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금융재단 김승유 이사장 연세대 특강사회 소외계층을 향한 '측은지심' 강조
  • ▲ 6일 '마이크로파이낸스와 소사업 경영' 과목 특강을 듣고 있는 연세대학교 경영대 학생들 ⓒ 뉴데일리
    ▲ 6일 '마이크로파이낸스와 소사업 경영' 과목 특강을 듣고 있는 연세대학교 경영대 학생들 ⓒ 뉴데일리

    “지금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부를 잘한다는 대학생들이 앉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있는 시장에는 대출서류에 자기 이름 석 자를 못 쓰는 이들이 파다합니다.”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편안한 표정으로 강의를 듣던 학생들이 순간 숨을 멈춘다. 고요한 정적. 강단에 선 대전 도마큰시장 손중달 상인회장은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붉어진 눈시울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연세대학교에서는 특별한 강의가 열렸다. 이 대학 경영대의 ‘마이크로파이낸스와 소사업 경영’ 과목 개설에 맞춰 ‘마이크로크레딧의 성공적 정착을 위한 전략과 과제’를 주제로 미소금융중앙재단 김승유 이사장의 특강이 진행됐다. 연세대와 고려대, 부산대는 미소금융중앙재단과 협의해 2학기부터 서민 대상의 무담보 소액 신용대출인 ‘마이크로파이낸스’를 다루는 수업을 개설했다. 서민금융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대학에 처음으로 관련 과목이 생긴 것. 마이크로파이낸스는 미소금융처럼 서민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을 말한다.

     

    “‘따뜻한 가슴과 냉철한 두뇌’라는 말을 좋아한다”라는 말로 말문을 연 미소금융중앙재단 김승유 이사장은 이날 서민금융 현장을 누벼온 자신의 경험을 살려 마이크로크레딧의 국내외 현황과 의의, 참고사례, 성공적 정착을 위한 전략, 봉원봉사 운동 문화의 정착 등에 대해 강의했다. 김 이사장은 “지금 이곳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은 연세대에서 공부한다는 것 만으로도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라며 “꿈을 크게 만들려면 남으로부터 지지를 얻어야 하고, 여러분들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 말했다.

     

    이어 그는 “금융업에 들어선지 45년의 세월이 흘렀다”라며 “최근 들어 지난 시간 금융이 어떻게 바뀌었나에 대해 자주 돌아보게 된다”고 평생 금융인으로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 봤다.

     

    ◆ ‘측은지심’은 인간의 본성…미소금융은 ‘패자부활전’

     

    특히, 이날 김 이사장은 자신의 해외 유학시절의 경험을 털어놔 눈길을 끌었다. 그는 “1960년대에 200불을 들고 해외에 나갔다”라며 “그런데, 방값을 포함한 한 달 생활비가 120불이었기에 전혀 생활이 되지 않았다”고 당시 어려웠던 생활을 떠올렸다. 낯선 외국, 아무것도 가진 것, 자신을 증명해 줄 이 없는 곳에서 그는 무작정 빈민재단에 찾아가 학생증을 건냈고, 그곳에서는 무이자로 500불을 빌려줬다. 김 이사장은 “내가 국내에서 미소금융의 첫 수혜자일 것”이라며 당시를 추억했다.

     

  • ▲ 6일 연세대학교 경영대 강단에 선 미소금융재단 김승유 이사장 ⓒ 뉴데일리
    ▲ 6일 연세대학교 경영대 강단에 선 미소금융재단 김승유 이사장 ⓒ 뉴데일리

    이어 그는 “지금 몽골에서 누군가가 하나은행에 들어와서 500만원을 빌려 달라고 하면 우리 직원들은 아무도 주지 않을 것 같다”라며 “나 역시 당시에 돈을 빌리면서도 ‘날 뭘 보고 빌려줄까?’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마이크로크레딧은 1976년 방글라데시의 한 대학교수가 시작해 2000년대에 들어 전세계적으로 확산됐다. 제도권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즉 ‘패자부활전’과도 같은 기회로 활용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측은지심’은 인간의 본성이며, 이것이 점점 확산돼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만 한다”고 역설했다.


    ◆ 경영인의 사회적 책임과 ‘공공의 선’

     

    “‘사리’가 있어 자본주의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개인주의가 결국 나쁜 것 만은 아니나, 지나친 탐욕이 문제를 불러 일으킨다.”

     

    김 이사장은 질문을 던진다. 왜 세계에서 한국의 자살률이 가장 높을까? 우리보다 국민소득이 낮은 타국보다 왜 이런 갈등구조가 빈번히 일어나는 것인가? 그는 경영인으로서 이를 “그냥 간과하고 넘어갈 수 만은 없는 문제”라고 못 박았다. 사회적 기업으로서 사회의 이슈를 관망하고 책임을 회피할 수 만은 없다는 것. 그것이 김 이사장이 ‘미소금융’에 뜻을 두게 된 이유다.

     

    김 이사장이 책임지고 있는 하나은행이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육사업과 사교육을 비롯해 외국인 멘토링 사업, 초고령화 노인문제 등을 고려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는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은행이 왜?”라는 물음표를 단다. 이에대해 김 이사장은 “기업의 가장 큰 사회적 책임이 고용촉진인 것은 당연하겠지만, 정부부문을 기업이 도와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 최근 공동체주의가 이야기 하는 아리스토 텔레스의 ‘공동선’을 이루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업이 해야 더욱 효율적일 수 있는 것. 그것은 기업이 기꺼이 참여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김 이사장은 “기업의 입장에서도 길게 보면 커뮤니티들로 부터 지지를 얻고, 결국 그것은 남을 위한 자선을 뛰어넘어 자기 자신을 위한 자선이기도 하다”고 경영학도들이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을 당부했다.

     

    이어 그는 세계적인 사업가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의 관계에 대해 설명하며 “빌 게이츠 재단은 보유한 510억불로 백신을 개발해 20년 동안 몇 백만의 아프리카인들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라며 “가슴이 뜨거워진다. 기업가의 정신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김 이사장은 자신의 사리를 채우기 위해 공공의 선을 해치는 행위에 대한 우려의 시각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현재 미소금융이 전략적으로 시장상인들에 대한 대출의 폭을 늘리고 있는데, 일부 시장에서는 싼 금리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해도 상인회에서 거부한다”라며 “자신들이 일수놀이로 돈을 벌고 있기 때문에, 싼 금리로 미소금융이 대출 해주는 것을 경계하는 것”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 “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이유는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

     

    이날 강단에는 또 한명의 강사가 자리했다. 대전 도마큰시장의 상인회장 손중달 씨. 그는 강단에 서자마자 붉어진 눈시울로 현재 재래시장 상인들의 어려움과 미소금융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 ▲ 6일 연세대학교 경영대 강단에 선 대전 도마큰시장 손중달 상인회장 ⓒ 뉴데일리
    ▲ 6일 연세대학교 경영대 강단에 선 대전 도마큰시장 손중달 상인회장 ⓒ 뉴데일리

    손 씨는 “시장 상인들이 돈을 빌릴 때는 많다”라며 “대부분 쉽게 일수를 쓴다. 그런데, 그 이자가 연 44%다. 1000만원을 빌리면 440만원을 이자로 내라는 것이다”라고 아픈 현실을 설명했다.

     

    그는 이어 “나 역시 평생 재래시장에서 상인으로 생활해 왔다.”라며 “새벽 3시에 나와 저녁에 집에 들어갈 때는 9시 뉴스를 본적이 없다. 너무 지쳐서 가족을 돌볼 시간도 없다. 나도 급한 마음에 일수를 써봤지만, 죽어라 일해도 마진이 생기지 않는다. 그것은 서민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대전 도마큰시장에서는 미소금융을 두고 ‘천사’라고 부른다. 대부업이 아닌 제2금융권에서 일수를 얻는다 할지라도 연 16~17%를 지불해야 하기에 서민들에게는 여전히 비싼 이자다. 또한, 이 역시 자격을 얻기 쉽지 않다. 손 씨는 “평생 이자만 갚다가 원금을 못 갚는 이들이 많다”라며 “그러면 신용등급이 자연스레 낮아지고, 그렇게 가난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씨가 미소금융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지난해 여름. 미소금융재단에서 상인회까지는 대출금이 무이자로 온다. 그리고, 그 금리로 상인회가 직접 시장에 대출사업을 관리하는 것이다. 처음 상인회 내에서도 반대가 많았다. 철저히 신용등급을 파악해서 돈을 빌려주는 은행도 부실채권이 발생하는데 우리가 어떻게 관리하냐는 것. 그러나 현재 대전 도마큰시장은 상환율 100%, 자금회전율 400%를 넘어서 8억이 넘는 자금을 문제 없이 운영하고 있다.

     

    손 씨는 대학생들에게 간곡한 부탁이 하나 있다며 “내가 믿고 실패하면 내가 책임진다는 생각으로 사람들과 사회를 믿어야만 한다. 그래야지만, 기회가 생길 수 있다”라며 “사업을 하든 회사에 가게 되든 여러분들의 곁에 서민들이 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을 눈과 귀가 아닌 한번쯤 가슴으로 느껴주길 바란다. 거기에 답이 있다”고 당부했다.

     

  • ▲ 6일 '마이크로파이낸스와 소사업 경영' 과목 특강을 듣고 있는 연세대학교 경영대 학생들 ⓒ 뉴데일리
    ▲ 6일 '마이크로파이낸스와 소사업 경영' 과목 특강을 듣고 있는 연세대학교 경영대 학생들 ⓒ 뉴데일리

    책이나 신문기사를 통해서만 마이크로크레딧을 접해왔던 학생들은 특강을 통해 새삼 진지하게 서민금융의 가치를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강의에 참석한 연세대 경영학과 강후돈(20) 군은 “새로운 가치에 대해 알게 된 시간이었다”라며 “경영학도로서 이윤을 추구하는 것만을 생각해 왔는데 그것을 통해 함께 나누고 사회에 환원하는 것들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이 수업은 마이크로파이낸스의 기본적인 이론을 시작으로 사회적 기능과 수혜자, 효율적 금리 적용방법, 지속가능 전략을 다루게 된다.

     

    또 학생들은 미소희망봉사단에 참여해 현장에서 마이크로파이낸스를 체험하게 된다. 교실 내 수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직접 미소금융의 수혜자들을 만나고 컨설팅도 진행하며 대출을 받은 기업과 개인들에 대한 사후관리에도 나서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마이크로파이낸스 수업의 의의에 대해 설명하며 “이론보다 실제 서민들의 현장에 뛰어들어 고민해보길 바란다”라고 당부했다.

     

    한편, 이화여대와 KAIST, 서울대 등은 마이크로파이낸스 강좌 개설 절차를 마치는 대로 내년 1학기부터 강의를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