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선충당금 등 문제 소지 항목은 그대내년 실시 외부회계감사 의무 피할 방법도
  • ▲ 아파트 단지 모습.ⓒ연합뉴스
    ▲ 아파트 단지 모습.ⓒ연합뉴스


    정부가 아파트 관리비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관리비 공개 항목을 확대하지만, 정작 문제의 소지가 있는 항목은 변화가 거의 없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그나마 내년부터 회계감사를 외부에서 받도록 의무화됐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명시되지 않아 아파트 관리비를 둘러싼 잡음은 가시지 않을 전망이다.


    ◇관리비 공개 항목 확대 일반관리비에 편중돼


    국토교통부는 다음 달부터 300세대 이상 등 의무관리대상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아파트 관리비 내용 공개 항목을 현행 27개에서 47개로 확대한다.


    확대되는 관리비 내용은 인건비의 경우 급여와 상여금, 국민연금, 식대 등 복리후생비로 세분된다.

    차량유지비도 연료비와 수리비, 보험료, 기타로 나뉘어 공개된다.


    그러나 공개 항목 세분화가 일부 문제의 소지가 있는 장기수선충당금과 경비비 등은 빠진 채 월별 변동 폭이 크지 않은 일반관리비에 편중돼 있어 관리비 투명성 제고에 대한 실효성이 의문시된다.


    부동산업계 관계자 송모씨는 "눈에 보이는 인건비나 보험료보다는 장기수선충당금이나 입주자대표회의 운영비, 경비비 등에서 비리가 발생하기 쉽다"며 "승강기유지비만 해도 바뀐 항목에서 몇 대가 운용되고 각종 검사비는 얼마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개선된 항목표에는 송씨가 언급한 항목이 모두 세분되지 않은 채 종전과 다름없이 표기된다.


    박계관 혜천대 금융부동산행정과 교수는 "일반관리비는 월별로 거의 비슷한 데 비해 교통유발금이나 공동사용 전기료 등은 여전히 장난을 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중앙난방의 경우도 관리사무소에서 난방을 가동했다고 하면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한 알기 어려워 투명성이 떨어진다"고 부연했다.


    수년간 아파트 회계감사를 맡았다는 조모씨는 "감사라고 하지만, 수많은 세대를 일일이 확인하기는 불가능하고 관리소장과 주민대표가 짬짜미해서 관련 서류를 준비하면 비리를 찾아내기 어렵다"며 "세대 수가 많은 아파트 단지일수록 착복하는 금액을 소액으로 쪼개 각 세대에 떠넘길 수 있기 때문에 관리비 내용 세분화뿐만 아니라 감사 기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판단된 부분에 초점을 맞춰 공개 항목 세분화가 이뤄졌다"며 "앞으로 필요성이 인정되면 항목을 더 세분화할 수도 있지만, 이번 조치만으로도 입주민 알 권리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내년부터 외부 회계감사 의무…구체적 방법 제시 안 돼 잡음 불씨 여전


    지난해 말 주택 관련 법이 일부 개정돼 내년부터 300세대 이상 공동주택 등은 매년 외부 회계전문업체로부터 감사를 받아야 한다. 이를 어기면 공동주택 관리주체에 7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아파트 관리비 비리가 각종 공사 과정에서 수의계약과 사례비를 통해 착복이 이뤄지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관리비 공개 항목 세분화보다 투명성 제고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되는 부분이다.


    송씨는 "현재는 감사를 주민대표가 하기 때문에 전문성 부족과 함께 내부에서의 짬짜미 가능성이 높다"며 "일각에서는 외부 회계감사를 의무화하면 관리비가 상승하는 역효과를 우려하지만, 감사를 통해 투명성이 확보되면 관리비가 줄어드는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률 개정안이 외부감사에 관한 구체적인 방법까지는 담고 있지 않아 관리비 투명성을 둘러싼 잡음은 당분간 계속될 거란 견해도 나온다.


    개정안에는 입주민의 3분의 2가 찬성하면 외부 감사를 시행하지 않아도 된다는 단서조항이 붙어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주민 10분의 1이 원하면 선택적으로 외부 감사를 할 수 있게 한 것과 비교하면 입주민 동의를 얻는 비율이 높아졌다"고 부연했다.


    그러나 입주민 동의가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 있는 데다 외부감사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 이듬해는 반드시 외부 감사를 해야 한다는 내용도 빠져 있어 사실상 외부감사를 피할 방법이 열려 있는 셈이다.


    송씨는 "주민 동의를 얻어 내부감사가 이뤄진다면 고질적인 짬짜미와 전문성 부족으로 비리 적발이 어려워진다"며 "예외 없이 외부 회계감사를 받도록 해야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역설했다.


    또 "입주민과 관리주체가 각각 복수의 회계법인을 추천하도록 해야 감사의 정확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토부 관계자는 "아파트 관리비 비리 문제가 불거져 개정안을 마련했지만, 구체적인 감사 방법까지는 담지 못했다"며 "구체적인 방법은 입주민이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