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디트(Micro-Credit)’가 연내 출범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7일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재하고 현재 소액서민금융재단을 확대 개편한 ‘미소금융(美少金融) 사업’을 금년 12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미소금융은 ‘아름다운 소액대출’로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업이란 의미다.

    미소금융은 재정 지원 없이 휴면예금과 기업 및 금융권의 기부금으로 2조원 규모의 기금을 조성해 앞으로 10년 동안 25만 가구를 지원하게 된다. 금융위원회는 서민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미소금융사업수행 법인을 전국 200∼300개로 확대키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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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진동 소액서민금융재단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열어 서민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한 소액 신용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 확대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도권 금융 이용이 곤란한 금융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창업자금, 운영자금 등 자활자금을 ‘무담보·무보증’으로 지원하는 미소금융은 금융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어려움에 빠진 서민들이 사회·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해외에서는 1970년대부터 제도권 금융이 발달되지 않은 저개발국에서 민간에 의해 빈민에 대한 소자본 창업지원 프로그램으로 발전해왔다. 1980년대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뱅크(Grameen Bank)는 회수율 98%의 성공적 사례를 보이며 마이크로 크레디트가 전세계로 확산되는데 영향을 끼쳤다. 국내에도 10여 년 전 부터 도입돼 서민금융의 사각지대를 보완코자 했으나 적은 규모와 전달체계의 비효율성, 수요에 따르지 못하는 수행기관으로 서민의 접근성이 제약받는 등의 문제가 제기돼왔다.

    ◇ 서민 위한 '무담보·무보증 소액대출'

    마이크로 크레디트는 자활의지는 있지만 신용등급이 낮아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신용층을 위한 ‘무담보·무보증 소액대출’이다.

    정부가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과거 10년간 지원 규모의 13배가 넘는 규모로 확대키로 한 이유는 외환위기 이후 10여 년 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중산층이 엷어지고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서민층이 증가해 자활금융 수요가 커졌기 때문이다.

    신용등급이 낮은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대출이 용이한 불법 사금융 등을 이용하게 됐으며 이에 따라 높은 이자부담과 불법 추심행위에 시달리는 사례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이 뒤따랐다. 그러나 제도권 금융기관의 대출 문턱은 낮아지지 않았으며 제도권 금융을 보완해줄 마이크로 크레디트 지원규모는 미미한 실정이었다.

    현재 사단법인 ‘신나는조합’, 신용회복위원회, 서울시 등 일부 민간단체와 공공기관이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수행하고 있지만 최근 10년간 지원규모는 1480억 원으로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여기에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제도권 금융기관을 이용하기 어려운 저신용자는 증가 추세를 나타냈다.

    금융위는 “그동안 지역신보 보증 등 재정지원을 확대해 왔지만 보다 근본적인 저신용 서민·영세 자영업자의 자활 지원을 위해 마이크로 크레디트 자금의 공급을 확대하고 제도화하는 대책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 10년간 25만 가구에 2조원 혜택…재계 "성공위해 적극 지원"

    휴면예금을 재원으로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을 지원하고 있는 소액서민금융재단이 오는 10월 전국 네트워크의 중추기구인 ‘미소금융중앙재단’으로 확대 개편된다. 이 재단은 마이크로 크레디트 사업의 방향을 설정하고 컨설팅, 교육, 정보관리 등 총괄 기능을 수행한다면 전국 곳곳에 분포하게 될 지역별 ‘미소금융법인’은 대출 및 회수, 자활컨설팅, 상담업무 등의 실무를 담당한다.

    정부는 저소득층이 주로 거주하는 전국의 영세상인 및 서민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지역별 미소금융법인을 공개모집할 방침이다. 1단계로 금년 12월부터 내년 5월까지 전국 20~30개의 지역별 법인 설립이 추진되며, 2~3년 내에 지역별 네트워크를 200~300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역법인은 ‘미소금융○○지점’으로 명칭에 통일성을 갖춰 수요자가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대표자 1명과 직원 2~5명이 근무하며, 자원봉사 취지를 감안해 대표자는 보수를 받지 않고 기간요원은 월 100만 원 이하, 청년 자원봉사자는 최소한의 실비만 지급받는다. 특히 사무실은 서민들의 접근성이 높고 임차비용이 들지 않는 전통시장 상가, 마을회관, 공공기관 등 공간을 활용키로 했다.

    재원은 재정 지원 없이 주로 대기업과 금융회사의 기부금으로 총 2조원 규모로 조성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회원기업의 기부금 1조원, 은행(2500억원)과 증권 유관기관(500억원) 기부금 3000억원에 휴면예금 출연금 7000억원이 더해진다. 금년 중 3000억원 이상 재원이 조달될 것으로 정부는 예상했다.

    전경련 조석래 회장은 “재계에서 할 수 있는 한 이 제도의 성공을 위해 적극 지원하겠다”면서 “이 사업이 오래 폭넓게 퍼져서 지속적인 성공모델이 되고 그 혜택이 많은 서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재계·금융권 등 민간기부를 활성화하기 위해 미소금융중앙재단을 세제상 특례기부단체로 지정하는 것을 추진한다.

    ◇ 누구에게, 얼마나 대출될까

    지역별 미소금융법인은 주로 신용도 7등급 이하 저신용자, 영세자영업자, 저소득층에게 시장금리보다 2~3% 낮은 금리로 자금을 지원한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을 중심으로 지원대상과 조건, 지원내용을 모델화해 일관성을 높였다.

    앞으로 10년 동안 25만 가구 정도가 미소금융사업의 혜택을 받을 전망이다. 평균 대출금을 1000만원, 대출기간은 5년으로 계산한 결과다.

    대출상품에는 영세사업자 운영자금, 전통시장 상인, 프랜차이즈, 창업자금, 공동대출, 사회적 기업 등 6가지 모델로 요약된다.

    영세사업자 운영자금은 영세사업자에게 원재료 구입, 시설 개보수 비용 등 일시적으로 소요되는 운영자금을 지원하는 대출이다. 대출한도 1000만원에 5년 분할상환 방식이 적용된다.

    미소금융지역법인이 전통시장 상인회를 지원하고 상인회가 다시 회원인 영세상인에게 운영자금을 빌려주는 전통시장 영세상인 대출도 있다. 대출한도는 500만 원으로 3년내 분할상환하면 된다. 전국 200여개 시장에 적용될 예정이다.

    프랜차이즈는 이미 시장에서 검증을 받아 성공 가능성이 높은 소규모 업체의 기술과 브랜드 등을 창업희망자가 활용할 때 권리금과 창업자금을 지원하는 대출이다. 일반적으로 1000만 원 이내 소액을 위주로 하지만 최고 5000만원까지도 가능하다. 수혜자가 직접 사업을 수행하되 대출재원 보전을 위해 지역사업권 권리는 상화할 때까지 재단이 보유한다.

    본인 아이디어로 창업을 하거나 기존 사업장의 임차보증금 증액이 필요한 소규모 영세사업자를 위해 창업자금 대출이 있다. 5000만원 이내 대출이 가능하며 5년 분할상환 방식이다.

    공동대출은 자활단체에 수요 및 사업성을 평가해 창업 및 운영자금을 1억원 이내로 지원하는 것이며, 사회적기업 지원은 ‘사회적기업 육성법’에 따라 인증된 기업에 1억원 이내에서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 "MB정부 중도실용·친서민 정책의 결정판"

    이명박 대통령은 “진심으로 우리가 없는 사람들을 돕는다는 애틋한 심정이 있어야 한다. 이 같은 자세로 무장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한번 잘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소상공인, 영세상인을 비롯한 어려운 서민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잘 운영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일부 모럴헤저드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는데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 빌린 사람은 제때에 갚지 못하는 일은 있어도 반드시 갚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왜냐 하면 약한 사람들은 안 갚으면 안 된다는 고마움과 절박함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미소금융은 이명박 정부의 중도실용과 친서민 정책의 결정판”이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이끌어내고 서민층에 사회안전망을 확보한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기업의 자발적인 전액 기부를 통해서 시장금리보다 낮게 운영되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민간에 의한 직접서민 금융이라는 점이 미소금융의 특징이다. 재계와 금융권이 저소득층의 자활지원을 위한 자금을 기부하고, 직접 미소금융사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이행하는 계기가 된다. 이 대통령은 “따뜻한 나라,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데 획기적인 방향의 전환을 이루었다. 대기업이 가장 어려운 계층에 직접 도움을 주는 것은 생산적 도움”이라며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제도를 통해 새로운 길을 가는 시작”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