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물가 3.8% 상승… 소주·맥주 이어 햄버거도 줄인상 러시농식품부, 연일 가공·유통업계 만나 가격인상 자제 요청했지만 무색과거 'MB물가' 데자뷔… 전문가 "가격통제 어려워·시장 자율에 맡겨야"
  • ▲ 하이트진로는 9일부터 맥주 출고가를 7% 인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 하이트진로는 9일부터 맥주 출고가를 7% 인상한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고물가 시대. "책상에만 앉아 있지 말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 이후 농림축산식품부가 총대를 메고 연일 업계를 만나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식품업체들은 가격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

    하이트진로는 오는 9일부터 참이슬 등 소주 출고가 7%, 테라, 켈리 등 맥주 출고가 6.8%를 각각 인상한다고 밝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상 계획이 없다고 밝혔던 터라 정부는 당황한 모습이다.

    정부는 지난 4월 맥주 주세(酒稅) 인상을 앞두고 한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주세 인상이 예고되며 식당에서 판매하는 소주와 맥주 가격이 1병당 6000원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자,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서민 술'로 통하는 소주와 맥주 인상의 범인이 주세로 지목되자, 여론은 급격히 악화했고 정부는 주류업계에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했었다.

    사실 소주 원료인 주정(에탄올) 가격 인상 등으로 주류 가격 인상 압력이 강해진 상황에서 주세까지 인상하면 주류업계도 출고가격을 유지하기가 버겁다.  그럼에도 주류업계는 정부의 요청에 따라 출고가 인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결국 반년 만에 주류 출고가를 인상하는 지경이 됐다.

    버거 대표 프랜차이즈인 맥도날드도 2일부터 빅맥 등 13개 메뉴가격을 평균 3.7% 올리고, 맘스터치도 닭가슴살 버거 4종의 가격을 인상했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19일 BBQ를 찾아가 자체 원가절감 노력을 통해 가격인상을 억제했다며 "다른 업체도 BBQ처럼 하라"고 압박한 데 더해 다음 날인 20일에는 CJ제일제당과 오뚜기 등 식품업체 16곳을 호출해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했다. 이어 24일에는 CJ제일제당 인천공장을 방문해 설탕 가격인상 자제를 요청한 데 이어 닭고기 업체, 이마트 등 대형마트 물가 점검, 피자알볼로 방문, 외식업계 간담회 등 연일 동분서주 뛰어다니며 물가 인상을 억제해왔다.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발표된 2일에도 농식품부는 오후에 닭고기와 돼지고기 수입업체와 간담회를 하고 외식·식품업계가 원가부담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할당관세 물량을 조기에 공급해달라고 요청했다.
  • ▲ 배추가 진열된 마트 ⓒ연합뉴스
    ▲ 배추가 진열된 마트 ⓒ연합뉴스
    하지만 이런 정부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날 발표된 10월 소비자물가는 1년 전보다 3.8% 상승하는 등 3개월 연속 3%대의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물가상승의 주요 원인은 농산물과 에너지 가격이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로 국제유가 변동성이 커지며 석유류 하락 폭은 7월 마이너스(-) 25.9%에서 8월 -11%, 9월 -4.9%, 10월 -1.3%로 둔화하고 있다.

    농·축·수산물은 이상저온으로 농산물 가격이 크게 뛰면서 1년 전보다 7.3% 상승했다. 이 중에서도 농산물이 13.5% 상승했다. 품목별로는 사과 72.4%, 상추 40.7%, 파 24.6%, 토마토 22.8%, 쌀 19.1%로 크게 올랐다.

    정부가 아무리 가격을 억누르려고 해도, 식품·외식업계 입장에서는 땅 파서 장사하는 게 아닌 이상 원가 인상 압력을 마냥 외면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정부 가격인상 자제 요청의 약발이 오래가지 못하는 이유다.

    이런 모습은 이명박(MB) 정부 시절 서민생활과 밀접한 품목 52개를 선정해 관리했던, 이른바 'MB 물가'와 비슷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정부는 밀가루와 라면, 배추 등 먹거리와 대중교통 요금, 학원비 등의 서비스 요금을 관리했지만, 오히려 MB물가지수 품목의 가격은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 폭보다 더 오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정부의 직접적인 가격통제가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개별적인 가격통제나 관리는 성과를 내기 어렵다. 물가는 결국 통화정책 이슈인데, 유동성이 아직 회수가 잘 되지 않았다. 이것이 물가상승 압력을 낳고 있다"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가격 상승 압력이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물가가 높으면 소비자가 소비를 줄이면서 시장에서 알아서 조정하면 되는데, 정부가 관치 경제를 답습하고 있다. 지금 환율이 상당히 높은데, 유통되는 농산물의 50%는 수입 농산물이다. 당연히 물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가 완력으로 가격통제를 해봤자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정부가 농수산물 할인 지원 예산 245억 원을 투입하는 것에 대해서도 이 교수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다. 돈을 직접 주는, 보조금을 주는 것인데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현 정부가 문재인 정부한테 보조금 살포로 나라재정을 파탄냈다고 비판하는데 농수산물 할인 지원도 똑같은 정책"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