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 총선·인플레 등 복잡한 셈법에 4분기 인상 발표 지연한전 자구책으로 희망퇴직·조직축소 등 거론기존 자구책 이행도 지지부진한 데 노조 협의 불투명
  • ▲ 계량기.ⓒ연합뉴스
    ▲ 계량기.ⓒ연합뉴스
    올 4분기(10~12월)의 3분의 1이 지나가는 상황인데도 전기요금 인상 여부가 안갯속이다. 정부와 여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전기요금발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와 국제유가의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당정은 한국전력공사의 뼈를 깎는 추가 자구책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기존 자구책도 이행 상황이 지지부진하단 지적과 함께 '마른 수건 쥐어짜기'란 우려가 나오는 등 벌써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30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전 등에 따르면 4분기 전기요금 인상 결정에 앞서 한전이 먼저 추가 자구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공급기관 차원에서 먼저 뼈를 깎는 수준의 구조조정과 경영 혁신 등을 이뤄내야 한다는 정부의 요구에 따른 것이다. 이날 한전 관계자는 "방문규 산업부 장관이 계속 강조하듯 선(先) 자구책 후(後) 요금 인상 과정으로 진행될 듯하다"고 말했다.

    요금 인상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한전은 에너지 수입 가격이 판매 가격보다 비싼 '역마진' 구조로 인해 올 6월 말 연결 기준으로 201조4000억 원의 부채가 누적된 상태다. 창사 이래 '최대'이자 '최악' 수준의 천문학적인 재정난이다.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실패한 탈원전 정책이 문제를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문 정부는 지난 2021년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유가 불안이 높아졌는 데도 이를 국내 가격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문 정부 5년간 전기요금 인상은 단 한 번에 그쳤다. 

    정부도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하지만 여러 위기요인이 겹쳐 셈법이 복잡한 상태다. 먼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간 무력 충돌로 인해 국제유가가 불안정한 흐름을 보인다. 최근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무력 충돌에 이란이 뛰어들 경우 80달러 수준인 유가가 150달러 이상으로 오를 것이란 경고를 내놓았다. 여기에 이달 19일 발생한 소 럼피스킨병의 확산 등 인플레이션 촉발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요금을 인상할 경우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가능성이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정으로선 물가 상승으로 인한 민심 이반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인상에 앞서 한전의 추가 자구책을 거듭 요구하는 배경이다.

    한전의 추가 자구책에는 희망 퇴직과 본사 조직 축소, 지역별 사업소 거점화 등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배구계를 술렁이게 했던 프로배구단 매각은 아직 검토 중인 사안으로 확인됐다. 한전은 앞서 발표한 자구책에서 서울 여의도 소재 '금싸라기땅' 등 총 11개 부동산 매각, 부장급 이상 임직원의 성과급 전액 반납, 단계적인 인력 효율화 방안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 ▲ 한국전력공사 김동철 사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 한국전력공사 김동철 사장이 19일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연합뉴스
    문제는 앞서 발표한 자구책의 이행도 원활하지 않다는 데 있다. 지난 19일 한전을 대상으로 열린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이런 문제가 집중 거론됐다. 이날 양향자 한국의희망 의원은 "한전이 팔아야 할 것은 못 팔고, 팔지 말아야 할 알짜배기 사업들은 헐값에 넘기고 있다. 한전의 자구책 자체가 미흡한 수준"이라며 "그러면서 언론엔 강도 높은 자구책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고 꼬집었다.

    양 의원에 따르면 한전은 올해 매각을 계획한 부동산 11개 중 4개만 매각한 상태다. 국내 출자 지분 매각도 단 1개에 그쳤다. 시간이 지연될수록 부동산 시장과 주식 시장 등이 악화하며 한전의 상장 주식 주가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단 사실도 자구책의 목표 금액 가치를 낮추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이에 대해 김동철 한전 사장은 "부동산은 경기침체 등으로 인해 다소 부진할 뿐 다른 자산 매각은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까지 목표 대비 88% 수준인 2조8000억 원을 달성했다"고 해명했다. 다만 부동산 매각이 자구책의 목표 금액 중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우려는 여전히 크단 지적이다. 한동안 부동산 시장이 침체할 것이란 전망이어서 매각 이행에 기약이 없는 실정이다.

    추가 자구책의 실현 가능성도 벌써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전이 이달 중순쯤 제출한 추가 자구책은 산업부로부터 현실성이 떨어진단 이유로 퇴짜를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추가 자구책의 대부분은 노동조합과의 협의가 필수적인 사안들이지만, 한전은 이를 담보하지 않은 채로 자구책을 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원래 한전은 이달 중 추가 자구책을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산업부로부터 한 차례 반려되면서 결국 다음 달로 미뤄지게 됐다.

    이미 한전이 고강도 자구책을 발표한 상태에서 추가 방안들을 내놓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란 지적도 잇따른다. 허울뿐인 자구책은 한전의 적자 규모를 줄이는 데도, 국민의 여론 악화를 막는 데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은 19일 국감에서 "방 장관이 국민이 납득할 만한 추가 자구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며 "희망 퇴직과 조직 축소 등도 그렇게 쉽진 않을 것으로 본다. 마른 수건을 짜는 격이 되지 않도록 심도 있는 고려를 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