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효과로 AA급, A급까지 회사채 시장 전반 훈풍PF 사업 부담 기업은 발행 연기…롯데그룹사 채안펀드 도움 증권채도 PF 리스크 따라 희비 갈려
  • 연초효과로 AA급은 물론 A급까지 회사채 시장 전반에 훈풍이 부는 가운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부담이 있거나 업황이 어려운 기업들은 회사채 발행을 미루거나, '오버금리' 발행에 나서는 등 양극화가 뚜렷한 모습이다. 

    19일 지난 18일 에쓰오일(AA)은 5년물 1700억원, 7년물 600억원, 10년물 700억원 등 총 3000억원 규모 채권 발행에 대한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5년물은 8700억원, 7년물은 1400억원, 10년물은 2900억원이 모이면서 총 1조3000억원의 주문을 받아내는 데 성공했다. 정유업종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이 투자 수요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같은 날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한 LG헬로비전(AA-)은 모집액 11배를 웃도는 1조1600억원의 자금을 끌어모았다. LG헬로비전은 2년물 200억원, 3년물 800억원에 대한 수요예측을 진행했는데 2년물은 2100억원, 3년물은 9500억원의 주문이 몰렸다. 

    LG유플러스(AA) 역시 지난 4일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2500억원 모집에 6배가 넘는 1조7100억원의 주문을 받아내면서 5000억원 증액 발행을 결정했다. 기관들이 낮은 금리에 매수 주문을 넣으면서 모든 트렌치에서 언더발행에 나섰다. 

    A급 회사채에도 온기가 확산되고 있다. 한화(A+)는 지난 17일 1500억원 규모로 진행한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1조4940억원을 모집했다. 2년 만기 회사채는 600억원 모집에 4810억원이 들어와 8배, 3년 만기 회사채는 900억원 모집에 1조130억원의 주문이 들어와 11배 규모가 각각 모였다. 

    같은 날 SK렌터카(A+)에도 1조원 넘는 자금이 모여들었다. 2년물 400억원 모집에 4370억원, 3년물 800억원 모집에 6650억원, 5년물 300억원 모집에 1350억원이 각각 모였다. 2년물은 -15bp, 3년물은 -25bp, 5년물은 -37bp에서 모집 물량을 모두 채웠다.

    최근 회사채 시장이 훈풍이 부는 건 금리인하 기대감이 큰 가운데 새해에 기관이 상대적으로 넉넉히 자금을 푸는 연초효과 덕분이다. 금리가 정점을 찍었다는 인식이 퍼진데다 계절효과가 더해져 채권 발행 호기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부동산 PF 영향권 회사채는 위축…증권채도 희비

    다만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고 있다. 태영건설 사태로 건설업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는 가운데 관련 업종이나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리스크 영향권에 있는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은 미뤄지고 있다. 

    대우건설(A)은 2021년 이후 3년 만에 회사채 시장 복귀를 위해 연초부터 증권사들과 논의를 진행했지만 계획을 연기했다. 대우건설은 1.5년물과 2년물을 합쳐 최대 1000억원 규모 회사채를 발행할 계획이었지만 태영건설 워크아웃 변수가 터지면서 발행 일정을 미루기로 했다. 

    우량 기업인 롯데케미칼(AA)은 이달 예정된 최대 4000억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 일정을 오는 4월 이후로 연기했다. 건설 계열사 리스크가 회사채 발행을 연기한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롯데케미칼은 롯데건설 지분 약 44%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롯데케미칼은 레고랜드사태 여파가 한창이던 지난 2022년 말 롯데건설에 5800억원가량 자금 지원에 나선 바 있다.

    이를 비롯한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높은 신용도에도 연달아 채권시장안정펀드(채안펀드)의 도움을 받고 있다. 그룹 두 주축인 케미칼과 쇼핑이 모두 업황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자금 조달에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롯데지주(AA-)는 지난 17일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한 결과 2년물 900억원, 3년물 1500억원, 5년물 200억원에 대한 수요예측에서 민평 대비 높은 수준에 발행 금리가 결정됐다. 채안펀드는 2년물에서 +4bp에 450억원 규모로 들어오면서 2년물 모집 물량의 절반을 가져갔고, 3년물에서도 +4bp에 750억원의 주문을 써내면서 모집 물량인 1500억원의 절반을 담당했다.

    앞서 지난 9일 롯데쇼핑(AA-)은 2500억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 결과 2, 3, 5년물의 모든 트렌치에서 목표한 물량 이상의 자금이 몰렸지만 3년물 금리가 개별 민평금리 대비 4bp 높은 수준에서 형성됐다. 3년물에는 채안펀드 자금이 일부 유입된 것으로 전해진다.

    증권채 내에서도 부동산 PF 리스크에 따라 수요예측 결과가 갈리고 있다. 

    미래에셋증권(AA)은 지난 9일 진행한 3000억원 규모회사채 수요예측에서 2년물 500억원에 1600억원, 3년물 2200억원에 3400억원, 5년물 300억원에 1000억원 등 총 6000억원의 매수 주문이 들어왔다. 다만 AA급 우량채임에도 모든 트렌치에서 오버 발행이 확정됐다. 

    태영건설 여파로 증권업계 부동산PF 부실화 우려가 다시 부각된 영향이다. 미래에셋증권은 해외 대체투자 익스포저(위험 노출액)가 대형사 중에서도 가장 높다.

    한국투자증권의 모회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이달 17일 회사채 수요예측을 계획했지만 발행 계획을 전면 철회하기로 했다. 미래에셋증권 수요예측 과정에서 반영된 기관투자가들의 보수적인 투자 심리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투자증권은 증권사 중 태영건설 익스포저가 가장 높은 곳이다. 

    반면 유사 시 삼성그룹 계열사의 지원 가능해 부동산 PF 리스크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삼성증권은 회사채 수요예측 흥행에 성공했다.

    삼성증권(AA+)은 이날 2년물 700억원 3년물 1300억원 등 총 2000억원어치 회사채 수요예측을 열었다. 모집 결과 2년물에 6400억원, 3년물에 9600억원 등 총 1조6000억원의 매수주문이 들어왔다. 모집액 기준 가산금리는 2년물 0bp(bp=0.01%포인트), 3년물 -2bp로 언더발행에도 성공했다.

    태영건설 사태를 비롯해 금리 인하 시기 등 불확실성이 이어지면서 회사채 시장은 양극화가 지속될 전망이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연초 우량채 중심으로 1조원 이상 자금을 모으면서 발행시장은 우호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다만 건설이나 PF 관련 금융기관에 대한 경계감, 일부 산업에 대한 비우호적 전망 등을 감안하면 기업 자금 모집에 있어서 선호도는 차별화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관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