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지난해 GDP 대비 -0.3% 역성장… IMF "올해도 저성장" 우려수출·제조업 위주 산업구조, 높은 中 의존도 등에 발목독일과 닮은 한국경제, "규제개혁 속도전 나서야"
  • ▲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공장지대.ⓒ연합뉴스
    ▲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공장지대.ⓒ연합뉴스
    유럽 경제의 성장 엔진으로 주목받아 온 독일이 지난해 주요 7개국(G7) 중 유일하게 역성장을 기록하면서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다. 하르츠 노동개혁을 통해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하며 여러 나라의 부러움을 샀던 독일이 신산업 육성 등 구조 개혁을 게을리하면서 다시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 모로 독일과 닮아 있는 한국이 독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0일(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독일의 국내총생산(GDP)은 전년보다 0.3% 감소했다. 독일 경제가 역성장을 기록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범유행) 시절인 2020년(-3.7%) 이후 3년 만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등으로 팬데믹 상황이 아닌 데도 유럽연합(EU) 맏형 격인 독일 경제가 뒷걸음질친 셈이다.

    독일의 역성장은 예견됐던 상황이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9월 발간한 해외경제포커스 '최근 독일 경제 부진 배경과 시사점'에서 "독일은 G7 가운데 유일하게 역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제 상황이 단기에 개선되기 어려워 '유럽의 병자'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고 분석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세계경제전망에서 지난해 독일의 성장률 전망치를 마이너스(-) 0.5%로 전망했다. 앞선 7월 전망(-0.3%)보다 0.2%포인트(p) 낮춰잡았다. 이번에 집계된 성장률은 지난해 7월 수준으로, 오히려 10월 전망치보다 개선된 셈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IMF는 올해도 독일이 저성장을 면치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IMF가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전망한 독일의 올해 경제성장률은 0.9%다. 1년 만에 플러스 성장으로 전환될 거로 예상됐지만, 종전 7월 전망치(1.3%)와 비교하면 0.4%p 하향 조정된 수치다.

    지난해 독일의 역성장과 관련해 외르그 크레머 코메르츠방크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건(역성장은) 매우 드문 일이다. 2000년대 주식시장 거품이 터진 직후 몇 년간을 상기하게 한다"면서 "독일 경제가 코로나19 발생 이후 전혀 성장하지 못한 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IMF 전망에 따르면 지난해 선진국 중 역성장은 독일이 유일하다. IMF는 주요 7개국(G7) 중 독일만 유일하게 GDP가 전년대비 감소했을 것으로 본다. 유로존의 경우 10월 전망치가 0.7%로, 종전보다 0.2%p 하락하긴 했으나 역성장은 피했다. 프랑스는 1.0%로 종전보다 오히려 0.2%p 상향 조정됐다.

    지금까지 성장률을 공개한 나라 중 독일보다 낮은 나라는 아일랜드(-0.7%)뿐이다.
  • ▲ 규제 개혁.ⓒ연합뉴스
    ▲ 규제 개혁.ⓒ연합뉴스
    그동안 유럽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독일이 마이너스 성장 위기로 내몰린 배경은 복합적이다. 수출 제조업에 치우친 산업 구조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위기, 중국 의존도가 큰 공급망 위기 등의 외부 악재와 함께 노동 인구의 고령화 등 내부 요인이 겹쳤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독일의 이런 경제·사회적 취약점이 우리나라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는 점이다. 경제전문가들이 독일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독일의 산업 구조이다. 우리나라처럼 수출과 제조업 의존도가 높은 독일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첨단산업 분야 경쟁력을 키우는 데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엔산업개발기구(UNIDO) 등에 따르면 독일은 지난 2021년 기준 글로벌 제조업 경쟁력 지수 1위다. 반면 디지털 산업 경쟁력은 세계 19위에 그쳤다. 연구·개발(R&D) 투자 규모는 세계 4위로 상위권이지만, 대부분의 투자가 자동차, 전자기계 등 기존의 소위 잘 나가는 산업에 집중돼 있다. 독일 경제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산업도 전기차 시장에선 미국 테슬라나 중국 비야디(BYD)에 밀린 후발주자 신세다.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중국은 7년 연속 독일과 교역 비중이 가장 큰 국가다. 중국의 고도 성장기 중국의 성장이 독일 제조업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지난해는 미·중 갈등이 첨예해지고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마저 예상을 밑돌면서 그 여파가 독일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설상가상 에너지 정책도 독일의 어려움을 가중했다는 견해다.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면서 탈원전 정책을 펼쳤다. 앞서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이며 롤모델로 삼은 곳이 바로 독일이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탈이 났다. 독일 경제의 주력 중 하나인 석유화학산업은 가스 공급의 과반을 저렴한 러시아산에 의존해 왔는데,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에 대한 서방의 경제 제재가 강화되면서 에너지 가격이 뛰어 제품 가격이 경쟁력을 잃어버렸다.

    또한 고령화에 따른 숙련 노동자 부족과 잇단 파업 등으로 인한 경제불안도 독일의 경제 성장을 갉아먹는 내부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독일이 과거 하르츠 개혁을 성공시켰을 때와 같은 과감한 구조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위기의식을 독일 경제계도 마찬가지로 느끼고 있다.  독일 경제단체 4곳은 올라프 숄츠 총리에게 보낸 개혁 요구 서한에서 "독일 경제는 중대한 구조적 난관에 봉착했다"며 전기요금 인하·인프라 투자·세제 개편 등을 요구했다.

    경제·사회적 여건이 여러 모로 독일과 닮은 우리나라로선 독일을 거울 삼아 구조개혁의 고삐를 더 바짝 조여야만 하는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노동·교육·연금 '3대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여소야대 정치지형 등으로 말미암아 국민이 체감하기엔 성적이 미미한 수준이다.

    유일호 전 경제부총리는 본지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정부 규제개혁위원회가 열심히 하고 있는데 원했던 만큼의 성과는 못 내고 있다. 국민이 바라는 만큼 안 된다는 뜻"이라고 진단했다. 유 전 부총리는 "윤 정부가 추진하는 3대 개혁 중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게 노동 개혁이다. 바세나르 협약(노사정 대타협), 하르츠 개혁 같은 것을 해야 한다"면서 "노동개혁이 된다고 노동생산성이 갑자기 몇 배 뛰어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생산성을 올릴 수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강조했다.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 교수는 "진짜 노동개혁을 하고 싶다면 정부가 책임지고 하면 된다. 대통령 직속 노·사·정 대화기구인 한국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정부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만든 것"이라며 "독일 정부가 과거 하르츠 개혁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총리가 책임을 지고 일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국회는 노동개혁을 위한 법률을 만들고 정부는 노동계를 설득하면 된다. 정치적 책임은 지도자가 지면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