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가사 아닌 빚 보증, 배우자가 갚을 의무 없어
  • ▲ 부부 일방이 사업상 빚을 진 경우 다른 일방은 이를 갚을 의무가 없다. 사진은 독촉장 샘플. ⓒ 유상석
    ▲ 부부 일방이 사업상 빚을 진 경우 다른 일방은 이를 갚을 의무가 없다. 사진은 독촉장 샘플. ⓒ 유상석

    [Q] 어느 날 갑자기 은행에서 제게 독촉장을 보냈습니다. 제게 빚을 갚으라는 겁니다. 전 은행에서 돈을 빌린 적이 없는데요.

    알고 보니, 제 아내가 사고를 친 겁니다. 아내는 항상 펜션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해왔는데,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펜션 하나를 인수했다는 겁니다. 펜션을 운영하면서 대출을 갚겠다고 마음먹고 일을 저질렀지만, 예상보다 수입은 좋지 않았고, 결국 기한 내 돈을 갚지 못했다는군요.

    더 황당한 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가 절 연대보증인으로 내세웠다는 겁니다. 관련 서류에 제 서명까지 한 채로요. 

    하지만 은행 측은 막무가내로 제게 변제하라는 말만 재촉합니다. 어쨌든 대출 신청 서류에 제 이름으로 서명이 돼 있으며, 그 서류에 적힌 제 이름과 아내의 이름 필체가 다르기 때문에, 제가 서명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요.

    그러면서 "민법상 일상가사대리권이 인정되므로, 설사 보증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아내의 빚은 남편이 갚는 게 맞다"고 합니다. 근거 있는 주장인지요?


    [A] 일상가사대리권이란 가정의 일상생활 범위 내에 한해 부부는 서로 대리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동네 상점에서 간단한 식료품을 살 때, 아내는 남편의 이름으로 외상거래를 할 수 있는 근거가 바로 이 일상가사대리권입니다.

    하지만 그 적용범위는 어디까지나 '일상가사'에 한정돼야겠죠. 남편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아내가 그 회사의 임직원이 아닐 경우, 남편 회사의 사업상 계약을 아내가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요.

    이 경우도 마찬가지라 하겠습니다. 아내가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것은 어디까지나 펜션 운영이라는 아내의 사업상 목적에 따른 것입니다. 일상가사대리권의 범위라고 보긴 어렵죠.

    은행이 대출서류를 심사할 때, 귀하에게 보증의사를 확인한 사실이 없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서류상 대출신청인과 보증인의 서명 필체가 다르다곤 해도, 이것만으로 보증인이 자의로 직접 보증 의사를 밝혔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지요.

    어떤 이유로든 은행이 귀하에게 빚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도 없으며, 귀하가 이에 응할 이유도 없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쉽게 예측 가능한 결론인데요, 이런 당연한 문제조차 분쟁의 대상이 된다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