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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금융제도가 실시된 지 4년 째. 하지만 지금도 서민들은 서민금융보다는 대부업이나 캐피탈, 카드 현금서비스 등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서민들이 정책자금보다 ‘제2금융권’이나 ‘고금리 현금서비스’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절차 문제였다.
만만치 않은 서류준비와 계산하기 힘든 DTI 비율
K씨는 고금리 대출 몇 건을 받은 적이 있다. 처음 빌릴 때는 서류가 많이 필요치 않고 심사와 대출이 빠른 캐피탈 등이 편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높은 이자가 부담이 됐다. 몇 달 동안 매달 수십만 원을 갚아도 줄어들지 않는 빚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됐다.
K씨는 우연히 정부의 서민금융정책을 알게 된 후 서울 역삼동에 있는 자산관리공사를 찾았다.
자산관리공사는 2008년부터 고금리 대출로 고통 받는 서민들을 위해 ‘바꿔드림론(전환대출)’을 해주고 있다. ‘바꿔드림론’이란 은행권 등의 ‘환승론’과 비슷한 전환대출 상품이다. 다만 자산관리공사의 ‘바꿔드림론’은 돈을 직접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보증’을 서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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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관리공사의 ‘바꿔드림론’을 받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우선 신용등급이 6~10등급 사이여야 한다. 연 소득도 4,000만 원 미만이어야만 가능하다. 또한 갈아타려는 고금리 대출을 6개월 이상 연체 없이 갚고 있어야 한다. 카드 연체도 없어야 한다.
다음에는 서류가 필요하다. 우선 급여생활자의 경우 지난 3개월 동안 급여액이 ‘찍힌’ 통장 사본이 필요하다. 이를 기준으로 연 소득을 계산할 경우 우리가 알고 있는 연봉보다 몇 백만 원이 줄어든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한다. 자영업자는 세금신고액을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매출을 줄여 신고한 자영업자는 불리하다. 급여생활자는 재직증명서와 최근 3개월 치 급여 내역서를 받아놔야 한다.
끝으로 ‘바꿔드림론’을 받을 고금리 대출회사에 연락해 금리와 이자가 따로 찍힌 거래내역서와 매월 대출금을 입금하는 ‘가상계좌번호’도 미리 확인해야 한다.
이 때 고금리 대출업체가 착한지 나쁜지를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대출회사들은 ‘그동안 사용하면서 불편한 게 없었느냐’ ‘다음에 필요하면 다시 찾아 달라. 완제하겠다니 고맙다’며 친절하게 알려준다.
하지만 일부 캐피탈 업체는 갑자기 태도를 싹 바꾸며 서류처리를 해주지 않는다. 어떤 업체 상담원은 말을 돌리며 몇 시간 동안 내역서를 보내지 않거나 말꼬리를 잡으며 짜증을 내기도 한다. 어떤 업체는 ‘이자를 깎아주고 한도도 늘려 주겠다’며 계속 거래하자며 전화를 해댔다. 우여곡절 끝에 서류를 준비하는 데 이틀이 걸렸다.
K씨는 이튿날 ‘이제는 다 됐겠지’하며 준비한 서류와 가상계좌번호, 대출거래내역서를 들고 자산관리공사를 찾았다.
하지만 몰랐던 장애물이 있었다. DTI 비율이었다. DTI 비율을 간단히 설명하자면, 월 평균 소득과 자산 등을 기초로 월별 대출 상환액을 계산할 때 얼마까지 갚을 수 있는가를 계산한 것이다. 자산관리공사는 물론 금융기관마다 나름대로의 DTI 평가방법을 갖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바꿔드림론' 신청자의 소유자산 규모, 카드 사용내역, 대출내역, 월 평균 소득, 결혼 유무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소액연체, 카드 현금서비스도 DTI 평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자산관리공사가 허용하는 DTI 비율은 40%. K씨는 턱걸이 끝에 ‘보증’을 받을 수 있었다. 금리는 연 12%로 정해졌다. 여기까지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3시간 가량. 자산관리공사 직원의 말에 따르면 보통 1시간 내외가 걸린다고 했다.
‘전환대출’ 처음 보는 은행과 ‘중도 상환 수수료’
K씨는 사흘 동안 씨름한 끝에 받은 ‘바꿔드림론 대출 보증서’를 쥐고 은행을 찾았다. 하지만 은행직원은 보증서를 보더니, ‘이게 뭐냐, 처음 본다’고 되물었다.
사정을 설명하자 ‘죄송하지만, 저희 지점에서는 자산관리공사 전환대출은 처음 다뤄본다’며 당황해 했다. 일부 지점에선 ‘바꿔드림론'을 다뤄보지 않았을 것이라는 자산관리공사 직원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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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저곳 알아보던 은행 직원은 ‘상냥한’ 목소리로 “이 대출건은 저희가 본점에 서류를 보내서 심사를 거친 뒤에 결정할 수 있는 대출 건이라 며칠 이상 걸린다. 대출이 가능한지는 심사를 해봐야 안다”고 답했다.
정부 산하기관 보증서인데 또 심사를? 자산관리공사를 못 믿겠다는 말로 들렸다.
‘그럼 다른 곳에 가서 받겠다’며 보증서를 돌려 달라고 하자 은행직원은 그제야 “일단 접수를 한 뒤에 언제까지 처리할 수 있는지 전화로 알려 드리겠다”며 보증서와 서류를 맡길 것을 권했다.
당일 저녁 은행에서 전화가 왔다. “승인이 나셨습니다.”
다음날 오전 은행을 찾아 ‘전환대출’을 받았다.
마지막 고비를 만났다. ‘중도상환수수료’와 빚을 갚은 날까지의 ‘일일 이자’ 납입이었다. ‘채무를 모두 변제하려 한다. 얼마를 입금해야 하느냐’고 묻자 고금리 대출업체들은 ‘원금 이외에 중도상환수수료 ○○만 원과 오늘까지의 이자 ○만 원을 납입해야 모두 갚은 게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문제는 ‘바꿔드림론’의 보증 조건이 고금리 대출을 모두 갚아야만 효력이 있다는 점. 때문에 K씨는 결국 1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또 대출업체들에 보내야 했다.
분명 정부와 은행권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음에도 뭔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그나마 어느 정도 수입이 있는 자신이 이 정도면 월수입 200만 원 남짓인 사람은 어떨까.
K씨는 이렇게 ‘대출 전환’에 성공했다. 연 이자는 35.5%에서 12%로 낮아졌다. K씨의 마음도 편해졌다. 매달 100만 원 넘게 내던 대출금이 40만 원으로 확 줄었기 때문이다.
“도덕적 해이 막으려면 이것저것 따질 수밖에 없어”
자산관리공사가 ‘바꿔드림론’을 시작한 것은 2008년부터다. 예전에도 서민을 위한 정책금융은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실채권’ 비율이 높아지자 정부 기관들은 나름대로 자구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정부에서 보증을 서 대출받은 것은 안 갚아도 된다’는 이상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자산관리공사 측은 “결국 보다 많은, ‘성실한 서민’을 돕기 위해서는 이런 저런 조건, DTI비율을 따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03년 ‘카드 대란’과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저축은행-건설업계의 ‘PF 대란’과 같이, ‘아무에게나’ 보증을 해주면 ‘부실채권’ 규모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이런 점 때문에 연 소득 4,000만 원 미만의 서민 중 고금리로 돈을 빌린 뒤 6개월 이상 연체 없이 꼬박꼬박 갚은 사람에게만 ‘보증’을 해준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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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자산관리공사의 ‘보증’을 받는 사람들 중에는 소득도 많고 신용등급이 높을 것으로 생각되는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 언론인, 국회의원 보좌관 등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급전(急錢)이 필요해 은행에 문의했다 서류심사를 받을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경우 대부업체를 찾는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 빌릴 때 생각과는 달리 부채는 계속 늘어나게 되고 결국 전환대출을 찾게 된다고.
어렵고 힘든 ‘전환대출’ 과정, ‘자업자득’ 생각하면 편해
이 같은 ‘바꿔드림론’ 과정을 보면 복잡하고 까다롭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산관리공사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보면 얼마나 고마운지 느낄 수 있다.
K씨만 하더라도 ‘바꿔드림론’을 받는 과정에서 고비를 겪을 때마다 자산관리공사 상담직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자산관리공사 직원들은 이상한 말을 하며 서류정리를 미루는 캐피탈 업체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하고, K씨가 최대한 빨리 ‘대출 전환’을 받을 수 있도록 꼼꼼하게 ‘컨설팅’을 해줬다.
‘바꿔드림론’을 받은 K씨도 “과정이 복잡하고 까다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내가 성급하게 쓴 고금리 대출을 바꾸는 과정이니 자업자득”이라며 “그 정도는 참는 게 맞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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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관리공사는 현재 서민들을 위해 ‘바꿔드림론’ 외에도 ‘신용회복 프로그램’을 통해 1년 이상 빚을 갚은 사람들을 위한 저금리 생계자금 대출, 저신용자와 신용회복자를 위한 취업상담 프로그램도 함께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런 서비스의 대상인 서민들은 물론 ‘바꿔드림론’을 대행해주는 전국 5,600여개 은행 지점들도 자산관리공사를 잘 모르고 있다.
자산관리공사는 서민지원 프로그램을 널리 알리고 싶어하지만 방송광고조차 하기 어려운 홍보예산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토로했다. 지금 가장 필요한 서민정책이란 이런 ‘이미 만든 서비스’부터 제대로 홍보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