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비상경영체제 돌입글로벌 분쟁 격화… 환율-유가 요동반도체 업황 회복 불투명… 노무리스크 고개친기업 정책 제동 우려까지… 삼중사중고
  • 재계 전반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글로벌 분쟁이 확산되면서 환율과 유가가 요동치고 고금리 기조는 상당기간 계속될 전망이다.

    지속적인 경기침체 속에 실적 부진은 이어지고 미래사업 구축도 쉽지않은 현실이다.

    내부적으론 총선 이후 세제 지원·규제 개선 등 친기업 정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신3高 쇼크'에 한국 경제의 주축인 대기업들마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시계 제로 상황에 빠져있다는 진단이다. 

    1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그룹 계열사 임원들은 빠르면 이번 주말부터 자발적으로 주 6일제 근무에 나선다.  

    재계에서는 삼성 임원들의 이 같은 결정을 사실상 비상경영체제 돌입으로 보고 있다. 그만큼 삼성을 둘러싼 경영 여건이 불확실하다는 위기감이 작용한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간 전쟁이 장기전으로 흐르는 상황에서 엎친데 덮친격으로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얼어붙은 글로벌 경제에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여기에 올해는 미국 대선이라는 커다란 변수까지 더해진 상황이다. 환율과 유가는 요동치고 있다. 원자재 구매 비용 증가에 따른 원가 부담이 높아져 수익성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삼성의 주력인 반도체 시장 회복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또한 22대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면서 정부가 기업을 위해 내놓은 각종 지원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높다. 당장 올해 만료되는 반도체 등 투자세액공제 연장을 위해서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필수적인데 이에 비판적인 거대 야당의 벽을 넘어서기에는 여당 입지가 왜소하기만 하다.

    내부적으로는 실적과 노조 문제까지 겹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깜짝 실적 발표에도 불구하고 신중을 기하고 있다. 실적 회복세를 쉽게 낙관하기 힘들어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5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을 정도로 경영 실적이 악화했다. 반도체(DS) 부문의 부진이 주요 요인인데 올해 1분기 흑자 전환에는 성공했다. 그러나 중동발 전쟁 확산 조짐으로 반도체 업황 회복에 제동일 걸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여기에 미래 먹거리로 집중 육성 중인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등 시스템 반도체 사업은 여전히 적자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글로벌 1위 대만의 TSMC와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상황에서 인텔은 삼성을 제치고 2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상황이다. 

    게다가 기술 격차까지 좁혀지고 있다. 지난해 인공지능(AI) 시장 성장으로 각광받았던 고대역폭메모리(HBM)는 SK하이닉스에 1위 자리를 내주면서 자존심을 구겼다. HBM에 대한 준비는 삼성전자가 먼저 시작했다. 2010년대 중반 HBM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관련 분야 연구와 시장 상황을 보던 삼성전자는 2018년 TF를 해체하고 반도체 수익성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관련 시장이 커지기에는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AI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SK하이닉스에 오히려 기회를 내준 셈이 됐다. 

    지난달 열린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경계현 사장은 AI 반도체 대응에 있어 한 발 늦었다는 점을 인정하며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각오를 내비친 바 있다. 

    경 사장은 "지난해 AI 등 반도체서 한 발 밀렸다"면서도 "전제품 경쟁력 및 원가 경쟁력 확보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1위 자리를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노조리스크가 삼성전자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삼성전자 최대 노조인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은 지난 17일 삼성전자 경기 화성사업장 부품연구동(DSR) 앞에서 노조 추산 2000여명의 노조원이 집결한 가운데 문화 행사를 개최했다. 

    사측이 5.1%의 임금 인상을 제시하자 노조는 6.5%를 요구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삼노는 이미 합법적으로 파업에 돌입할 수 있는 쟁의권도 확보한 상태다. 

    삼성전자는 지난 1969년 창사 이래 55년간 노조 파업이 발생한 적이 없었다. 노조는 지난 2022년과 지난해에도 쟁의권을 확보했으나 실제 파업에 나서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20년 무노조 경영 폐기 선언 이후 노조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자칫 노조리스크로 이젝 막 되살아나기 시작한 반도체 시장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여론도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가 여론조사기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해 지난 13~15일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2013명을 대상으로 '삼성전자 노조 파업 공감도'를 조사한 결과, '공감하지 않는다(53.7%)'는 의견이 절반 이상으로 집계됐다. '공감한다'는 의견은 38.0%, '잘모름'은 8.3%로 조사됐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을 둘러싼 위기감은 그 어느때보다 높다"며 "경쟁력에서 뒤쳐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재계 1위 삼성이 비상경영에 나서면서 다른 대기업들에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SK그룹은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한 2000년 이후 24년 만에 ‘토요사장단 회의’를 부활시키며 격주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석희 SK온 사장은 흑자 달성까지 연봉 20% 반납과 임원 7시 출근을 권장하는 일도 있었다.

    이어 SK그룹 계열사 주요 임원들은 휴무일로 지정된 해피 프라이데이에도 출근하고 있는 상황이다. 해피 프라이데이는 주당 근무시간을 채우면 금요일은 쉴 수 있는 SK그룹의 유연 근무제다. SK그룹 최초로 SK텔레콤이 2019년 매월 셋째 주 금요일을 휴무일로 정하는 해당 제도를 도입했으며 2022년부터는 월 2회로 확대했다. 

    현대차그룹과 LG그룹, 한화, GS, 두산 등 다른 대기업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조치는 취하지 않고 있지만 다른 방식으로 비상경영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대기업들이 투자 속도에 나서는 등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하고 있지만 대외 경영환경 극복을 위한 대책은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