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랫폼법 반응 안 좋자 사실상 재검토… '주52시간제'와 닮은꼴 행보정책 대상·전문가 의견수렴 부족… 전문가 "발표 후 상황 안 좋으면 발 빼"공정위 "플랫폼법 추가 검토 필요할 뿐 추진 의지 약화는 아냐"
  • ▲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열린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 조홍선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이 22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서 열린 슈링크플레이션 대응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을 추진한 공정거래위원회가 업계 여론 악화에 사실상 한발 물러났다. '주 최대 69시간' 근무제라며 비판을 받은 근로시간 개편안의 정책 추진 과정과 모양새가 겹치면서 일각에서는 정부의 '아니면 말고식' 설익은 정책 추진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조홍선 공정위 부위원장은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플랫폼법 발표 무기한 연기에 대해 "국내외 업계와 이해관계자 등과 폭넓게 소통하고 사전지정 제도를 포함해, 다양한 대안을 열어 놓고 논의 중"이라며 "법안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지금 안을 공개하면 오히려 불필요한 오해가 생길 수 있어 당장 공표하기보다는 다양한 의견을 듣고 검토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조 부위원장은 이어 "시기적으로는 어느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싶다"면서 사실상 전면 재검토를 내비췄다.

    플랫폼법은 지난해 12월 독점력을 가진 플랫폼 사업자를 지정해 시장지배적인 지위를 남용하지 않도록 감시를 강화하는 법안이다. 선정된 플랫폼 사업자는 자사 우대·끼워팔기·멀티호밍 제한(자사 플랫폼 이용자에 경쟁 플랫폼 이용을 금지하는 행위)·최혜대우 등의 4가지 행위가 금지된다.

    공정거래법으로도 처벌은 가능하지만, 사건 처리 과정이 늦어 플랫폼의 독점이 강화되고 시장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문제가 반복돼 플랫폼법이 추진됐다. 실제로 카카오모빌리티의 경우 가맹택시에만 '콜 몰아주기'를 해 2020년 1월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했지만, 올해 2월이 돼서야 과징금 257억 원과 시정명령을 받았다.

    문제는 플랫폼 대기업의 독과점을 방지하고 스타트업체를 보호하자는 취지가 무색하게 플랫폼법에 대해 스타업계뿐 아니라 국회·전문가들도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지난달 31일 강남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앤 스페이스에서 열린 '플랫폼 규제 법안과 디지털 경제의 미래' 세미나에서 "스타트업을 가장 적극적으로 인수하는 곳이 바로 '시장 독점'이라는 지적을 받는 네이버와 카카오"라며 "성장 제한이 명확한 생태계에 누가 적극적으로 투자하겠냐"고 꼬집었다.

    전성민 한국벤처창업학회장도 "플랫폼 시장 특성상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협업이나 인수합병이 불가피한데 이 부분이 약해질 수 있다"고 발표했다.

    국회도 회의적이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 5일 발표한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의 규제 이슈에 대한 검토' 현안분석 보고서를 보면 "현행 공정거래법 체계 아래서 지배자 플랫폼 사업자를 사전 지정하는 방식의 규제를 도입할 필요성과 시급성이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며 "사전지정이라는 손쉬운 길을 선택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오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오찬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이처럼 정책 대상의 반발로 정부에서 추진한 정책이 사실상 재검토에 들어간 경우는 또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야심 차게 추진한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이 그것이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2022년 6월 23일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브리핑에서 '주 최대 52시간제'의 기본 틀은 유지하되 "'주 단위'로 초과근로를 관리하는 방식은 주요 선진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며 "주요국은 기본적으로 노사 합의에 따른 선택권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시간을 한달 단위로 유연하게 쓰는 총량 관리제도가 검토됐다.

    현행법상 1주에 가능한 근로시간은 40시간, 연장근로는 12시간으로 총 52시간이다. 정부는 이 연장근로 시간을 한 달 단위로 운영할 수 있게 해 1주 평균 근로시간이 12시간 넘지 않는다면 특정 주에 12시간 이상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이를 두고 '주 최대 69시간' 이라는 비판과 함께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지난해 6~8월 두달 간 근로시간 개편안과 관련해 6000여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다. 결과는 지난해 11월 발표했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중 48.2%가 주 52시간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했고 사업주의 85.5%가 '(주 52시간제로) 애로사항을 겪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노동부는 설문 결과에 따라 주 52시간제의 틀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기존 개편안 폐지를 밝힌 셈이다.

    정부가 야심 차게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뒤 여론의 뭇매를 맞으면 물러서는 행보가 되풀이되자 전문가들은 정책 수립의 치밀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정흥준 서울과학기술 경영학과 교수는 플랫폼법과 관련해 "정부 부처가 추진하는 플랫폼법이 여론과 현황을 제대로 분석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제조업은 하도급업체나 공급사 같이 계약 관계가 명확하기 때문에 규제가 필요한 부분은 공정거래법을 활용해 독과점 등의 문제를 방지할 수 있지만, 플랫폼 업체는 제조업과 다른 사업 방식을 띄고 있어 공정거래법을 접목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 정부의 플랫폼 업체에 대한 규제 기준 자체가 애매하다"며 "해외의 경우 플랫폼 기업에 규제를 가하는 법이 없는 상황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제조업 규제에 기반을 둔 공정거래법을 플랫폼 업체 규제에 활용할건지, 해외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행태나 불공정 상황을 기준으로 잡아 규제할 건지 등이 분명하지 않다"고 했다.

    특히 "플랫폼 기업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는데 그런 부분들이 충분히 수렴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정부 정책에 찬성할 기업도, 근로자도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박용철 한국노동연구소 소장은 주 52시간 근무제와 플랫폼법을 두고 "정책 발표 후 상황이 안 좋으면 발 빼는 행보"라고 비판했다.

    박 소장은 주 52시간 근무제 개편안 추진 과정에 대해 "정책을 펼 때 당사자들을 불러서 사전에 논의하고 의견 수렴을 하는 등의 행보가 부족했다"면서 "당시 탄력근로제, 근로시간 연장 등을 검토하다가 장벽에 부딪히니 슬그머니 물러서는 모양새였다"고 지적했다.

    한편 육성권 공정위 사무처장은 이날 "업계 부담을 줄이고 플랫폼 규율 방안까지 열어 놓고 추가적인 검토를 할 필요가 있는 게 핵심"이라며 "추진 의지가 약해지고 재검토를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