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년 4분기 3.3% 성장… 깜짝 소비 늘며 전망치 1.3%p 웃돌아한국, 올해 반도체 등 수출 회복세 기대에도 1%대 성장 전망 잇따라"규제개혁 고삐 조여야"… 체질개선 미루다 저성장 터널 진입할 수도
  • ▲ 수출.ⓒ연합뉴스
    ▲ 수출.ⓒ연합뉴스
    경제 규모가 한국의 15배나 되는 미국이 지난해 우리의 1.8배 성장률을 기록하며 꿈의 '골디락스'(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이상적인 경제 상황) 시나리오에 다가서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여전히 스태그플레이션(경기둔화속 물가상승)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성장률은 1.4%에 그치며 25년 만에 일본(2.0%)에 역전을 허용했다. 더 심각한 것은 올해도 1%대 성장에 머물 거라는 전망이 잇따라 제기되며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된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강도 높은 규제 개혁으로 혁신 성장 동력의 걸림돌을 치워 경제 구조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지난 25일(현지시각) 미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속보치)은 연율 3.3%로 집계됐다. 애초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성장률 전망치(2.0%)를 웃도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고물가·고금리 압박 속에서도 지난해 3분기 4.9%의 이례적인 성장률을 기록한 데 이어 4분기에도 탄탄한 회복세를 보인 것이다.

    민간투자 증가율이 지난해 3분기(10.0%)보다 감소한 2.1%에 그쳤지만, 미국 경제의 70%를 차지하는 개인소비가 2.8% 증가하며 경제 성장을 견인했다. 개인소비의 성장률 기여도는 1.91%포인트(p)에 달했다.

    미국의 지난해 연간 성장률은 2.5%로 집계됐다. 전문가들은 지난해 견조한 흐름을 보였던 미국 경제 성장세가 4분기부터는 둔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보다 ▲고금리 ▲민간저축 소진 ▲학자금 대출상환 재개 등 경기에 부정적인 요인이 산재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재정부양책의 효과가 사라지고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급격한 금리 인상 누적 효과가 나타남에 따라 소비 약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봤다.

    그러나 연말 소비시즌에 예상을 웃도는 '깜짝 소비'가 이어지면서 미 경제는 4분기 들어서도 3%대의 강한 성장세를 이어갔다. 일각에서 노동시장 약화 징후를 지적하고 있지만, 미 고용시장은 여전히 견조한 모습이다. 미 노동부가 발표한 지난 13일 기준 주간 신규 실업보험 청구자 수는 18만9000명으로 직전 주보다 1만4000명 감소했다. 이는 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20만8000명을 크게 밑돌았다.

    경기침체 가능성이 옅어지면서 금리인하 기대감은 낮아지고 있다. 하지만 예상보다 탄탄한 미국 경제를 두고 안팎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2030년을 전후해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사그라들었다. 오히려 미·중 간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21년 미국 경제의 76%까지 따라붙었던 중국의 경제 규모는 지난해 64% 수준으로 떨어졌다.
  • ▲ 소비.ⓒ연합뉴스
    ▲ 소비.ⓒ연합뉴스
    반면 우리나라는 경제 상황을 낙관하기 어려운 처지다. 수출이 회복세로 돌아선 것은 고무적이지만,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고금리·고물가 여파에 하방 위험도 상존한다.

    수출은 반등세가 뚜렷하다. 지난해 12월 수출은 576억6000만 달러로, 1년 전보다 5.1% 증가했다. 3개월 연속 증가했다. 조업일수가 1년 전보다 2일 부족했는데도 2022년 7월(602억 달러) 이후 17개월 만에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조업일수를 고려한 하루평균 수출 증가율은 14.5%로 두 자릿수를 보였다. 2022년 6월(14.9%) 이후 18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달 중순까지 수출도 조업일수를 고려한 하루평균 수출액이 2.2% 증가하며 4개월 연속 증가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반도체 수출은 25.6% 늘었고, 대중(對中) 수출도 0.1% 증가해 2022년 5월(1.3%) 이후 20개월 만에 플러스 전환이 기대된다.

    하지만 내수와 투자 부진은 경제 회복의 걸림돌이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8일 발간한 '최근 경제동향 1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경기 부진이 점진적으로 완화하는 모습"이라면서도 "내수가 다소 둔화하는 흐름을 보였다"고 진단했다. 2022년 이태원 참사에 따른 소비 위축 기저효과와 지난해 11월 진행한 코리아세일페스타 등 대규모 할인행사 등을 고려할 때 소비 둔화가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건설경기가 악화하면서 앞으로 건설경기 동향을 보여주는 선행지표인 건설수주는 29.5% 급감했다.

    고금리 여파로 경제 활력이 저하되고 있지만, 역대 최대로 벌어진 한·미 간 역전 금리 차이와 급증한 가계부채, 인플레이션 우려 등으로 금리를 성급히 내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설상가상 저성장이 고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2.2%로 제시했다. 하지만 신한투자증권(1.7%), LG경영연구소(1.8%), KB금융지주(1.8%), 자본시장연구원(1.9%) 등은 올해도 1%대 성장에 그칠 것으로 분석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지난달 "(새해) 경제성장률 전망(2.1%)은 반도체 등 IT 수출 회복을 전제로 한 것"이라며 "IT를 제외하면 1.7%로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수준"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잠재성장률 하락세도 근심거리다. 잠재성장률은 앞으로의 경제성장을 예측하는 지표다. 노동·자본 등 한 나라의 생산 요소를 모두 활용했을 때 물가 상승 압력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최대한 이룰 수 있는 경제성장률을 말한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은 빠르고 심각하다. 지난 2000년대 초반 5~6% 수준이던 잠재성장률은 2011~2015년 3.1~3.2%, 2016~2020년 2.5~2.7% 등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분석한 한국의 올해 잠재성장률은 2.0%다.

    OECD는 2021년 발표한 2000~2060년 장기 재정전망 보고서에서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생산성 저하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잠재성장률이 2030년 이후에 0%대(평균 0.8%)로 추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캐나다(0.8%)와 함께 38개 회원국 중 꼴찌에 해당한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떨어진 기초체력을 끌어올릴 반등 요인이 크지 않다는 점이다. 인구구조 변화로 노동력 공급도 여의치않을 수 있다는 전망이다.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를 보면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2022년 3674만 명에서 2030년 3417만 명, 2040년 2903만 명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자본의 생산성도 기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우리나라 경제가 성숙기에 진입하면서 투자 둔화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규제 개혁의 고삐를 조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해 10월 모로코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 참석 중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노동시장 구조조정, 경쟁 촉진, 여성·해외 노동자 활용 등 구조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 장기적 목표를 2% 이상으로 가는 방향을 말하고 싶다"고 제언했다.

    노동시장을 예로 들면 전문가들은 미국의 견조한 고용 실적과 관련해 해고와 취업이 자유로운 고용 환경을 주목한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해고가 자유롭다. 지금의 탄탄한 고용시장은 코로나19 때 해고가 이뤄졌고, 팬데믹이 풀리면서 그만큼 고용이 많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소야대 정치지형 등으로 말미암아 국민이 체감하기엔 성적이 미미한 수준이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는 최근 본지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정부 규제개혁위원회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원했던 만큼의 성과는 못 내고 있다. 국민이 바라는 만큼 안 된다는 뜻"이라며 "그러나 규제 개혁의 많은 부분이 역설적으로 법이다. 법을 고쳐야 할 게 많은데 (거야(巨野)에 막혀) 안 되는 게 많다"고 아쉬워했다. 유 전 부총리는 "윤 정부가 추진하는 3대 개혁 중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게 노동 개혁이다. 바세나르 협약(노사정 대타협), 하르츠 개혁 같은 것을 해야 한다"면서 "노동개혁이 된다고 노동생산성이 갑자기 몇 배 뛰어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최근 경제 활력을 높이기 위해 감세정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잇단 정책 드라이브가 투자 확대와 고용 창출, 소비 진작 등의 선순환으로 이어지려면 제도 개선과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강석구 대한상공회의소 조사본부장은 "정부의 경제정책방향이 실질적인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구체적 추진과정에서 기업 현장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입법화 등 제도개선 작업도 속도감 있게 추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