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리적가정, 금감원과 판박이예실차 키우고 해약준비금 줄여"배당 늘리는 사전 준비 마친 셈"매각 앞둔 롯데손보도 ROE '껑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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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주] 현재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보험사 회계 방법은 IFRS17이다. 우리나라도 회계정보의 유용성과 재무정보 비교 기준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10년간의 준비기간 끝에 올해 IFRS17을 처음 도입했다. IFRS17의 핵심은 원칙중심을 기반으로 사업비·해지율 등을 포함한 계리적 가정에 대한 자율권을 가진다는 점이다. 하지만 보험사의 1분기 실적 발표 이후 '실적 부풀리기' 논란이 불거지자 금융감독원이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나섰다. 원칙을 깨고 자율권을 무시한 것은 차치하고 특정회사 편들기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보험사들간 이전투구 양상이 빚어지고 있다. 금감원의 가이드라인이 왜 논란이 되는지, 보험사들의 입장은 타당한지 등을 점검해봤다.

    보험사들의 상반기 실적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금융당국의 보수적 가이드라인에 따라 희비가 갈리고 있다.

    대다수의 손보사들은 수천억원씩의 CSM이 줄어들 처지로 전전긍긍하는 가운데 일부 보험사는 CSM 편차도 없고 외려 자기자본이익률(ROE)마저 높아지면서 배당여력이 넘쳐나고 있다.

    이미 보수적인 계리적 가정으로 '예실차'(예상보험금과 실제 발생보험금의 차이)를 키우면서까지 대비한 탓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획일화된 계리적 가정의 가이드라인이 특정사에게만 유리하게 적용되고 있다며 볼멘소리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 손보사 수천억씩 CSM 감소… 메리츠화재만 무풍

    12일 금융감독원의 IFRS17 가이드라인에 대한 손해보험사별 계약서비스마진(CSM) 영향분석 결과, 메리츠화재는 변동이 거의 없었다.

    삼성화재가 5000억원 가량 축소되고 ▲현대해상 9000억원 ▲DB손보 7000억원 ▲KB손보 5000억원 등이 감소하는 것과 비교하면 천양지차다.

    가이드라인 영향을 일시에 반영하는 '전진법' 적용을 가정한 결과다.

    CSM 감소가 가장 큰 곳은 현대해상으로 그 규모만도 9000억원에 달한다. 낙관적 가정으로 720억원 가량의 예실차 적자를 본 게 주요 요인이다.

    정확한 계리적 가정으로 손보사 중 예실차가 가장 적었던 KB손보도 5000억원의 CSM 감소가 예상되고 있다.

    계리 전문가들은 메리츠화재의 손해율 가정이 금감원의 가이드라인과 유사한 부분을 주목하고 있다.

    앞서 지난 5월 메리츠금융지주 1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김용범 부회장은 IFRS17에서 메리츠화재의 주요 경쟁력으로 견고한 계리적 가정 설정을 강조했다.

    당시 김 부회장은 "IFRS17 제도 하에서 보험사들이 자의적인 회계처리로 이익에 치중하는지를 판별하기 위해서 세 가지를 주의깊게 보면 판단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예실차, 실손 손해율 가정,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 수준 등 세 가지"라고 짚었다.

    첫 번째로 제시한 요건은 예실차.

    예실차를 보면 회사가 미래 이익을 추정하는 가정들을 얼마나 공격적, 낙관적으로 세웠는지 또는 보수적이고 견고하게 세웠는지를 알 수 있다. 올해 1분기 메리츠화재의 예실차는 1100억원 수준으로, 예실차비율은 손보사 최고인 9.29%에 달했다.

    당국의 권고수준인 ±5%를 넘어서는 부정확한 가정을 사용한 결과다. 그 바탕에는 실손보험 손해율 가정을 10년 후에 손해율이 100%가 된다고 가정했다. 반면 공격적으로 가정하는 특정 보험사들은 이 기간을 5년으로 잡고 있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다음으로 제시한 것이 무·저해지 상품의 해지율이다. 무·저해지 상품은 실제 해지율이 낮으면 계약자에게 이익이고 해지율이 높으면 회사가 이익이다. 해지율이 높다고 가정할수록 회사의 이익률이 높아지는데 다른 보험사들이 실제보다 더 높은 해지율 가정을 적용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당국의 가이드라인 역시 ▲실손보험의 계리적 가정 산출기준 ▲무·저해지 보험 해약률 가정 산출기준 ▲고금리 보험 상품의 해약률 가정 산출기준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금감원이 메리츠화재의 계리적 가정을 차용해 가이드라인을 만든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한 계리 전문가는 "이번 가이드라인은 예실차 9% 수준의 메리츠화재 가정을 준용하면서 각 회사의 상황과 거시적 환경을 고려하지 않았다"면서 "획일적인 산출기준을 제시해 앞으로 예실차가 더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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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당 늘리려는 메리츠의 큰그림

    그렇다면 메리츠화재가 보수적인 가정으로 얻으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핵심은 '해약환급금준비금'(이하 해약준비금)에 있다.

    올해 신설된 해약준비금은 IFRS17 도입에 따라 시가평가로 전환된 보험부채가 감소하면서 실제 해약환급금이 모자를 것에 대비해 만든 제도다. 회계변동 과정에서 적정 수준의 준비금을 쌓지 않아 이익잉여금이 유출되는 상황을 막자는 의도다.

    다만 메리츠화재처럼 미리 손해율 가정을 보수적으로 적한 보험사일수록 해약준비금서 차감 항목인 시가평가 보험부채의 규모가 늘어나 해약준비금을 덜 쌓아도 된다. 늘어난 보험부채는 향후 CSM에 반영돼 이익으로 돌아오고 자본 성격의 해약준비금을 미리 줄여 자본효율성(ROE)을 높인다.

    실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국내 주요 손보사의 ROE 분석결과, 메리츠화재가 10.8%로 다른 손보사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았다. ROE는 1분기 당기순이익을 1분기 자본총계로 나눠 단순 계산했다.

    이어 흥국화재(6.7%), 롯데손보(5.6%) 등 비교적 규모가 작은 업체들의 ROE가 높았고 '빅5'라 불리는 DB손보(5.1%), 삼성화재(4.6%), KB손보(4.6%), 현대해상(3.0%) 등은 메리츠화재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ROE는 기업의 당기순이익을 자본총계로 나눈 값으로 주주가 갖고 있는 지분에 대한 이익의 창출 정도를 의미한다. 기업의 수익성을 측정하는 지표로, 기업의 가치를 평가하거나 배당 여력에도 기준이 된다.

    메리츠화재의 ROE가 높았던 이유는 미리 보수적인 가정으로 자본 성격의 해약준비금을 줄였기 때문이다. 메리츠화재의 1분기 해약준비금은 3497억원으로 현대해상(4조3916억원), KB손보(2조3661억원)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해약준비금은 배당서 제외되는 금액으로, 미리 축소해 놓았기에 배당 여력도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실제 메리츠금융지주는 지난해 메리츠화재와 지주의 포괄적 주식교환을 발표하면서 주주환원 정책의 하나로서 순이익의 50%를 환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지난 컨퍼런스콜에서 김용범 부회장도 시장에서 예상하는 1조원 가량의 주주환원 정책을 지키겠다고 재차 강조하기도 했다.

    대다수 손보사가 보수적인 가이드라인 적용으로 당장 2분기부터 실적 악화가 불가피한 상황에 직면해 있는 반면 메리츠화재는 영향이 거의 없고 오히려 배당을 늘리기 위한 사전작업까지 마친 셈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해약준비금은 배당을 할 수 없지만 예실차이익은 순익에 반영돼 당장 배당이 가능하다"며 "당국에서 오히려 예실차를 키워 배당을 부추기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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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각 앞둔 롯데손보 ROE '껑충'

    또 보수적인 가정으로 ROE가 크게 오른 곳으로 롯데손보가 꼽힌다. 롯데손보의 1분기 예실차비율은 4.08%로 ±5%를 넘지는 않았지만 비교적 보수적인 계리적 가정을 사용했다.

    이에 따라 1분기 쌓은 해약준비금도 3794억원에 불과했다. 한화손보가 0.67%의 예실차비율로, 정확한 예측을 통해 1조5704억원의 해약준비금을 쌓은 것과 대조적이다.

    그 결과 롯데손보의 ROE는 지난해 1분기 2.5%에서 올해 5.6%로 2배 이상 뛰었다. 자본총계가 IFRS17 적용후 8951억원에서 1조4180억원으로 늘어난 것에 비해 당기순익이 228억원에서 794억원으로 크게 오른 결과다.

    롯데손보 측은 CSM에 유리한 장기 보장성보험 확대를 위한 판매비 투자에 나서는 등 IFRS17 도입에 선제적으로 대비해 온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만 매각을 앞둔 상황에서 ROE 개선을 통해 기업 가치를 높이려고 한 전략으로 보수적 가정을 사용한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온다.

    업계 한 전문가는 "기업을 인수하고자 할 때 ROE가 중요한 지표로 사용된다"며 "ROE가 10%면 3조원에 인수할 경우 연 3000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둘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ROE가 높을수록 높은 가격에 팔린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