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vs "호봉제가 공정하다는 인식 더 높아"양대노총 공대위, 정부세종청사서 직무급제 반대 천막농성 돌입잇단 노동 현안 두고 노·정 마찰 심화… 勞, 대정부 투쟁 수위 높여경사노위 다시 열렸지만 노·사·정 사회적 대화 난항 예상
  • ▲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양대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양대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대책위원회 관계자들이 공공기관운영에관한법률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최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과 주 52시간제 근로시간 개편안을 두고 정부와 마찰을 빚어온 노동계가 '직무급제'를 새로운 반발 소재로 삼아 정부를 향한 투쟁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이들은 정부의 직무급제 추진에 반대하며 천막농성 등 대규모 단체 행동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갈등이 고조된 상태인 노·정 관계가 한층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양대노총 공공부문 노조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20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동 앞에서 직무급제 개편 반대와 노·정 교섭 요구 등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노동자들의 동의 없이 임금체계를 재단하려는 정부의 일방적인 태도를 강력히 규탄한다"면서 "정부는 예산 혁신 항목의 하나로 직무급제 개편을 계획했지만, 임금체계 개편이 왜 혁신에 해당하는지 설명하지 않고 단지 MZ세대들이 선호한다는 엉뚱한 말만 늘어놨다"고 주장했다.

    직무급제 개편은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의 제1호 과제로 꼽히는 사안이다. 현 임금체계는 초봉을 바탕으로 연공이 쌓일수록 급여가 오르는 호봉제 중심이다. 이와 반대로 직무급제는 각자의 직무·성과에 따라 임금 수준을 달리 책정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노동개혁의 궁극적인 목표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해서는 이중구조의 주요 원인인 호봉제를 타파해야 한다고 본다. 노동자들은 노조의 고용 안정성 보호에 힘입어 매년 호봉을 쌓아왔고, 반면 비정규직 등은 호봉이 누적되기 어려운 구조여서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아왔다. 이런 이중구조 문제를 해결하려면 개개인의 성과를 중심으로 한 임금체계의 유연화가 필수적이라는 견해다.

    직무급제는 고용 관련 주요 현안 중 하나인 정년 연장을 본격화하기 전 해결해야 할 선행과제로도 여겨진다. 현 호봉제 아래에서 연공이 높은 근로자들의 정년을 연장하는 것은 오히려 신규 정규직 수 명을 채용하는 것보다 더한 임금 부담이 든다는 이유에서다. 또 정부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공공기관의 방만경영 문제에도 호봉제의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는 직무급제 도입 기관을 2021년 말 기준 35개에서 내년까지 100개로 3배쯤 늘리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까지 집계된 기관은 55개로 기존보다 20개 확대한 상태다.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는 200개 이상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잡았다.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기관에는 총 인건비 인상과 경영평가 가점 등의 인센티브를 대폭 강화하고, 노사합의 원칙 하의 맞춤형 지원책 등의 방안도 추진한다.

    공대위는 여론조사 결과를 들어 정부의 직무급제 추진을 비판했다. 올해 중순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가 전문조사기관에 의뢰해 수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호봉제가 공정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33.2%가 '그렇다'고 답했다. '아니다'라고 답한 비율은 20.6%에 그쳤다. '보통이다'에 답을 준 비율은 가장 많은 46.2%였다.

    이들은 나이·기업 규모·노조 가입여부 등에 따른 응답 분포에서도 모두 호봉제가 상대적으로 더욱 공정하다는 답변이 나왔다고 밝혔다. 공대위는 "조사를 의뢰한 곳을 감안한 듯 중립성을 훼손하는 '성과에 상관 없이'라는 문구가 들어가 있음에도 현 호봉제가 공정하다는 인식이 더 높았다"면서 "결국 직무급제가 MZ세대의 공정 이슈에 부합한다는 정부의 설명은 허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대위는 이날 기자회견 이후 기획재정부에 지난달 모은 공공 노동자들의 서명 운동지를 전달했다. 이들은 이날부터 닷새 동안 중앙동 앞에서 천막농성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국회 처리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국회 처리 관련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앞서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제2·3조 개정안과 근로시간 개편안 등을 두고 지속 충돌해온 노·정 관계는 이번 직무급제를 둘러싼 투쟁으로 인해 더 악화할 공산이 크다. 

    노동계는 노란봉투법의 즉각 공포·시행을 촉구하고, 근로시간 개편안은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이라고 비판하면서 공세 수위를 높여왔다. 지난달 1일부터 시행된 노조 회계 공시 의무화도 노동계의 불만 사안이다. 양대노총 중 하나인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은 이달 15일 회계 공시 의무화의 법적 근거인 노조법·소득세법 시행령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한 상황이다.

    대정부 투쟁의 수위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노총은 이달 11일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총 6만여 명 규모로 노란봉투법의 즉각 공포·시행을 요구하는 대규모 노동자대회를 열었다. 같은 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도 서울 서대문구·종로구에서 신자유연대를 포함한 4만여 명과 함께 민중총궐기를 열고 윤 정권의 퇴진을 촉구했다.

    노동계의 대규모 집회는 이달 중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소재 동화면세점 앞에서 노란봉투법 시행과 이에 대한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저지를 위한 총파업·총력투쟁을 열 계획이다. 집회를 마친 후에는 노동개악 중단과 윤 정권 퇴진을 구호 삼아 용산 대통령실 인근으로 행진한다.

    최근 한국노총이 경사노위의 복귀를 결정하면서 노·사·정 대화의 창구는 다시 열린 상태다. 노·사 간 합의가 필수적인 근로시간 개편안 논의 등에 속도가 붙을 것이란 기대가 나왔다. 다만 여러 노동 현안을 둘러싼 노·정 간의 대립과 노동계의 투쟁 등이 지속하면서 경사노위를 통한 사회적 대화도 녹록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