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레임덕' 온듯 공직사회 복지부동 심화 거야 국회·각종 정치적 리스크 등이 원인 꼽혀정권따라 징계·처벌 받는 악순환 영향도 상당경제위기 속 尹정부 개혁드라이브에 찬물 우려
  • ▲ 정부세종청사 전경 ⓒ뉴시스
    ▲ 정부세종청사 전경 ⓒ뉴시스
    "요즘 용산(대통령실)에서 업무 관련 지시가 내려오면 이게 절차적으로 문제가 없는지부터 살펴요. 혹시라도 정권이 바뀌어서 감사나 수사받으면 어떡하나 몸사리는거죠"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경제부처의 한 팀장급 공무원의 얘기다. 최근 공직 사회가 얼어붙고 있다. 정책 추진부터 인사까지 이른바 '복지부동(伏地不動)'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임기말 나타나는 레임덕 현상이 조기에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 배경엔 지난 4.10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한 이후 국정운영 지지율이 바닥을 헤매고 최근 대통령실을 향한 각종 정치적 리스크가 커지면서다. 정권이 바뀌면 직전 정부에서 추진했던 정책을 놓고 감사나 수사를 받는 사례가 반복되는 일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공직 내부에선 판단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모 경제부처의 과장급 공무원은 "거대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면서 업무 추진에 위축된 상황인데다,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집중되다 보니 업무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이어 "여론을 무시하고는 어떠한 정책도 수행하기 어렵다"며 "여론은 정책 방향과 정책 수립, 국정 운영 방향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사회 전반의 역량 저하로 이어질까 우려스럽다"고 했다.

    각 부처 에이스 공무원들이 혹여라도 정치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 '초고속 승진' 코스라 불리는 대통령실 파견근무마저 꺼리는 분위기도 나타난다. 공무원에게 대통령실 근무는 가장 확실하고 가장 빠른 영전코스나 다름없다. 친정 부처로 복귀할 경우 한 단계 높은 직급으로 승진하는 것은 불문율처럼 여겨진다.

    최근 김건희 여사 라인 의혹과 명태균 이슈, 김대남 전 행정관의 폭로 등이 쏟아지면서 어수선한 대통령실 분위기도 용산 파견이나 업무 지시를 꺼리는 큰 이유 중 하나로 지목된다. 자칫 정치에 휘말릴 수 있으니 공직사회의 복지부동과 보신주의가 심화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제부처의 한 사무관은 "여러 정치적 리스크에 당정 분위기가 어수선하니 공직 내부 역시 사기가 떨어져 있고, 누구나 인정하는 에이스만이 대통령실에 파견되는 분위기도 사라지고 업무 관련된 사안들도 다시 한번 꼼꼼히 보는 등 다들 몸을 사리고 있다"고 최근 분위기를 설명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업무를 추진했던 공무원들이 감사와 수사 대상이 되는 경우가 빈번한 것도 이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탈원전 정책이 대표적으로, 검찰은 산업부가 원전 조기 폐쇄를 위해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조사 결과를 조작했다고 판단해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담당 국·과장, 서기관을 재판에 넘긴 바 있다.

    박근혜 정부 때도 비슷했다. 당시 국정농단 사태가 터지면서 문화체육관광부의 많은 직원들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미르재단·K스포츠재단 설립 승인문제 등 위법행위로 감사원 감사나 수사 대상에 오르고 징계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권력의 정점인 대통령실에서 내린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했을 뿐이었지만 얻은 건 결국 불이익뿐이었다. 

    설령 정책이 제대로 만들어졌더라도 22대 국회마저 여소야대로 국회 통과가 요원한 상황에서 내놓는 정책마다 엇박자 논란에 휘말리는 것도 공직 사회가 무기력증에 빠뜨리는 큰 요인 중 하나다. 

    올해 해외 직접구매 금지 정책, 고령자 조건부 운전면허에 이어 공매도 재개를 놓고 대통령실과 관계부처 간에 엇박자 논란이 계속되기도 했다. 설익은 정책을 내놨다가 철회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공직을 꺼리는 분위기도 한몫한다. 한국행정연구원의 공직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공직자의 직무 만족도는 2018년 3.6점으로 정점을 찍은 후 계속 하락해 지난해 3.38점으로 떨어졌다. 

    공공봉사 동기(3.21점)와 공직 가치 인식(3.62점)도 동반 하락했다. 이는 공직자로서의 자부심이 반감되고, 역량 발휘에 대한 의욕마저 꺾일 수 있음을 나타낸다. 5년 미만의 공무원 절반 넘게 '이직 의향'을 가지고 있었다는 조사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길어지면 야심 차게 추진하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개혁 과제가 임기 2년 반이나 남기고도 공전할 수 있다. 최근 윤 대통령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잡기 위해 다시 한번 노동, 교육, 연금 등 3대 개혁을 비롯한 구조개혁 과제에 온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데 차질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 지지율이 어느 정도 심하게 내려가면 뭘 해도 국정 운영의 동력이 생기지 않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서 "이를 심각하게 파악해 대통령실, 여당, 정부 모두 영민하고 단합된 모습을 보여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