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금융권 대상 부동산PF 부실채권 매각 압박 가중캐피탈 5조·저축은행 4.8조 등 10조 안팎 손실 우려민간금융사 등 매수자, 낮은 가격만 제시…"원금 회수 불가""충당금, 보수적 적립…부동산 경기 회복까지 만기 연장도 방법"
  • ▲ 서울시내 한 재건축 현장. 221024 ⓒ연합뉴스
    ▲ 서울시내 한 재건축 현장. 221024 ⓒ연합뉴스
    "당국이 경·공매 활성화를 유도하면서 매물이 늘어나면 민간운용사들이 가격을 더 낮춰서 쓸 거다. 그러면 손실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적절한 해법이 아니라고 본다." (A 저축은행 관계자)

    금융당국이 총선 직후 부동산PF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2금융권을 향해 "관련 부실채권을 매각하라"고 압박하기 시작했다. 2금융권은 이에 대해 반발하면서도 겉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충당금을 보수적으로 적립해둔 데다 시간이 지나면 이익을 낼 가능성이 없지 않은 만큼 '버티기'냐 '울며 겨자 먹기'냐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저축은행업계에 지난달 기준 부동산PF 토지담보대출 사업장 현황을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이번 요청은 올해 초 금감원이 저축은행의 토지담보대출 대손충당금을 부동산PF에 준할 정도로 쌓도록 요구한 것에 대한 후속 조치다.

    당국은 이달 말 PF 사업장 옥석 가리기의 기준이 될 사업성 평가 기준 개편안 발표를 앞두고 시중은행과 보험사, 증권사, 저축은행 등 업권별 개별 면담 또는 간담회 이후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기 위한 추가 인센티브안 검토에 돌입했다.

    당국은 PF 사업성 평가 기준을 4단계로 세분화하고 사업장별 PF대출 충당금 최소 적립률을 △정상 2% △요주의 10% △고정 30% △회수의문 75% 등으로 나누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경·공매를 통해 PF 부실채권 매각가격이 낮아지면 PF 사업장에 돈이 돌면서 사업장이 정상화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이르면 이달 말 개편된 기준을 발표하고, 사업장을 재분류해 하반기 중에는 악화 우려나 회수의문 사업장에 대해서는 경·공매 등 부실 정리 또는 사업 재구조화 계획을 제출받아 이행 상황을 점검할 예정이다.

    실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최근 부실 부동산PF에 대한 경·공매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복현 원장은 "채산성이 낮은 사업장은 주인이 바뀌어야 한다"면서 브리지론 등 사업성이 낮은 PF 사업장을 보유한 저축은행 등에 사실상 매각을 촉구했다.

    앞서 신용평가업계에서는 증권사와 캐피털사,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의 부동산PF 예상 손실 규모가 최대 13조8000억원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미 적립한 대손충당금 5조원을 제외하면 최대 8조7000억원의 추가 충당금 적립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자사 신용평가 대상인 국내 26개 캐피탈사의 지난해 말 기준 부동산PF 익스포저(브릿지론성 토지담보대출 포함) 27조원 가운데 부동산 경기 하강 시나리오별 분석 결과 최소 2조4000억원, 최대 5조원의 손실 발생이 추정된다고 밝혔다.

    세부적으로는 브릿지론 9조6000억원 중 17~35%인 1조6000억~3조4000억원, 본PF 17조4000억원 중 4~9%인 7000억~1조6000억원의 손실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결론이다.

    캐피털업계 한 관계자는 "증권사나 저축은행의 경우 대응할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지만 여신사업자인 캐피탈은 여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며 "PF 사업장 손실이 실현된다면 원금 회수가 어려워 도산이 우려되는 캐피탈사도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한 나이스신평은 자사 신용평가 대상인 국내 16개 저축은행의 부동산PF 익스포저 7조7000억원 중 11.4~20.8%에 달하는 9000억~1조6000억원의 부실화가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저축은행업권 전체 부동산PF 익스포저 예상 손실 규모는 2조6000억~4조8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신평 측은 "부동산시장 부진 장기화로 요주의자산의 고정화가 진행될 경우 대손비용 반영폭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며 "특히 브릿지론 사업장의 70% 이상이 이미 1회 이상 만기연장된 사업장임을 고려하면 브릿지론을 중심으로 지연된 잠재부실 규모가 상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 ▲ 캐피탈 부동산PF 시나리오별 예상손실. ⓒ나이스신용평가
    ▲ 캐피탈 부동산PF 시나리오별 예상손실. ⓒ나이스신용평가
    문제는 2금융권의 소극적인 자세다. 저축은행 입장에서는 부실채권 가격을 두고 매수자인 민간금융사와의 의견차가 벌어지면서 원금 회수 가능성이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매수자인 민간금융사들과 시각차가 있다고 봤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운용하는 1조1050억원 규모의 부동산PF 사업장 정상화 지원 펀드는 캠코가 5000억원, 민간운용사들이 나머지를 출자해 운용하고 있다. 그러나 6개월 동안 1000억여원 규모의 거래 1건만 성사되는 등 지지부진한 진행률을 보여왔다.

    저축은행들은 민간운용사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요구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지난해 10월 저축은행들이 재무적투자자(FI) 없이 자체적으로 결성한 330억원 규모의 펀드가 5개월 만에 전액 집행된 것과 비교하면 민간에서 제시하는 가격이 너무 낮아 매각이 되지 않고 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저축은행들은 이미 보수적으로 충당금을 적립한 만큼 원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손해를 보면서까지 매각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손해를 보면서 PF 채권을 매각하기보다는 연체율 상승을 고려하더라도 부동산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만기를 연장하는 것이 낫다는 설명이다.

    특히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면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뒤 반등했던 모습을 지켜봤던 만큼 저축은행들 사이에서는 '버티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축은행업계 한 관계자는 "경·공매를 통해 PF 채권을 매각하면 의도적인 유찰 등을 통해 가격이 터무니없이 낮아져 손해가 막심해질 수밖에 없다"며 "일말의 회수라도 이뤄질 수 있는 만큼 여력이 있다면 연체율 상승을 감수하더라도 부동산 경기가 회복돼 담보가격이 오를 때까지 만기를 연장하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

    다만 금융당국이 PF채권 경‧공매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 버터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2금융권에서는 버티길 희망하지만 결국 실적이 좋지 않은 순서대로 경·공매에 나서게 될 것"이라며 "특히 부실채권 매각에 정부 지원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업계의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고 진단했다.
  • ▲ 저축은행 부동산PF 시나리오별 예상손실. ⓒ나이스신용평가
    ▲ 저축은행 부동산PF 시나리오별 예상손실. ⓒ나이스신용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