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6~7일 터키 이스탄불에서 개최된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총회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달라진 위상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또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사전 경보를 제대로 울리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던 IMF는 오히려 감시자 및 최종대부자로서 위상을 강화하고 출구전략의 조율자 역할까지 떠맡는 등 국제금융의 중심 위치를 공고히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IMF 역할 강화론은 쿼터 조정을 통한 구조개혁 문제로 이어져 선진국과 신흥국 간 치열한 논쟁을 낳았다는 점에서 향후 지분 조정과정에서 대립이 격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했다.

    ◇한국 대표단 40여명 릴레이 면담…미국 차관도 면담요청
    이번 연차총회는 지난달말 미국 피츠버그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이후 개최된 첫 대규모 국제행사라는 점에서 내년 G20 정상회의를 유치한 한국의 위상을 가늠할 기회이기도 했다. 결과는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기자간담회에서 "감개무량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위상변화를 실감케 했다.

    총회 기간 윤 장관을 비롯한 대표단이 만난 주요 해외인사만 해도 줄잡아 40여명에 달했다. 심지어 면담 시간을 30분 단위로 쪼개고 과장급까지 면담에 나서야할 만큼 일정이 빠듯했다. 우리 대표단이 면담한 인사도 주류 국가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윤 장관이 면담한 호아킨 알무니아 유럽연합(EU) 경제.통화 담당 집행위원과 엘레나 살가도 스페인 재무장관은 당초 일정에 없었으나 상대측 요청으로 급히 성사됐다. 신제윤 국제업무관리관(차관보)은 지난 5일 로버트 호매츠 미 국무부 차관을 면담했다. 미국 차관이 우리나라 차관보 면담을 요청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는 설명이다.

    면담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는데 이 역시 한국에 고무적인 내용이었다고 한다. 첫째, 한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빨리 경기침체를 벗어난 이유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재정부 관계자는 "한국은 기초체력이 튼튼하고 기업의 경쟁력이 강했던 것이 조기 위기탈출의 요인이었다고 설명했다"며 "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처했던 상황과 비교할 때 한 마디로 격세지감이었다"고 말했다.

    두번째로는 G20 의장국이자 내년 정상회의 유치국가로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관심표명과 함께 협력을 당부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호매츠 차관은 "한국이 의장국가로서 역할을 잘 수행할 것"이라며 "필요한 사항이 있거나 도와줄 일이 있다면 긴밀 협력하겠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무니아 집행위원은 "금융규제나 출구전략 때 긴밀히 협력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혔고, 살가도 재무장관은 "스페인이 G20에 편입될 수 있도록 힘써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정부 관계자는 "종래 연차총회와 달리 주요국가와 기관들의 면담 요청이 많았을 뿐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의례적인 예방이 아니라 실질적인 협력을 나누기 위한 것들이 대다수였다"고 말했다.

    위기 때마다 신용등급을 낮춰 한국 정부를 애먹였던 국제 신용평가사들 역시 예전과 달리 한결 부드러워진 태도로 한국을 대했다는 후문이다. 현지에서 S&P, 무디스, 피치 관계자들을 접촉한 신 차관보는 "과거에는 신용평가사를 만나면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파고들었는데 이번에는 칭찬류의 언급이 많았다"며 "중소기업, 가계대출, 고령화 등을 빼면 사실상 논점이 별로 없었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사들은 한국의 외환유동성은 더이상 관찰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표시하면서 오히려 한국 정부가 내년도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을 줄인 것을 놓고 출구전략에 들어간 것 아니냐고 부러움섞인 의문을 표시했다고 한다.

    ◇총회 최대수혜자는 IMF…선진.신흥국간 쿼터 전쟁 예고
    연차총회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은 이번 회의의 최대 수혜자가 IMF라고 입을 모은다. IMF는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는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가 성립될 당시 국제 금융질서 안정을 목표로 설립됐으나 지난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더이상 세계의 중앙은행 역할을 담당하기에는 무리라는 비판론에 직면했었다. 하지만 지난달 G20 정상회의와 이번 연차총회를 거치면서 금융질서 안정을 위한 최후 보루로서 IMF의 역할론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이 재확인됐다.

    IMF는 최근 재원을 3배로 확대키로 하는 회원국 간 합의를 도출하는가 하면, 각국의 정책이 지속가능한 균형성장에 부합하는지 평가하는 분석기법과 질서있는 출구전략의 원칙을 개발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또 IMF의 감시활동을 종래 경상수지 위주에서 거시경제와 금융부문 전체를 포괄하도록 임무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추후 검토키로 했고, 신흥국의 금융위기시 최종대부자로서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는 공감대도 형성됐다.

    재정부 관계자는 "IMF가 가장 신이 났다"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재원부족에 시달리면서 임직원까지 구조조정했던 IMF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총회는 향후 선진국과 신흥개도국 간 쿼터 배분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장이기도 했다. 회원국들이 역할이 한층 강화된 IMF에서 입김을 행사하기 위해 쿼터 확보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이번 총회에서는 과다대표국의 쿼터 5%를 과소대표국으로 이전하는 합의가 도출됐다. 당장 쿼터 과다대표국으로 분류되는 유럽 국가들은 총회 기간 지분을 이전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비치거나 저소득국 원조, IMF 재원 투입비율에 따라 쿼터를 재조정하자는 주장을 개진했다.

    반면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들은 경제력에 걸맞게 지분을 배정해야 IMF가 명실상부한 국제금융기구로서 위상을 차지할 수 있다고 맞섰다. 유럽을 견제할 필요성이 있는 미국 역시 5% 쿼터 이전론을 재차 내세웠다. 이에 대해 선진국과 개도국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한국은 IMF 자본금을 배 이상 증액하는 방식으로 쿼터를 재배분하는 대신 우리나라도 저소득국가 지원 확대, 재원 확충에 적극 나서겠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재정부 관계자는 "IMF 역할 강화에는 동의했지만 이면에는 선진국과 신흥개도국 간 IMF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한 쿼터 확대 싸움이 자리잡고 있었다"며 "향후 실무 협의 과정에서 열띤 논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