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前경제부총리 "불확실성 여전하지만, 국제경제 환경 작년보다 나아질 것""미·중 갈등에 왕도 따로 없어… 시진핑 방한시 경제 걸림돌 풀 거 많아 환영할 만""포퓰리즘이 나라 망치는 건 틀림없어… 국가채무비율, 文정부 때 너무 급격히 올라""재정 역할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 생산성 못 높이는 일회성 퍼주기 지양해야""PF 부실 우려, 금리인하 근원처방 녹록잖아… 취득세 인하, 실효성·법 개정 여부 의문""저출산 심각, 문화 바꿔야·시간 오래 걸려… 이민정책, 日문부성 장학금 참고할 만""尹정부 개혁 더뎌, 법 고칠 거 많은데 한계… 갈 길 멀다는 게 역설적 희망의 사인"
  • ▲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뉴데일리DB
    ▲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뉴데일리DB
    "한국 경제는 고금리 여파 등으로 올해도 상당히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엔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화 문제로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경제를 둘러싼 환경이 조금은 지난해보다 나아질 겁니다. 노동·교육·연금 개혁도 진전이 있다면 희망적인 사인이 되리라 믿습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희망의 사인일 수 있습니다."

    최근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만난 유일호(69·사진) 전 경제부총리는 일단 올해 우리 경제가 지난해보다는 개선될 것으로 봤다. 통계청이 밝힌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6%다. 애초 정부 전망치(3.3%)보다 높고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는 4.0%로 전년보다 0.1%포인트(p) 내리는 데 그쳤지만, 12월 물가는 전달(3.3%)보다 낮은 3.2%로 완만한 감소세를 이어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1일 발표한 지난해 수출은 1년 전보다 7.4% 감소했다. 무역수지도 100억 달러쯤 적자를 냈다. 다만 우리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가 지난달 100억 달러를 돌파하며 두 달 연속 증가했고 무역수지는 하반기 163억 달러 흑자에 힘입어 적자 규모를 전년(-477억8000만 달러)보다 큰 폭으로 줄였다.

    그러나 유 전 부총리는 올해 경제 상황이 여전히 녹록잖을 거로 봤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이 더디지만 진정 기미를 보이고 수출은 회복세로 돌아섰으나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한 데다 100일도 채 남지 않은 총선 등 안팎의 변수가 산재해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유 전 부총리는 올해 우리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는지 일문일답으로 풀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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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데일리DB
    -요즘 근황부터.

    "법무법인에 고문으로 있다. 연세대 경영대학원 특임교수로 봄 학기에는 강단에 설 예정이다."

    -올해 세계 및 한국 경제는.

    "둘 다 어렵다. 국제기구는 지난해보다는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지만, 우리나라는 썩 좋지는 않은 거로 예측했던데. 아직 인플레 영향 남아 있고 정치·외교적인 상황도 해결 안 되는 기미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여전한 형국이다. 우리는 소규모 개방경제니까 국제 정치·경제적 환경이 안 좋으면 (덩달아) 안 좋은 거다."

    -주요 2개국(G2)은.

    "미국은 인플레가 조금 진정되는 것 아닌가 판단을 내린 것 같다. 각종 데이터가 그렇게 보인다. 잘하면 금리 인하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리로선 거시경제 부담을 덜어주는 측면이어서 좋은 거다.
    중국은 지난해 5.2% 성장을 예상하더라. 중국당국의 발표대로면 그래도 안정적으로 성장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중국당국은 올해도 괜찮게 성장할 거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성장하면 우리나라에 결코 나쁠 건 없다. 다만 미·중 모두 총체적으로는 지난해처럼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 ▲ 미 연준.ⓒ연합뉴스
    ▲ 미 연준.ⓒ연합뉴스
    -내년 통화정책 방향은.

    "미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제롬 파월 의장이 (금리를) 이제 안 올릴 가능성이 크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 금리를 인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할지가 관건인데, 먼저 우리의 금리 인하는 미국이 금리 인하로 갈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하는 것이므로 2분기냐, 3분기냐 성급히 판단하기 어렵다. 또 미국이 (인하 대신 상당 기간) 동결을 계속하는데 우리가 선제적으로 인하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보수적으로 볼 때) 미국이 하반기에나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제기되므로 우리는 그 시그널 이후에 시차를 두고 움직일 거로 예상한다."

    한미 간 역전된 기준금리 차이는 6개월째 역대 최대인 2.0%p(상단 기준)를 유지하고 있다.

    -신냉전이라 불리는 G2 갈등에 한국이 샌드위치 신세라는 말이 있다.

    "냉정하게 보면 그런 측면이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로선 안보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협조를 받아야 하는 처지로 우리의 레버리지라는 게 그리 많지 않다. 샌드위치라는 표현이 심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미·중 간 갈등을 조정한다든가 하는 위치는 아니다. 적응해 가야 하는 처지다. 미국과의 전통적 우호관계는 당연한 거겠고, (중국과의) 민간 부문에서의 협조 등은 지속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도 미·중 간 경제적 갈등에 신중하게 대처하고 있는데 그 밖에 왕도가 따로 있는 건 아닌 듯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에 대해선.

    "방한이 이뤄진다면야 굉장히 큰 이벤트가 될 거다. 얼굴 붉히러 방한하진 않을 거다. 방한한다고 해서 당장 정치·군사적으로 뭘 어떻게 한다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서로 어려운 입장을 이해한다고 접근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된다면 경제적 걸림돌이나 경직된 분위기 등은 풀릴 게 많다고 본다. (방한 카드는) 경제 파트너로서 중요한 인접국의 정상이 오는 거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수출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12월의 경우 20년6개월 만에 미국이 중국을 제치고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됐다. 연간으로도 미국은 지난해 18년 만에 아세안을 제치고 2위 수출시장으로 올라섰다.

    "의미심장하게도 보인다. 정치 상황 변화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인지, 구조적인 것인지 모르겠다. 구조적인 변화라면 어쩔 수 없다. 옛날같이 대(對)중국 수출이 모든 걸 압도하는 상황은 이제 벗어나는 게 아닌가 조심스럽게 관측해 본다. 다만 한·중 간의 관계는 어떤 부침은 있을지언정 대규모로 어떻게 될 것 같지는 않고, 대미 수출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수출 경쟁력이 있다는 거니까 나쁜 건 없다. 항상 우리가 수출선 다변화를 얘기하는데 중국과 관계가 어려울 때 얘기가 많이 나온 측면이 있다. 인도, 베트남 등 동남아 국가와의 교역이 확대되며 자연스럽게 중국 수출시장 비중이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하다."
  • ▲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난해 12월20일(현지시각) 하비에르 밀레이 신임 정권에 대항하는 첫 시위가 열렸다. 노동단체 주최로 개최된 이번 시위에 주최 측 추산 1만5000여명이 참여했다고 알려졌다.ⓒ연합뉴스
    ▲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지난해 12월20일(현지시각) 하비에르 밀레이 신임 정권에 대항하는 첫 시위가 열렸다. 노동단체 주최로 개최된 이번 시위에 주최 측 추산 1만5000여명이 참여했다고 알려졌다.ⓒ연합뉴스
    -아르헨티나가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 취임 후 소위 한밤중 냄비 시위를 벌이며 진통을 겪는 모습이다.

    "그게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문제다. 당연히 누리던 혜택을 딱 끊어버리면 괴롭다. 뺏겼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죠. 그러면 데모하게 돼 있다.
    밀레이 대통령이 밀어붙이는 정책이 옳은 것이냐, 실효성 있는 것이냐는 것은 조금 지켜봐야 한다. 다만 방향은 저렇게 안 하면 안 된다. 아르헨티나 국민의 선택은 맞다고 본다. 정책이 실효성 있게 정착하려면 정책적 기술 등 여러 가지가 필요한데, 인플레를 잡는다거나 무분별한 방만 지출을 확 줄인다든가 하는 것은 밖에서 보기에도 아르헨티나에 필요해 보인다."

    이어 유 전 부총리는 남미의 좌파 포퓰리즘으로 불리는 '페론주의'(페로니즘)에 대해 부연 설명했다. 페로니즘은 아르헨티나에서 1946~1955년, 1973~1974년 집권한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과 부인 에바 페론이 내세운 포퓰리즘 성향의 경제 사회정책을 통칭한다. 외국 자본 배제, 산업 국유화, 공공의료·대중교통 등 공공지출과 복지 확대,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자 수입 증대 등으로 요약된다.

    "여담인데, 페론은 정치적으로는 사실 우파다. 사람들이 자꾸 돈을 풀면 좌파라고 그러는데, 페론이 쿠데타로 집권하며 가난한 사람한테만 돈을 풀었느냐? 그건 아니다. 페론 자신이 군인이었지만, 가령 군인 연금도 막 올려주고 했다.
    문제는 좌파냐, 우파냐를 떠나서 감당하지 못할 돈을 너무 푸는 것은 포퓰리즘이고, 마침 지금의 좌파 정부들이 다 그걸 극단적으로 하고 있다. 좌냐 우냐를 떠나서 포퓰리즘이 나라를 망치는 건 틀림없다."

    -총선이 있는 올해 국가채무비율이 국내총생산(GDP)의 51%를 넘어선다.

    "더 줄였으면 좋았겠지만, 그나마 최선을 다해서 선방한 측면이 없잖다고 본다. 채무비율이나 재정 규모 등을 늘 조심해야 하는 것은 신인도와도 관련이 있지만, 소위 재량지출을 가지고 정부가 조절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다는 점이다. 재정을 한 번 올려놓으면 대개 의무지출이 물가와 연동돼 자동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조심하고 신경을 쓰는 것이다. 재정은 관성적으로 늘어나는 부분이 있어서 동결도 어렵다. 그러니 국가채무비율을 감소시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2024년 예산안 및 기금운용계획안'에 따르면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GDP의 3.9%에 달한다. 이는 정부가 법제화를 추진하는 재정준칙의 상한(3%)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

    -과거 새천년민주연합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2015년 9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년 예산안에서 재정건전성을 지키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온 국가채무비율 40%가 깨졌다. 박근혜 정부 3년 만에 나라 곳간이 바닥나 국민과 다음 정부에 나랏빚을 떠넘기게 됐다"고 성토한 바 있는데.

    "이론적으로 정해진 적정 채무비율이라는 건 없다. 가령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정도를 얘기할 순 있지만, 무슨 근거로 적절하냐 하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 당시의 상황에 맞춰서 이게 괜찮으냐 아니냐를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의 채무비율이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문재인 정부 5년간 너무 급격하게 올라갔기 때문이다. 한 번 올라가면 눈뭉치처럼 불어난다. 어? 어? 이러다 위험해지는 거 아니냐 하다가 금방 진짜로 위험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심지어 그걸 다시 내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미국, 일본의 국가채무비율이 우리보다 높지 않으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국제 결제의 기본이 되는 기축통화(基軸通貨)국과 비교하는 것은 좀 그렇다."

    유 전 부총리는 재정의 역할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재정이 더 역할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논의가 많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적자인데 여기서 더 많은 역할을 하게 되면 재정 규모는 더 커질 거고 그만큼 적자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채무비율은 또 올라가게 된다. (그런 악순환 때문에)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에 한계가 있다고 본다.
    그래도 '아니다. 재정 역할을 더 늘려야 한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럼 100번 양보해서 재정이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때 재정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 같은 혈세를 써도 연구·개발(R&D)이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등에 생산적으로 쓰이느냐, 그냥 일회성으로 쓰고 끝나느냐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소위 포퓰리즘이라는 것은 그냥 나눠 먹고 마는 게 많아지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지난 정부에서 논란이 됐던 일자리 예산이 대표적이다. 취약계층의 직업훈련 강화에 돈을 쓰면 그게 인적 자산이 돼 재취업도 잘 되고 노동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일회성 일자리에 투입해 노인 용돈에 그치면 같은 10억 원, 1조 원을 써도 그 재정적자의 구조나 효과는 천지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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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토부 장관도 지냈다. 요즘 PF 부실에 대한 걱정들이 많은데.

    "걱정된다. 태영건설 같은 거는 이미 터졌지만, 일단 부실화된 TF들을 확산하지 않게 잘 컨트롤해야 한다. 이게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한 결과인데 그중 하나가 PF 대출금리 문제다. 다만 앞서 얘기했듯이 기준금리를 확 낮출 수가 없는 상황이라 정책 당국의 고민이 생기는 지점이다."

    -일각에선 미분양을 털어낼 수 있게 취득세 감면 얘기가 나온다.

    "미분양 해소에 조금은 도움이 될 거다. 금리 인하 같은 근원적인 처방이 녹록잖은 처지에서 뭐라도 대책을 만들어내야 한다면 생각해 볼 만한 정책이다. 다만 쉽진 않다. 지금 취득세가 3%인가? 우선 그거 낮춘다고 얼마나 큰 도움이 될 것인가 따져봐야 한다. 또한 취득세도 법을 고쳐야 한다. 작금의 정치 지형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할 것인지가 문제다."

    -1인 가구가 증가세다. 비중이 34.5%로 역대 최대다.

    "일단, 주거문제로 좁혀 생각해 보면 앞선 문재인 정부에선 주택 공급은 충분하다고 했다. 그럼 걱정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문 정부는 1인 가구 문제를 간과했다. 우리 때는 한 집에 예닐곱 명도 살았지만, 1인 가구가 늘면 인구수는 줄어도 가구 수는 많이 늘어날 수 있는 거다. 3인 가구가 표준이 된 게 좀 됐는데 단순화해서 보면 만약 3인 가구가 전부 1인 가구로 바뀌었다면 주택은 3배가 필요한 셈이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느냐. 정부가 계획을 세워서 할 일은 아니다. 돈이 된다고 하면 건설업계가 움직일 거다. 수요에 맞는 집이 공급될 수 있게 정부가 쓸데없는 규제만 안 하면 비교적 잘될 거다. 경쟁이 붙으면 가격대도 하방요인이 생길 거다."

    -저출산 문제 심각한데.

    "언 발에 오줌 누듯이 지원금 주는 게 출산율 제고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의견이 있는데 그거라도 안 했으면 더 심각했을 거다. 그동안 돈 쓴 것에 비해 효과가 안 나온다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이제 문화가 바뀌어 결혼의 필요성을 인정 안 하는 사람이 대단히 많다고 느낀다. 그걸 바꿔주지 않는 한 자칫 백약이 무효가 될 수 있다. 일각에서 혼외자나 방송인 사유리 씨 같은 '비혼 출산', 동거 커플 등에 대한 지원을 얘기하는데 그건 그것대로 문화적인 문제가 생길 수가 있다. 하여튼 문화적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이민에 대해선.

    "역시 시간이 걸리고 쉽잖은 문제다. 우리 사회가 아직도 다양한 민족 구성을 잘 받아들이는 사회가 아니다. 단일 민족에 대한 관념이 매우 큰 나라다. 대신 그 방향으로라도 가긴 해야 한다. 녹록진 않다. 박근혜 정부 때 인재 영주권을 추진했는데 미스매치로 잘 안됐다. 오고 싶다는 사람은 우리가 인재라고 부르기엔 좀 그렇고, 우리가 원하는 사람은 미국, 일본 이런 곳으로 가길 원했다.
    일본에 문부성 장학금이라는 게 있다. 주로 외국인한테 준다.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외국 학생을 뽑아 장학금을 주고 이 학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국내 회사에 취업하면 적어도 군대는 몰라도 노동력 문제에는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국가 예산으로 장학금을 주는 건데 이 사람들이 사회에 잘 적응하면 귀화 가능성도 있다. 몇십 년 후 에스닉 오리진(민족)이 다양해지는 건 지금으로선 필연적일 것 같다. 누구를 원망할 수 없다. 우리가 그렇게 만든 거다."

    -주거비나 교육비 부담도 문제.

    "사교육비 경감, 안정적인 주거 비용 등이 필요하다는 데 100% 동의한다. 주택을 소유보다 주거의 개념으로 접근한 것은 좌우 가리지 않고 역대 정권 모두 했다. 박근혜 정부 때 민간 임대주택을 활성화한 '뉴스테이'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한 정책이었는데 정권이 바뀌니 일거에 없애버리더라 (아쉬웠다). 앞으로 전세는 점점 월세로 바뀔 거다. 월세를 합리적인 가격에 갈 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주거가 안정된다.
    또한 공급을 늘려야 한다. 전 정부 얘길 자꾸 해서 미안하지만, 전국 주택 보급률이 100%가 넘었다고 투기꾼에 의한 가수요를 막겠다며 세금을 올린다거나 하는 정책은 원인부터 잘못 잡았던 것이다. 서울도 보급률이 95%가 넘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살고 싶은 집의 공급이 충분한가 하면 얘기가 전혀 달라진다. 사람들이 강남에 살고 싶어 하는 것은 집값도 있겠지만, 교육도 중요하다. 그런데 문 정부는 거꾸로 사교육을 부추기는 정책을 펼쳤다. 지방에 있는 특목고, 자사고를 왜 없애나. 거기라도 가게 만들어줬어야 한다. 진단부터 틀리니 처방도 안 맞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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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정부의 규제 개혁에 대해.

    "바라는 만큼 안 된다는 뜻이겠죠. 정부 규제개혁위원회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원했던 만큼의 성과는 못 내고 있다. 그러나 규제 개혁의 많은 부분이 역설적으로 법이다. 법을 고쳐야 할 게 많은데 (거야(巨野)에 막혀) 안 되는 게 많다. 3대 개혁 중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게 노동 개혁이다. 선례가 있다. 바세나르 협약(노사정 대타협), 하르츠 개혁 같은 것을 해야 한다. 우리 노사정위원회가 그거 하라고 있는데, 상대가 있으니 그렇긴 하지만, 진전이 안 되는 게 답답하다. 노동개혁이 된다고 노동생산성이 갑자기 몇 배 뛰어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

    유 전 부총리가 언급한 바세나르 협약은 일명 '네덜란드병'을 고친 사례다. 당시 43세의 뤼트 뤼버르스 총리가 노조와 기업을 설득해 재정 중독, 통화가치 하락, 임금 인상, 실업률 급증의 악순환을 끊었다. 하르츠 개혁은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의 노동 개혁으로,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는 노사 대타협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화 확대, 실업지원금 수령 조건 강화 등을 과감하게 추진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육성에 대해.

    "역시 규제 완화와 관련됐다. 의료 바이오를 예로 들면 정부가 직접 투자할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정부가 세금을 투입하기보다 산업이 잘 될 수 있게 뒷받침하는 게 중요하다. R&D 비용도 장사가 되면 기업들이 알아서 한다. 투자할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새해 희망적인 전망은 없나.

    "국제 경제 환경이 지난해보다는 (다소) 나아질 거라는 게 희망의 사인이다. 또한 정치적인 것을 제외하면 정부가 개혁 방향을 잘 잡았고 국민도 기본적으로는 동의해 주시는 것 같으니 그것도 희망적이다. 3대 개혁이 아직 별로이지만, 진전이 된다면 국가 성장잠재력을 높이게 될 겁니다. 어찌 보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아직 그렇게 안 됐기 때문에,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게 희망입니다. 규제 개혁을 계속하면 의미 있는 진전을 이뤄낼 수 있을 겁니다."

    -신임 최상목 부총리에게 조언한다면.

    "윤 정부의 정책 기조를 힘 있게 밀고 나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거시경제 환경은 시시각각 변한다. 끊임없이 찾아온다. 또 정책은 타이밍이다. 그래서 경제부총리는 바쁘다. 부동산 PF 문제도 총괄해야 하는 게 부총리다.
    또한 정책은 부작용이 항상 수반된다. 열린 귀를 가져야 한다. 최 부총리는 유능한 사람이니 판단은 잘할 거다. 그러기 위해 먼저 잘 들어야 한다. 많은 이야기를 들을 시간 자체가 부족할 수 있는데 다행히도 유능한 외부 전문가, 기재부 공무원들한테서 듣는 공식 채널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기재부 장관 할 때 최 부총리가 1차관이었다. 잘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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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는 1955년생으로, 경제학자 출신 정치인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국토교통부 장관을 거쳐 경제부총리를 맡았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한국조세연구원장 등을 역임했다. 부친인 고(故) 유치송 민주한국당 총재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서울 송파을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에 입성했고, 19대에 재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