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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얼음판’
최근 서울시청 기자실의 분위기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출입하는 기자들과 지척에 사무실을 둔 대변인실 직원들과의 긴장감은 최고조다.
연일 언론에 터지는 서울시의 ‘실정(失政)’에 대한 보도들 때문이다. 여러 매체에서 지지부진한 뉴타운 사업에 대한 오세훈 책임론을 일으키는가 하더니 지난 11일 조선일보가 “서울시가 주민 의견을 물어 뉴타운을 취소하려 한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1면 톱으로 실으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다음날인 12일 중앙일보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2250만원치 나무를 심기 위해 2500만원짜리 ‘오 시장을 위한’ 철제 다리를 만들었다”는 ‘오세훈 계단’ 기사를 보도했다. 1면과 4~5 전면을 할애해 오 시장의 ‘혈세 낭비’를 보도한 이 기사에 서울시는 며칠을 해명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메이저 일간지의 원투 펀치 이후에는 방송사가 나섰다. MBC가 이번에 개장한 한강 요트장에 대해 일으킨 ‘귀족 요트장’ 논란은 연합뉴스 등 각 매체들이 수십개의 기사를 후속보도 하는 심각한 파장을 일으켰다.
쉴 틈 없는 비판성 보도는 YTN이 서민들이 운영하는 가판대에 대한 탄압을 지적하는 기사로까지 이어졌고 서울시 대변인실을 비상 체제로 전환시켰다. 갑자기 비판적 기사와 홍보성 기사를 분류해 실시간 보고하는 이례적인 시스템도 가동했다.
대변인실 A 팀장은 “정신이 하나도 없다. 연일 터지는 비판 기사에 해명자료를 마련하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 이런 적은 처음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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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대체 무슨 일이?
관공서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언제나 있어왔다. 어떻게 봐도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를 그리고 오세훈 시장을 겨냥한 언론의 움직임은 심상치 않다. 약 열흘에 걸쳐 하루에 한 차례씩 아픈(?)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보도 매체도 무상급식이나 한강르네상스 등으로 비판적 자세를 유지해온 진보적 성향의 매체가 아니다.
소위 親 오세훈으로 거론되던 조중동과 YTN, 연합뉴스 등이 칼자루를 쥐고 흔드는 형국이다. 그것도 지방자치단체에게는 가장 아픈 혈세 낭비와 주택정책 실패가 주요 콘셉트다.
전국적인 이슈였던 무상급식 공방에서도 묵묵히 오 시장의 손을 들어주던 매체들이 왜 갑자기 등을 보인 것일까?
“말은 하지 않지만, 이번 사태가 절반으로 줄어든 홍보비용을 주된 이유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시의회가 예산을 대폭 삭감할 때만 해도 시의회 책임론이 컸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지 않은가?”
서울시 한 고위 관계자가 <뉴데일리>와의 만남에서 조심스럽게 분석을 내놨다. 무슨 말일까?
서울시 홍보비용이 크게 줄어들면서 언론 매체의 주요 수입도 덩달아 줄었기 때문이라는 말이다.지난 연말 무상급식으로 서울시와 갈등을 빚던 서울시의회가 굵직굵직한 오세훈표 사업예산을 잘라내면서 홍보 예산을 반토막 냈다. 대변인실에서는 “아예 씨를 말렸다”는 냉소적 반응이 터져 나왔다.
<뉴데일리>가 입수한 서울시 홍보비 집행 현황을 살펴보면 지난해 160억 수준이던 국내 홍보비용이 올해는 73억으로 절반 이하로 줄었다. 가장 기본적인 언론 매체를 통한 시정 광고 예산도 작년 35억1400만원에서 올해는 10억원으로 1/3 수준에도 못 미친다. 서울시에 홍보부서가 생긴 이례 역사상 최저 금액이다.
이 때문에 서울시 소식을 전하던 YTN 서울투데이 코너가 폐지되는 등 주요 언론사들은 수입에 큰 타격을 받기 시작했다. 1/4분기 집행 금액만 봐도 12억원에서 6억7723만원으로 약 5억3000억원이나 차이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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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의회 → 오세훈 책임 전가되나?
당초 시의회가 홍보예산을 삭감할 당시만 해도 이번과 같은 사태는 없었다. 그래도 선별적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오 시장에게 든든한 지지를 보내던 언론들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오 시장이 “무상급식 타협이 없이는 더 이상 추경예산 편성도 없다”고 선언하면서 부터다.
시의회와 극적인 타협을 이뤄내며 1차 추경예산에는 삭감된 예산이 살아날 것으로 기대했던 언론사 입장에서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오 시장이 기대하고 있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결과가 빨라야 올해 하반기에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기대했던 홍보예산 기사회생은 더욱 불투명한 상태다.
신기하게도 언론사들이 ‘서울시 때리기(?)’에 나선 시점도 이 때쯤이다.
서울시청 한 출입기자는 “심각한 문제다. 광고비 삭감은 언론 입장에서는 치명적이다. 특히나 서울시처럼 그동안 수입에 큰 비중을 차지했던 관공서의 사례는 더욱 ‘섭섭’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앞서 분석을 내놨던 서울시 고위 관계자도 “언론사들이 ‘더 이상 오세훈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보는 경향이 늘게 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오 시장이 이번 미국 방문에서 돌아오면 뭔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