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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할리우드 톱스타의 입에서 어설픈 한국어 인사말이 터져 나오자 장내에 요란한 박수가 터졌다. 비록 손바닥에 적어놓은 메모를 읽은 것에 불과했지만 이 한 마디로 거물급 스타와의 거리감이 조금 좁혀지는 듯 했다.
브래드 피트(48).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그는 내로라하는 할리우드의 정상급 배우다. 출연작마다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 미국 뿐 아니라 세계 도처에 그의 열혈팬을 자처하는 '광팬'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상당수가 여성팬이긴 하지만, 국경과 인종을 초월한 그의 인기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
하지만 막상 눈앞에 나타난 그는 너무나 소탈했고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인기가 좀 있다고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여 온 일부 할리우드 스타들과는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통역사에게까지 깍듯이 예의를 갖추고 인사를 하는가 하면, 자신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수많은 팬들에게 일일이 사인을 해주고 악수를 건네는 등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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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 푸근한 매력 ‘빵 아저씨’로 인기‥
영화 '머니볼' 개봉을 앞두고 브래드 피트가 한국에서 소화한 일정은 공식 기자회견과 프리미어 레드카펫 행사 단 2개였지만, 친절하고도 소탈한 그만의 매력을 어필하기엔 충분했다.
일부 언론은 방한 일정 내내 멋진 미소와 젠틀한 매너로 화답한 그에게 '친절한 빵 아저씨'라는 푸근한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지난 15일 서울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진행된 첫 내한 기념 기자회견에서도 그는 꾸밈없는 답변과 가식 없는 행동으로 국내 취재진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아내 졸리로부터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말문을 연 브래드 피트는 "꼭 한번은 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경제적 논리에 따라 이제서야 방한하게 됐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일본 등 주변국들에 비해 시장 규모가 작은 것이 그동안 방한하지 못했던 이유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그는 "한국 시장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고 특히 영화와 스포츠 등 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일종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라며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에 후한 점수를 매겼다.
실제로 브래드 피트는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투자로 좀비 영화 '월드 워 Z'를 제작 중이다. 그는 "차후에도 한국 회사들과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밝혀, 장래에 한국과 손을 잡고 또 다른 영화 제작에 나설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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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장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허브"
한국에 대한 '립서비스'가 끝나자 브래드 피트는 주저 없이 영화 홍보에 들어갔는데, 일부 취재진으로부터 '강연을 듣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철학과 경제가 어우러진 심도 깊은 이야기가 이어졌다.
캐스팅 문제부터 할리우드 영화 제작 시스템까지…. 어떤 주제든 그는 막힘없이 자신의 생각을 풀어나갔다. 조금 지루한 감이 없진 않았지만, 취재진의 질문 하나하나에 열과 성을 다해 답변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브래드 피트가 단순히 겉멋만 든 스타는 아니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특히 "톱스타 위주의 영화 제작이 반드시 능사는 아니"라는 그의 주장이 인상 깊었다.
"톱스타가 출연하고 재미있는 주제를 다룬 작품은 개봉 첫 주에는 흥행을 하겠죠. 어떤 이들은 영화가 인기를 얻는 이유가 호화 캐스팅 때문이 아니냐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흥행이 지속되고 오랫동안 사랑을 받기 위해선 영화의 내용과 메시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다양한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주제가 스테디 셀러를 만드는 비결이라는 거죠."
그는 영화에 배우를 캐스팅하는 작업에도 '머니볼'에 나오는 경제 이론이 접목된다고 설명했다.
영화 '머니볼'은 메이저리그 만년 하위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단장 빌리 빈(브래드 피트)이 경제학을 전공한 피터를 영입, 소위 '머니볼' 이론에 따라 구단을 운영하면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그렸다.
'머니볼'은 경기 데이터를 철저하게 분석해 오로지 데이터만을 기반으로 적재적소에 선수들을 배치, 승률을 높이는 게임 이론이다.
영화 속에서 빌리 빈은 사생활이 문란하거나 잦은 부상 등에 시달리는 천덕꾸러기 선수들을 대거 팀에 합류시켜 주위 사람들로부터 '미친 짓'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수치와 통계의 바탕을 둔 치밀한 전략으로 그는 140년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로 20연승이라는 최대 이변을 연출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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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톱스타 캐스팅, 흥행보증 수표 아냐"
브래드 피트는 "마치 '머니볼'처럼 유명한 배우보다는 다양한 재능이 있는 배우들과 작업하는 게 훨씬 매력적"이라고 밝혔다.
"유명 선수가 반드시 팀을 승리로 이끄는 것 아니죠. 그보단 재능 있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톱배우가 영화 흥행을 보장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인을 발굴해서 함께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나가는 게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배우들의 캐스팅 문제에 유독 관심을 보인 그는 "앞으로 제작하기 매우 어렵고 복잡한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영화 제작자로서의 변신을 예고했다.
사실 브래드 피트는 '머니볼'에서 주인공 빌리 빈 역으로 출연하기도 하지만, 제작자로도 참여한 상태다.
이외에도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킥애스 : 영웅의 탄생' 등 다수의 상업 영화 제작에 관여해 온 그는 현재 국내에서 상영 중인 제63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자 주연작 '트리 오브 라이프'를 직접 제작한 장본인이다.
제작사 플랜B의 대표이기도 한 브래드 피트는 할리우드 상업 영화는 물론, 작가주의 영화에까지 선뜻 거금을 투자하는 '통 큰' 행보를 보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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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배우 생활에 정년은 없어‥"
이처럼 영화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는 브래드 피트는 "조만간 배우가 아닌, 제작에 전념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한 적이 있다. 국내에 오기 전 호주 토크쇼 '60분(60 Minutes)'에 출연, "앞으로 3년 동안만 배우 생활을 할 것"이라고 못 박은 것.
브래드 피트는 지난달 선데이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도 "사람에겐 모두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는데 내 유통기간이 다 돼 가고 있다"면서 "머지않아 심술궂은 배역만 들어올 게 확실하다. 그 전에 배우로서의 활동을 중단하겠다"는 속내를 밝혔다.
이에 따라 브래드 피트가 정말로 자신의 배우 생활을 50세 이전에 마감할 것인지에 대해 국내 취재진 역시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
하지만 브래드 피트는 "배우 활동을 언제 중단하겠다는 기한을 둔 건 아니"라며 "다만 현재 배우보다 제작에 더 많은 흥미를 갖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날 브래드 피트는 "상대적으로 제작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지만 "배우 활동엔 딱히 기한이 없다"고 강조, 3년 후 은퇴하겠다던 자신의 종전 발언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나이가 들면 지혜가 함께 따라오기 마련"이라며 잔뜩 무게를 잡던 그가 이렇게 입이 가벼웠나 하는 실망감이 들긴 했지만…, 브래드 피트의 ‘배우 수명’이 연장됐다는 소식은 어쨌거나 반가운 뉴스임에는 틀림없다.
'머니볼'로 내년 오스카상 수상이 유력시 되는 브래드 피트가 과연 배우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지, 이를 지켜보는 것도 팬들에겐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가 될 듯싶다.
'조각미남'에서 '빵아저씨'로 변신한 브래드 피트의 다음 행보는 어떤 모습일까?
취재 조광형 기자 ckh@newdaily.co.kr
사진 양호상 기자 n2cf@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