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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에 이 신문 객원논설위원인 변희재 실크로드CEO포럼 회장이 쓴 <좌파언론, ‘노무현의 덫’ 빠져나와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노무현 정권의 언론정책은 성동격서(聲東擊西)였다. 동쪽에서는 대통령과 총리가 직접 보수신문에 싸움을 걸어 시선을 집중시킨 뒤, 서쪽에서는 조용히 포털과 지하철 무료신문 등을 권력화하여 언론시장 전체를 초토화한 것이다. 언론계는 이 전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신문 구독률이 가장 급격히 추락했고, 전문잡지와 출판단행본 시장은 반 토막이 났으며, 인터넷언론은 대부분 포털 기생매체로 전락했다.
이에 대해서는 보수우파 진영이 제때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 잘못도 있다. 그러나 진보좌파 언론과 시민단체에서 이러한 노무현 정권의 계략에 편승 및 유착하여 이를 주도한 책임이 더 크다. 진보좌파 진영은 보수신문이 강세를 유지하는 신문시장 자체를 위축시키기 위해 지하철 무료신문의 불법 배포를 방치하고, 인터넷 포털에 힘을 실어주며, 국민이 주인인 KBS와 MBC를 정치적으로 사유화했던 것이다.
이런 진보좌파 진영이 정권이 바뀌자, 현 정부의 언론정책을 언론 장악 음모라고 비판하고 미디어의 공공성을 사수하겠다며 깃발을 바꿔 들고 나섰다. 그러나 위에 열거된 노무현 정권의 언론 죽이기 정책에 가담한 장본인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보수 진영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한테서도 지지를 받기 어려운 형편이다. 그러므로 진보좌파 진영은 최소한 언론계 내에서의 신뢰 회복을 위해 다음과 같은 사안에 대해 분명한 입장 정리를 해주어야 한다.
첫째, 노무현 정권의 방송 장악 정책을 먼저 비판하라. KBS 정연주 사장 감싸기 사례에서 드러나듯 진보좌파 진영은 마치 노무현 정권 때는 방송이 순수하게 독립되어 있었는데 현 정부가 갑자기 장악하려 한다는 듯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 정연주 사장 체제의 KBS가 보인 어용 행태를 기억하는 국민은 이들이 아무리 KBS 독립을 외쳐도 한 귀로 흘려들을 수밖에 없다. 특히 노무현 정권의 뜻에 따라 보수언론 진영에 대한 편파 왜곡보도를 반복해온 KBS ‘미디어포커스’의 폐지 및 개선을 위해 좌파가 먼저 칼을 들어야 한다.
둘째, 노무현 정권이 언론을 죽이기 위해 육성해온 포털과 지하철 무료신문에 대한 보수진영의 비판 및 대안을 수용해야 한다. 진보좌파 측은 그간 자본의 언론 장악 현상과 공정경쟁을 해치는 무가지를 언론자유의 주적으로 규정해왔다. 그러던 진보좌파가 인터넷 재벌 포털과 유착하고, 하루 300만 부가 뿌려져 유료 가판시장을 무너뜨린 지하철 무료신문을 비호한다는 것은 좌파적 가치에도 맞지 않다.
셋째, 광고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한국 언론시장의 구조에서 광고시장을 위축시키는 광고주 불매운동을 중단할 것을 선언해야 한다. 보수 진영은 진보좌파 매체가 광고주 불매운동을 예찬하겠다면, 언제라도 좌파 매체에 대해서도 이를 시행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래도 이들이 이를 시정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35개의 보수단체로 구성된 미디어발전국민연합 측이 좌파언론의 브레인 매체인 미디어오늘에 한해서, 광고주들에게 광고 게재를 중단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등 좌파 매체가 광고주 불매운동의 부당성을 인정할 때까지 이를 제한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넷째, 보수신문에 기고를 하고 취재에 응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 개인을 인격적으로 음해하는 폭력적 안티조선 운동 방식을 폐기하라. 최근 진보적 소장 학자들이 좌우언론 간의 벽을 허물자는 제안을 하고 나섰다. 노무현 정권은 특정 보수신문을 공격한 인사를 집중적으로 등용하며 안티조선 운동을 권력화시켰다. 오히려 지금의 안티조선 운동은 진보좌파 진영의 반성과 성찰을 막으며 자폐화시키는 부작용만 초래하고 있다. 좌우 소통을 위해서라면 이런 타락한 운동 방식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미디어발전국민연합 측은 신문과 방송, 인터넷 포털, 인터넷TV(IPTV) 등 모든 언론 현안에 대해 좌우가 터놓고 토론해 보자며 진보좌파언론계의 대표 격인 언론개혁시민연대 측에 끝장토론을 제안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좌우 갈등이 지속되며 언론시장이 침체에서 벗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좌파 측이 진정으로 언론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이런 제안을 거부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다만 진정한 상생적 대화를 위해서는 그간 노무현 정권이 쳐놓은 언론 죽이기의 덫에서 스스로 빠져나오는 것이 먼저라는 점도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