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지역 의원들 삭발 투쟁 감행에 비판론 확산임현택 "의원들 본인과 가족은 서울 대형병원 안 다니나" 지적중증 질환=빅5 병원 고착화… 근본적 해결 없이는 무용지물지역인재 비율 상향 조정·지역의사제 도입 등 갑론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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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과대학 정원 확대로 방향성이 잡히자 각 지역에서 의대 신설 요구가 거세다. 그러나 의사들이 지역에 남지 않는다면 무용지물이다. '큰 병은 서울에서 고친다'라는 국민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경쟁력이 떨어진 서울 소재 대학병원도 폐원이나 규모 축소가 비일비재한 상황이라 의대 신설의 부작용은 열악한 지방의료원 상황과 동일하게 흘러갈 개연성이 크다. 조 단위 재정 투입에 앞서 심층분석이 필요한데 총선을 앞두고 의대 유치에 혈안이 된 정치권의 셈법이 위험하다.

    20일 다수의 국회 및 의료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들어 난제로 여겨졌던 의대정원 확대와 국립대병원 보건복지부 이관 등 굵직한 안건에 매듭을 풀면서 야권이 이슈 선점을 위한 의대 신설로 의제를 확장하고 있다. 

    전날 정부는 의료계에 의대정원 확대를 설득하기 위해 예산 1조원을 투입해 지방·필수 수가를 올리고 '국립대병원의 대형병원화'를 목표로 필수의료 혁신전략을 꺼내 각종 규제를 풀기로 했다. 의사 파업 없는 협의로 진행하자는 당근책이 제시된 셈이다. 

    문제는 야당 측의 반발이다. 이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국민 대부분이 의대정원 확대의 필요성과 시급성에 공감하고 있다"며 "대통령실이 정치적 계산과 의사눈치보기에 몰두해 정책추진의 골든타임을 놓지지 않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방에도 충분한 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고 필수적인 의료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도록 하며 공공의료를 통한 든든한 사회안전망을 형성해야 한다"며 지역의대 신설 및 공공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도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야당 주도의 '공공·필수·지역의료 살리기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한 상태로 의대정원을 넘어 각 지역별 의대 신설 요구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 ▲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전라남도 의과대학 유치 촉구 집회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뉴시스
    ▲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지난 18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전라남도 의과대학 유치 촉구 집회에서 삭발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의대 신설 요구한 의원들… 지역병원 다닙니까?
     
    전남지역 의원들의 의대 신설 요구는 삭발식으로 이어져 화제를 모았다. 지난 18일 민주당 전남도당위원장인 신정훈(나주·화순), 김원이(목포), 소병철(순천·광양·곡성·구례갑) 의원은 대통령실 앞에서 집회를 열었고 이 중 김원이, 소병철 의원은 삭발을 통해 추진 의지를 강조했다. 

    당시 상황에 있었던 임현택 미래를생각하는의사모임(미생모) 대표는 "김원이, 소병철, 신정훈의원과 본인 가족은 서울 대형병원이 아니라 전남대, 조선대병원 등 지역병원 다니냐"며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반발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직도 수행 중인 임 대표는 "본인들이 아플 때는 보좌진을 총동원해  빅5 명의라고 소문난 교수를 먼저 만나기 위해 새치기하려고 혈안이면서 지역구 주민들은 수준 낮은 교육을 받고 장비와 시설도 떨어지는 지역 신설 의대에서 치료받으라고 하는 것이냐"며 "총선을 앞둔 시점에 재선용 카드로 의대 신설이 활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야 관계없이 국회의원과 그 가족, 지인이 빅5 병원 등 서울 대형병원을 이용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며 "우후죽순 쏟아지는 의대 신설 이면에 담긴 진실이 드러나야 한다"고 했다. 

    의대정원을 넘어 의대 신설까지 확장하는 것은 조 단위 예산이 반영돼야 하는데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올해 병원계 가장 큰 화두였던 서울백병원 폐원을 비롯해 일부 대학병원서 규모를 축소하는 상황이라 무리한 신설 요구에 대한 비판론도 형성되는 것이다. 

    한편 교육부가 복지부에 제출한 '시도별 의대 정원 현황 및 신증설 수요'에 따르면 △부산 부경대(신설) △인천 인천대(신설) △대전 카이스트(신설) △울산 울산대(증설) △충북 충북대(증설) △충남 공주대(신설) △전북 군산대(신설)·국립공공의대(신설) △전남 목포대(신설)·순천대(신설) △경북 안동대(신설)·포항공대(신설) △경남 창원대(신설) 등 13곳이 의대 신·증설을 원했다.

    ◆ 지역인재 남기기 통할까 

    현실적인 과제는 의대 신설이 아니라 지역에서 배출된 의사가 그 지역에 남아 필수의료를 비롯해 각 질환의 최종치료를 하도록 유인책을 꾸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많은 난관이 예상된다. 암 등 중증질환자들은 지역 내 거점병원이 아닌 빅5병원으로 향하고 있고 이를 억제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환자들이 KTX 첫차를 타고 올라오거나 대형병원 인근에 방을 잡아 진료를 보는 것은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빅5 병원을 찾은 지방 환자 수는 71만명으로 진료비만 2조를 훌쩍 넘겼다.

    의료수요 자체가 빅5병원을 비롯한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쏠려있는 것이다. 지역인재가 배출돼도 수도권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다. 국립대병원의 대형병원화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문구지만 사실 대국민 인식 개편이 수반돼야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감안해 지역의사를 남기기 위한 현실적 대안은 2개로 좁혀진다. 지역인재 확보 비율이 올해 40%로 정해졌지만 이에 더해 수치를 대폭 올리는 방안 또는 지역의사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여기서 전자가 실행될 가능성이 더 크다.

    지역인재 확보 비율과 관련 주진형 강원대 의대 교수는 "의사들이 지방에 머무르게 하려면 지역인재 전형을 모든 지방대 의대에서 50% 이상으로 대폭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고 윤석준 고대 의대 교수는 "지역인재를 100%까지 올리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일부 국립대병원장들은 "지역의료 문제와 인력을 매칭할 수 있는 건 지역의사제"라며 야당의 주장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강제성 없는 지역인재 전형은 간접적인 방법으로 선발 시 의무를 부과하고 이러한 의무를 받아들일 사람을 뽑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복지부 측은 "강제가 아닌 자발적으로 지역에 거주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드는 데 방점을 둘 계획"이라며 지역의사제 도입은 아직 섣부른 상황임을 밝혔다. 

    문제는 국내에서 지방의료의 공백을 해결하기 위해 2015년부터 '지역인재특별전형' 제도가 도입됐지만 성과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지역 출신 합격자는 집계가 시작된 지난 2018년 721명에서 2019년 845명, 2020년 889명, 2021년 856명, 2022년 947명, 2023년 1082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병욱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7년부터 2021년까지 비수도권 소재 대학 의학계열(의학·치의학·한의학 등) 졸업자 가운데 근무지가 확인된 1만3743명 중 43.1%인 5923명이 수도권에 취업했다. 졸업한 대학이 있는 지역에 취업한 경우는 30.3%(4171명)에 불과했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졸업 이후 젊은 의사들이 대거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를 방어할 대책이 부족하다"며 "지역인재를 늘려도 유출 억제가 되지 않으면 도로아미타불이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