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맥주 1위 제주맥주 구조조정… 40% 희망퇴직브랜드 육성 대신 손쉬운 ‘이색 콜라보’ 앞다퉈 출시편의점에 종속되며 품질도 평준화… 엔데믹에 예고된 위기
  • ▲ 편의점 맥주를 고르는 소비자.ⓒ뉴데일리DB
    ▲ 편의점 맥주를 고르는 소비자.ⓒ뉴데일리DB
    "올 것이 왔다."

    국내 수제맥주 상장 1호인 제주맥주가 구조조정에 나서면서 주류 업계에서는 예고된 위기가 왔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성장한 수제맥주 시장이 엔데믹 이후 급격하게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편의점을 필두로 한 수제맥주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는 상황이었다. 

    그 핵심에는 수제맥주 브랜드의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자체 브랜드의 육성 대신 협업을 통한 ‘이색 콜라보’ 브랜드 제품에 집중하면서 경쟁력을 잃어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18일 주류업계에 따르면 제주맥주는 전체 임직원에 대한 희망퇴직을 접수 중이다. 희망퇴직 규모는 전체 직원의 40% 수준으로 이달까지 접수를 진행할 예정이다. 문혁기 제주맥주 대표이사도 이달 급여를 모두 회사에 반납했다. 그는 제주맥주가 흑자전환 할 때까지 급여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수제맥주 1위 사업자이자 수제맥주 상장 1호인 제주맥주의 이런 위기는 일찍이 예상돼 왔다. 제주맥주는 상장 이후 한번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엔데믹을 겪으면서 영업손실은 급격하게 커졌다. 지난해 제주맥주의 영업손실은 116억원으로 매출의 절반에 육박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비단 제주맥주만의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제맥주를 표방한 소규모 맥주제조사는 엔데믹 이후 비슷한 상황에 놓이고 있다. 업계 2위인 세븐브로이맥주도 지난해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반토막 난 49억원에 그쳤고 올해 1분기에는 4억원 수준으로 주저앉았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근본적으로는 수제맥주의 성장이 폭발적으로 이뤄지는 시기에도 자사 브랜드를 거의 키우지 못했다”며 “편의점 채널에 종속됐다는 점도 결과적으로 발목을 잡았다”고 평가했다.

    실제 코로나19 당시 수제맥주의 급성장에는 ‘이색 콜라보’가 자리하고 있다. 인지도가 낮은 자사 브랜드 대신 다른 업종의 브랜드와 협업한 맥주를 출시하면서 단번에 인기몰이를 나선 것. 별다른 마케팅 없이도 MZ세대를 중심으로 빠르게 매출이 올라가는 효과를 누렸지만 잃는 것도 분명했다. 

    동시에 편의점 채널을 주요 유통채널로 삼은 점도 양날의 칼날이 됐다. 전국단위 판매를 위해 생산시설을 증설하면서 수제 맥주 특유의 고품질, 소량생산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반면 앞다퉈 ‘이색 콜라보’, ‘편의점 진출’에 나서면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수제맥주 업계 관계자는 “협업 브랜드 맥주로 반짝 재미를 봤지만 본질적인 수제맥주 브랜드의 강점을 거의 키우지 못한 상황”이라며 “이 때문에 국내 수제맥주는 해외 수제맥주가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꾸준한 사랑을 받는 것과 전혀 처지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결국 이런 코로나19 효과의 한계는 분명했다. 편의점에서 출시된 협업 브랜드의 이색 조합은 반짝 인기를 끌었지만 그 수명은 다른 국내외 맥주브랜드와 달리 터무니없이 짧았고 매출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협업 브랜드를 찾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한달이 머다하고 출시되는 신제품에 흥미를 느낄지언정 크게 차별화되지 않는 품질과 맛에서 브랜드 충성도가 생길 수 없는 구조였다.

    이른바 ‘한탕주의’가 빚은 비극이다. 올해 들어 수제맥주 수요가 꺾이면서 제조사들이 이 청구서를 받아드는 처지가 됐다는 분석이다. 

    세븐브로이를 수제맥주 2위로 만들어낸 제품이 ‘이색 콜라보’인 ‘곰표 밀맥주’라는 점이 대표적이다. 결국 세븐브로이는 지난 4월 상표권 계약 종료로 인해 이 효자 제품을 잃고 ‘대표 밀맥주’라는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었지만 흥행을 이어가지 못하는 상황. 

    유일하게 수제맥주에서 자체 브랜드인 ‘제주맥주’를 키워가던 제주맥주 마저도 이런 매출의 유혹으로부터는 자유롭지 못했다. 제주맥주는 지난 4월 대한제분과 ‘곰표 밀맥주’의 상표권 계약을 따내며 ‘곰표 밀맥주’를 출시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일부 수제맥주사는 최근 유행이 시작된 ‘하이볼’ 제품으로 방향을 틀거나 음료제품을 출시하면서 생존을 모색하는 상황. 하지만 이마저도 본업인 수제맥주의 활로가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