경제와 미·중 패권다툼 여파로 투자 매력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시장에 더는 기회가 없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에 인도와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기업도 중국에 대한 높은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다변화를 모색할 필요가 1있다고 진단한다. 뉴데일리는 이런 현상이 제기되는 이유와 전망을 짚어봤다. <편집자주>

    중국이 기회의 땅으로서 지위를 급격히 상실하고 있다. 글로벌 주요 기업들의 탈(脫) 중국 행렬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저렴한 인건비와 풍부한 내수시장 등 중국의 최대 장점은 인도와 아세안의 부상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글로벌 기업들의 탈중국을 본격화하는 계기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과 탈중국화 정책 기조를 강화한 것이 시발점이다. 

    중국의 경제 침체 장기화도 한 몫하고 있다.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데다 민간 부문의 투자는 위축됐고, 부동산 시장도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줄줄이 하향 조정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사 가운데서는 S&P가 올해 중국의 GDP 성장률 예상치를 기존 5.5%에서 5.2%로 하향했고, 골드만삭스(6.0%→5.4%)와 UBS(5.7%→5.2%) 등도 예상치를 낮췄다.

    중국의 산업구조가 고도화되고 있는 점도 탈중국을 부추기는 요소다. 과거 중국은 노동집약적 조립·가공산업에 불과했지만 대규모 투자와 정부의 정책 지원에 힘입어 산업구조가 고도화되면서 잠재적 경쟁 상대로 돌변했다. 중국의 산업고도화에 따른 조선, 철강, 화학, 디스플레이 등 우리 10대 수출품목들이 점차 중국시장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미국, 유럽, 일본 등 글로벌 기업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며 다른 국가로 생산거점을 이전하고 있다.

    실제로 애플은 올해부터 맥북 컴퓨터 일부를 베트남에서 생산하기로 했고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최신형 모델 생산거점을 인도로 이전키로 했다. 구글도 픽셀 스마트폰 생산을 중국에서 인도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마이크론도 인도에 반도체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기업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에서는 대중국 공급망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생산거점을 중국으로부터 제3국이나 일본으로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고 있다. 2010년대 초부터 중국 진출 일본 기업 수는 1만 개를 넘어서는 등 일본 기업의 중국 진출이 활발했지만 코로나19가 발발한 2020년을 기점으로 감소세로 전환됐다. 

    2020년 중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 수는 약 1만3646개로, 가장 많았던 2012년(1만4394개 사)과 비교해 약 5.2% 감소했으며, 이같은 감소세는 지속되고 있다. 중국의 임금 상승에 따른 생산비용 증가, 과도한 중국 편중에 따라 파급되는 공급망 취약성을 피하기 위해 일본 기업의 탈중국 추세가 가속화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 기업들도 탈중국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의 '2022년 지역별·통화별 국제투자대조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준비자산을 제외한 한국 대외금융자산(거주자 대외투자) 잔액은 1조7456억 달러로 2021년 말보다 162억 달러 감소했다. 이는 관련 통계가 편제되기 시작한 2002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한 것이다.

    지역별로는 미국에 대한 투자가 6833억 달러(비중 39.1%)로 가장 많았고, 이어 동남아(2448억 달러, 14%), EU(2306억 달러, 13.2%) 등의 순이었다. 중국 투자 잔액은 1년 사이 146억 달러가 줄었는데, 2008년(-103억 달러)을 넘어선 역대 최대 감소폭이다.

    지난해 중국에 대한 경상수지는 77억8000만 달러 적자로 돌아섰다. 대중 경상수지가 적자를 낸 것은 2001년(7억6000만 달러 적자) 이후 21년 만에 처음이다.

    문제는 중국의 경기가 살아나더라도 대중 무역적자는 장기화 및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한국과학기술평가원에 의하며 한국은 11개 기술 분야 중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 산업 ‘ICT·SW’를 포함한 5개 분야 우주·항공·해양, 국방, 생명·보건의료, 에너지·자원, ICT·SW에서 오히려 중국에 뒤쳐진 상황이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은 미국과 EU 등 주요국 대비 기술 발전이 최대 8년 이상 늦은 상황"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유망 분야 중심으로 수출품목을 다변화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현재는 무역수지 회복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반도체·2차전지 등 한국이 비교우위를 지닌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와 지원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지역이 인도와 아세안이다. 아세안은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경기부양정책 시행 및 세계적인 공급망 다변화 움직임에 따라 포스트 차이나로 떠오르고 있다.

    우선 기술 혁신과 젊은 소비 인구를 바탕으로 질적 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아세안의 중위연령은 30.2세로 중국(38.4세), 미국(38.3세), 한국(43.7세) 등 주요국 대비 젊으며, 2.22명의 높은 합계출산율을 유지하고 있다.

    노동인구도 2030년까지 4000만 명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며 같은 기간 3000만명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는 중국과 대조를 이룬다. 

    아세안 지역의 소득·중산층이 급증하면서 가격만을 고려하던 소비 패턴에서 디자인과 품질을 함께 고려하는 복합적인 소비 패턴으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에 대한 해외 직접 투자도 모두 증가 추세다. 인도에 대한 해외 직접 투자는 2020년 620억 달러에서 2021년 73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베트남에 대한 해외 직접 투자도 2020년 280억 달러에서 2021년 330억 달러로 늘었다. 말레이시아는 2020년 120억 달러에서 2021년 140억 달러로, 인도네시아는 100억 달러에서 120억 달러, 태국은 80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증가했다.

    국내 기업들은 동남아시아와 미국 등으로 생산거점을 옮기고 있다. 삼성전자는 인건비 경쟁력이 높은 베트남과 인도에 스마트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LG전자도 베트남과 인도에 글로벌 생산기지로 구축하며 경쟁력을 높여가고 있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간 관계도 안좋아지고 있는 상황인 만큼 우리 기업들의 대중 투자도 관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