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도 정부 R&D 예산, 올해 대비 4조6000억 줄어조성경 차관 "R&D 카르텔 만연" VS 이종호 장관 "개인적 의견"과학기술계 "카르텔 실체, 예산 삭감 주도한 정부 부처 공무원""극히 일부 사례마치 … 연구 현장 만연한 것처럼 과장 부적절"
  • 내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이 5조원 가까이 삭감되면서 과학기술계가 술렁이고 있다. 특히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차관이 'R&D 카르텔'에 다른 견해를 보여 혼란이 가중되는 형국이다.

    26일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2024년도 정부 전체 R&D 예산은 26조 5000억원으로, 올해 31조 1000억원 대비 14.7%(4조 6000억원) 감소했다. 매년 10%가량 늘려온 R&D 예산이 삭감된 배경으로 R&D 카르텔이 꼽히고 있다.

    앞서 조성경 과기정통부 1차관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열린 포럼에서 R&D 카르텔을 언급했다. 조 차관은 당시 ▲출연연이 기업체에 사업을 주고, 사업의 일부를 출연연이 지정한 교수에게 주는 편법 ▲출연연 등이 해당기관 출신 교수들에게 특혜 제공을 위해 과제를 주는 경우 ▲출연연이 수년간 내용은 거의 동일하나 제목을 바꿔가며 연구를 지속하는 경우(한국원자력연구원의 사용후핵원료 분야) ▲기술 이전과 관련해 기술가치 평가 이전 기술 이전료 협상을 한 후 일부 금액을 개인적으로 지원 받는 경우 ▲뿌려주기식 용역 확대로 인해 연구 여력이 없는 교수들에게 연구비 지급 ▲예타기획이나 보고서를 쓸 수 있는 역량이 미비한 중소기업 브로커가 이를 대행해주고 성공보수와 착수보수를 받는 경우 ▲연구재단 등에서 과제 기획을 할 때 특정 분야 특정 기술을 연구하는 집단의 수요를 받아 과제 제안서 자체를 그 연구실만이 할 수 있도록 작성하도록 하는 경우 ▲선정 평가를 할 때 평가자와 피평가자가 입을 맞춰 평가 분위기를 한쪽으로 몰아가는 경우 등을 8가지 R&D 카르텔 사례를 발표했다.

    조 차관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해당 내용을 언급하면서 과기정통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분위기가 연출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등 특정 연구기관을 지목하면서 의혹은 더욱 커졌다. 조 차관은 앞서 2013년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 위원, 2014년에는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이후 이종호 장관이 브리핑에서 해당 내용을 "개인 의견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 장관은 "(조 차관의 발언은) 그냥 개인적인 의견으로, 정부 의견이 아니다"라며 "내부에서조차 논의한 바도 없고,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R&D 예산 삭감이 카르텔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은 것.

    과학기술계에서는 정부 고위 관계자들끼리 R&D 예산 책임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고 비판한다. 무엇보다 출연연의 카르텔 의혹이 연구자의 명예와 기회를 훼손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높인다.

    전국과학기술연구전문노동조합은 긴급설문조사를 통해 응답자의 87%가 R&D 카르텔에 대해 "자주 볼 수 없는 드물 일"이라고 응답했다고 밝혔다. 극히 일부의 사례를 마치 연구 현장에 만연한 것처럼 과장해 이야기한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

    출연연과학기술인협의회총연합회도 예산 삭감 원인으로 지적된 카르텔의 실체나 정부가 추구하는 것의 실체도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오히려 정부가 R&D 과제 수행에 대한 계약을 파기하는 행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과기계 관계자는 "카르텔의 실체는 R&D 예산 삭감을 주도한 정부 부처 공무원"이라며 "극히 일부의 사례를 마치 연구 현장에 만연한 것처럼 과장해 이야기한 것도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