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키즈런’ 신설… 초등학생 이하 자녀와 동반 도전 가능계단 곳곳에 응원하는 직원들, 롯데 계열사 응원문구도제법 힘들지만 쉬엄쉬엄 올라도 1시간 이내에 완주 가능
  • ▲ '스카이런'에 몰린 인파.ⓒ롯데물산
    ▲ '스카이런'에 몰린 인파.ⓒ롯데물산
    밖이 보이지 않으니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겠다. 허벅지가 묵직하게 당겨오고 입에서 단내가 났다. 가빠진 호흡으로 힘겹게 말을 꺼냈다.

    “이제 100층 쯤 왔지?”

    둘째 딸이 매몰차게 답했다. 

    “아빠, 정신차려. 이제 30층이야.”

    롯데월드타워의 명물인 수직마라톤 대회 ‘스카이런(SKY RUN)’은 달리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유명세를 떨치는 행사다. 1년에 단 하루 진행되는 이 대회는 총 2917개의 계단, 높이 555m를 올라가는 국내 최고 높이의 수직 마라톤이다. 

    매년 10분 내로 참가신청이 매진되는 행사지만 사실 거리감은 적지 않다. 마라톤과 인연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기만 해도 아득해지는 높이에 주눅이 들기 일쑤다. 그런데도 롯데물산은 올해 ‘스카이런’에 초등학생 이하 자녀와 함께 오를 수 있는 ‘키즈 스카이런’을 신설했다고 한다. 정말 괜찮은 걸까.

    그래서 도전해봤다. 만성 운동부족에 시달리는 40대 아빠와 함께 세상에서 걷게 가장 싫은 중학생 큰 딸(이하 1호), 초등학생 둘째 딸(이하 2호)까지 3인방이 참가했다. 마라톤은 커녕 마지막 등산도 3년 전 설악산이 전부였던 3인방이다. 대회 참여를 단칼에 거절했던 1, 2호는 완주 상금 10만원을 건 뒤에 태도를 뒤집어 의기투합했다.

    ‘스카이런’이 열리던 20일은 공교롭게도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바람도 꽤 쌀쌀했지만 현장의 열기를 막지는 못했다. 올해는 역대 최대인 2200여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중앙 정원에서는 출발 전 스트레칭, 요가를 따라하는 참가자들이 있었다. 부상을 막기 위한 무료 스포츠 테이핑도 받을 수 있었다. 40대 이상은 혈압과 체온을 제는 등 추가 건강검진을 통과해야 했다.

    출발 시간이 다가오자 제법 긴장감이 높아졌다. 그 와중에 경찰복을 입고 온 해양경찰관, 슈퍼맨 복장을 입고 온 참가자도 보였다. 축제 분위기가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날 최연소 참가자는 3세, 최고령 참가자는 82세였다고 한다.  
  • ▲ '스카이런' 진입로. 1호는 이 모습을 끝으로 다신 마주치지 못했다.ⓒ강필성 기자
    ▲ '스카이런' 진입로. 1호는 이 모습을 끝으로 다신 마주치지 못했다.ⓒ강필성 기자
    목표는 완주였지만 용돈 때문에 무리하지 말고 힘들면 포기할 것을 신신당부했다. 비경쟁부문으로 참가했기 때문에 느긋하게 딸들과 이야기나 하면 오르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특히 1호는 아침부터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면서 포기의 명분을 쌓아가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1호는 우려를 배신했다. 출발 직후 먼저 앞장서겠다고 위로 사라진 1호는 이날 경기 내내 단 한번도 마주치지 못했다. ‘용돈에 미친 아이’라는 말을 속으로 삼켰다.

    결국 2호와 오르기 시작한 이날 ‘스카이런’은 생각과는 조금 달랐다. 20층이 넘어가면서 페이스가 급격하게 떨어졌고 다리가 무거워졌다. 말수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헐떡이는 호흡만 울렸다. 계단실의 반복되는 풍경만 보이다보니 층수를 보고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생각보다 금방 올라가고 있었다.

    30층이 넘어가면서 페이스가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냥 느리게 올라갔다는 이야기다.

    단조로운 계단실 풍경 곳곳에는 롯데그룹 계열사의 응원문구가 묘한 재미를 줬다. 롯데홈쇼핑의 ‘여기까지 온 나… 어쩌면 대단할지도?’ 라는 문구에 웃음이 픽 터졌다. ‘123층 완주까지 88층! 우린 아직 88하잖아요!’라는 문구에는 다리가 휘청거렸다.
  • ▲ '스카이런' 계단실 곳곳에 있던 응원문구.ⓒ강필성 기자
    ▲ '스카이런' 계단실 곳곳에 있던 응원문구.ⓒ강필성 기자
    60층이 넘어가면서 계단에 앉아 쉬는 참가자들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스카이런’은 20층마다 음료대와 쉼터를 만들어뒀는데, 앉아서 쉴 수도, 누울 수도 있게 배려했다. 2호를 다독여 출발시키는 것이 이맘때부터 20층마다 찾아오는 루틴이 됐다. 중간부터는 아예 손을 잡고 올랐다. 자연히 말도 많아졌다.

    “생각보다 잘 오르는데!”, “조금만 더 가면 쉼터야”, “완주 상금만 생각해”

    계단 중간 중간 배치된 롯데 직원들이 박수와 함께 격려해주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80층 쯤 도달했을 때, 한 직원은 “우리 조카는 여기까지도 못 왔는데, 대단하네”라고 말해줬고 2호는 이후 한동안 칭얼거림을 멈추고 직원들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 ▲ '스카이런' 20층마다 배치됐던 쉼터와 음수대.ⓒ강필성 기자
    ▲ '스카이런' 20층마다 배치됐던 쉼터와 음수대.ⓒ강필성 기자
    어느덧 100층이 도달하고 나서는 드디어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옷은 땀으로 젖었고 호흡은 급했지만 완주가 보인다는 희망이 등을 떠밀어줬다.

    110층. ‘어서와 걸어서 출근은 처음이지?’라는 롯데물산의 문구가 괘씸했다. 2호는 오히려 힘이 나는지 남은 층수를 뛰어서 가자고 제안했다. 여기에 응해 달리기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 1개 층도 못가 숨을 헐떡이며 다시 느린 페이스로 걷기 시작했다.

    마지막 전망대 층에 진입하는 설렘은 꽤 고무적이었다. 마침내 끝났다는 안도와 결국 완주를 해냈다는 뿌듯함이 교차했다. 1호는 이미 정상에 도착해서 쉬고 있었다. 전화로 수차례 기다렸다가 같이 가자고 제안했지만 거절했던 1호다. “약속대로 용돈 주는 거지?”라는 질문에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 ▲ '스카이런' 110층.ⓒ강필성 기자
    ▲ '스카이런' 110층.ⓒ강필성 기자
    골인지점이 마련된 롯데월드타워 전망대는 비구름으로 시야가 제한됐지만 그 이상으로 개운함이 있었다. 전망대 곳곳에서는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왜 앞다퉈 ‘스카이런’을 신청하고 또 1년을 기다리는지 알 것 같다. 

    이날 완주 기록은 54분. 쉬엄쉬엄 가더라도 1시간 이내로 돌파가 가능했다. 물론 난다긴다 하는 분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이날 경쟁부문 종합 1등을 기록한 안봉준 씨는 19분 27초를 기록했다고 한다. 

    이날 롯데월드타워를 내려오며 용돈을 받은 1, 2호는 내년에 다시한번 도전하겠냐는 질문에 입을 모아서 말했다. “내년에도 상금을 준다면!”
  • ▲ '스카이런' 123층 기념촬영 공간.ⓒ강필성 기자
    ▲ '스카이런' 123층 기념촬영 공간.ⓒ강필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