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 어려운 환자의 고개 끄덕임, 대리권 수여 불인정 무효
  • ▲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환자 또는 장애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 만으로는 정당한 대리권이 수여됐다고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사진은 한 대형병원에서 어느 환자가 중환자실로 이송되는 모습. ⓒ 연합뉴스
    ▲ 정상적인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의 환자 또는 장애인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사실 만으로는 정당한 대리권이 수여됐다고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사진은 한 대형병원에서 어느 환자가 중환자실로 이송되는 모습. ⓒ 연합뉴스
    [Q] 재테크에 관심이 많았던 남편은 10년 전, 00은행 XX지점에서 펀드와 파생상품 등 여러 금융투자상품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5년 전부터 뇌병변 1급 판정을 받게 돼 의사소통이 어려운 채 병원에 장기입원을 반복하다가 최근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한 후, 담당 펀드매니저가 병실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처음엔 단순한 병문안을 온 것처럼 대했으나, 이내 '새로운 상품이 나왔다. 수익률이 좋다'며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당시엔 병문안까지 와 준 성의가 고마워서 해당 금융상품에 가입했습니다.

    그 상품은 6억원 가까운 손실을 불러왔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병실에서까지 영업을 하던 펀드매니저가 괘씸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해당 상품 가입이 무효이므로 돈을 돌려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펀드매니저는 "남편이 거래에 동의하지 않았느냐"며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러고보니 그는 당시 남편 앞에서 "부인이 거래를 대신 신청하셔도 되느냐"고 물었고, 남편이 고개를 끄덕거리긴 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상적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던 그의 '끄덕거림'이 법률상 효력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남편이 들어놓은 상품을 모두 합쳐 손익을 따져보니 1억원 정도의 이익이 남긴 합니다. 하지만 이를 포기하고라도 해당 거래를 무효로 하고 남편이 투자한 원금을 돌려받고 싶습니다. 펀드매니저가 곤란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돌려받을 수 있을까요?


    [A] 부인이 투병 중인 남편 명의로 금융상품에 가입한 행위가 무권대리에 해당하는지가 논점인 사례군요.

    대리가 적법하게 성립하기 위해서는 대리인이 본인을 대리할 권한을 가지고 그 범위 내에서 법률행위를 해야 합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학생이 편의점에 진열된 상품은 얼마든지 팔 수 있겠지만,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편의점 건물을 사고 팔 순 없겠지요. 그냥 지나가던 행인이 아무 편의점이나 들어가 물건을 팔 수 없는 이유도 같을 것입니다.

    부부의 경우에도 일상가사가 아닌 법률행위를 대리할 때에는 별도의 대리권을 수여하는 행위가 필요합니다. 뇌병변으로 의사불명 상태에 빠져 정상적 의사소통이 어려운 남편이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만으로는 부인에게 유효한 의사를 가지고 대리권을 수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 대법원(대판 2000.12.8., 99다37856)과 금융감독원(2011.4.12., 조정번호 2011-25호)의 입장입니다. 특히 펀드매니저가 병문안까지 온 상황이니, 남편의 병세를 알고 있었을 것이니 더욱 그럴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부인이나 자녀, 기타 어떤 상속인이라도 남편께서 금융상품을 통해 얻은 이익인 1억원에 대한 상속을 하지 않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상속이 시작되는 순간, 부인께서는 원상회복을 청구하실 수 없게 됩니다. 상속이란 남편의 모든 권리 의무를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절차를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본인이 한 거래행위를 본인이 무효라고 주장하는 셈이 되므로 '금반언의 원칙'에 어긋나 인정되지 않습니다(대판 1994.9.27., 94다2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