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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규제개혁이 올해만큼 사회적 화두가 된 적도 없었다. 3월초 규제는 암덩어리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시작으로 규제혁파는 단박에 제1의 국정과제로 떠올랐다. 전 부처가 총동원돼 규제혁파에 올인하는 모양새를 띄고 있다.
7~8개월이 흐른 현재, 과연 기업과 자영업자, 일반 국민들은 얼마나 규제완화 효과를 실감할 수 있을까?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장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는 효과를 느끼지 못한다는게 중론이다. 오히려 발목잡는 규제가 더 많아졌다는 볼멘소리까지 터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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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라한 6개월의 성적표...6만개 규제 중 200개 완료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법령이나 조례 등으로 정한 규제건수는 10월 현재 6만여개에 달한다. 법령규제가 1만4987개, 지자체 규제는 4만3773개이다.
국토교통부가 2374개로 가장 많고 해수부 1494개, 보건복지부 1197개, 산업부 1104개 순이다. 공정위와 식약처, 소방방재청, 산림청 등도 평균 500여개의 규제를 갖고 있다. 조례와 규칙 등으로 정한 지자체 규제는 자그만치 중앙부처의 세배에 달한다.
이른바 '착한규제'를 차치하더라도 많아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다. 대통령은 3월과 9월 두차례의 규제개혁장관회의를 직접 주재했으며 무역투자진흥회의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국민경제자문회의, 국무회의, 수석비서관회의 등과 현장 간담회에서까지 수십차례에 걸쳐 규제완화를 언급하며 속도전을 주문했다.
규제개혁 컨트롤타워인 국무조정실은 규제총량제와 규제등록제 등을 만들고 규제개혁 신문고와 규제포털도 새롭게 꾸며 부처와 지자체들의 규제혁파를 독려하고 있다.
신문고에 접수된 민원 1만5124건 중 부처별로 협의중인 310건을 포함해 8596건에 일일히 답을 하는 등 성의를 보이고 있다. 작지만 실제로 기업에 불편과 부담을 주는 고질적인 현장 애로사항을 해소하겠다며 손톱 밑 가시 뽑기에도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말부터 9월까지 손가시 확정과제 288건중 국회에서 심의중인 25건을 제외하고 186건을 완료했다. 3월과 9월의 두차례 규제개혁장관회의를 통해 제기된 요구건 어느새 규제개혁의 아이콘이 된 푸드트럭 등 51건을 해결했다. 7월 대통령이 김포 로컬푸드직판장 방문에서 건의받은 농산물 가공 규제완화건과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요구받은 통신기기 조명 등 보호구 기준도 완료됐다.
하지만 가장 관심을 모았던 무역투자진흥회의 안건 10건은 국제테마파크지원사업만 국회로 올렸을 뿐 의료법인부대사업범위확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허용, 7홈쇼핑, 유망기업상장활성화 등은 모두 검토단계에 머물러 있다.
만들기는 쉬워도 없애기는 힘들다는 규제혁파는 숫자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지난해 11월 기준 등록 규제건수는 1만5207건, 1년여가 흐른 10월 현재 규제건수는 1만4987개로 200여개 남짓 줄어드는데 그쳤다. -
◇ 규제 똬리...공무원과 국회가 발목
국회에서 잠자고 민생과 경제활성화 법안에는 규제개혁안이 수두룩하다. 하지만 처리를 기다리기가 하세월이다. 30여개 관련 법안 중 2년 이상 묶여 있는 것이 5개, 1-2년이 10개, 6개월-1년 8개, 6개월 미만 7개다.2012년에 회부된 서비스·주택·의료·관광진흥법 등은 아직도 상임위에 계류중이다. 그나마 상임위라도 통과해 법사위에 올라있는 마리나 관련 법안이 다행일 정도다.
하도급법과 기초생활보장법, 해외환자유치의료법, 국제회의와 크루즈육성법, 재건축초과이익 환수 폐지법 등은 모두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소득세법, 조세특례제한법, 국토계획법, 산업집적 활성화 공장설립 등도 하염없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규제 관련 내용이 담긴 의원입법 132건도 마찬가지 신세다.
늘어나는 공무원 숫자도 달갑지 않다. 공무원 5.5명이 늘어날 때마다 규제도 1건씩 늘어난다는 통계에 기인한다. 정부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등록규제가 4210건 증가하는 사이에 공무원은 2만3185명 늘어났다. 공무원 5.5명당 규제가 1건씩 늘어난 셈이다.작년 말 현재 등록규제 1만5260건을 공무원 수 100만1272명에 대입하면 규제 1건을 65.6명의 공무원이 담당하고 있는 셈이다. 2009년말 규제 1건에 88.5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공무원 증가속도보다 규제가 훨씬 가파르게 늘어난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4년 새 공무원 수가 2.4% 늘어난 데 비해 규제는 3.8% 증가한 것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재정정보원, 금융소비자보호원, 금융전산보안전담기구, 원전 비리 전담기구, 해운보증기구 등이 신설을 준비 중이고 화학물질안전원, 화학물질관리과 설치, 정부합동방재센터도 예약돼 있다.
정부는 올해에도 경찰청 1740명, 해양경찰청 139명, 국세청 78명, 고용노동부 56명을 포함해 30여개 부처와 기관의 공무원 총 2182명을 증원했다. 매년 공무원의 정원을 1%가량 감축하겠다는 공약과 달리 새 정부 출범 이후 교원을 제외한 공무원만 5000명 이상 늘어난 것이다.
치안, 안전·건강, 소비자보호 강화 등을 위해 불가피하다는 정부의 설명이지만 늘어나는 인원과 줄지않는 규제가 야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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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은 미약...기대와 우려 교차
미약하지만 달라진 효과들도 있다. 주간예보 단위가 7일에서 10일로 바뀐다. 여가계획 수립기간이 길어지져 관광산업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동안 국내대학 재학생과 달리 예비군훈련을 2박3일 받아야 했던 외국대학 분교의 재학생들도 일반 대학생들과 똑같이 1일 8시간만 훈련을 받으면 된다.
일정 규모 이상 장아찌 등을 담글 경우 가공공장을 설립해야 했던 번거로움도 최소 규모로 완화된다. 면세한도 인상, 해외직구 활성화, 푸드트럭 개조 등도 눈에 띄는 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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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직 갈길이 멀다. 대기업이 되면 그만큼 발목을 잡는 규제가 많아져 중견기업들 사이에 대기업으로 크는 것을 꺼리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이 만연해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지난 17일 "우리나라 6대 주력산업의 성장률이 계속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큰 원인은 중견기업의 성장기피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현재 국내 기업 자산 규모별 규제 건수의 경우 자산 1000억원 이하 기업은 5건이지만 자산 2조원 미만은 21건, 자산 5조원 미만은 44건으로 급증한다. 경제계에서는 기업 규모가 커지더라도 규제 수준은 3∼5년간 이전 수준으로 유예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
정부가 금융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오히려 규제는 늘어난 것으로도 확인됐다. 김종훈 새누리당 의원은 14일 정무위 국감에서 2009년 918건이던 금융관련 규제가 지난달 기준 1099건으로 19.7%나 늘어났다고 밝혔다. 금융 공기업과 협회 등의 내규, 업무프로세스, 모범규준과 행정지도 등에 숨어있는 드러나지 않은 규제도 2000건에 달한다고 지적했다.
탄산수가 건강과 미용에 좋다는 인식이 퍼지자 2010년 75억원에 불과하던 국내 탄산수 시장 규모는 지난해 195억원으로 훌쩍 커졌다. 하지만, 기존 먹는 샘물 공장에서는 탄산수를 생산할 수 없고 외부에 따로 음료 제조 공장을 세워야 한다. 먹는 샘물에 탄산만 첨가하면 만들 수 있어 미국·중국·일본·호주·동남아시아 등지에서는 혼합생산을 하지만 국내에서는 금지하고 있다.
1960∼70년대 낡은 규제도 여전하다. 현행 건축법에는 산업단지 내 기숙사에서는 공동취사만 가능하도록 돼 있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중시되는 시점에서 개발시대 당시 여성근로자들을 집단수용할 때 만들어진 규제가 아직도 잔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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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주요 석화업계 CEO들은 지난 21일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의 간담회에서 7조5000억원까지 지속적인 투자 확대를 약속했다. 대신 정부에 규제 완화를 당부했다. 새롭게 신설된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도와 화학관련 법안은 물론 내년부터 시행되는 탄소배출권 제도 탓에 투자를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렵다는 호소다. 특히 기업들은 탄소배출권 제도 시행 연기가 어렵다면 세부적으로 거래량을 다시 점검해달라고 요청했다.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 방침도 재계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정부는 이른바 기업소득환류세라는 이름으로 투자나 배당하지 않는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결정한 상황이다. 자기자본 500억원을 초과하는 기업이 대상인 이 제도는 2015년에 발생하는 기업 소득분부터 적용된다. 다만 업계의 반발에 따라 일단 3년간 한시적으로 운용한다는 방침이다.재계는 고용행태 공시제와 대형마트 영업제한 두 시간 확대, 비등기 임원으로 연봉공개 대상 확대, 탄소배출권 거래제도, 사내유보금 과세, ‘화학물질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과 화학물질관리법 등 새롭게 도입될 규제에 대해 경계하며 기업경영 악화를 토로하고 있다.
다만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 사내유보금 과세 등 규제법안들이 다소 완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산업계가 기대를 걸고 있다. 저탄소협력금제도는 시행시기가 연기되는 방향으로 의견이 모아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16년만에 대폭 손질된 행정규제기본법에는 규제비용총량제와 규제개혁신문고제 등이 있는데 불필요한 규제를 억제하거나 정비하는 데 있어 쌍두마차 역할을 할 것으로 재계는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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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단기는 물론 중·장기적으로 경기활성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카드로 거듭 '규제완화'를 강조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정부가 기업들의 고충을 공감하고 규제 개선을 위한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는 점은 다행스러운 부분"이라며 "기업 투자의 걸림돌인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규제완화 효과를 체감할 수 있도록 정부가 보다 신속하고 강력한 규제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박찬호 전경련 전무는 "내수 침체와 저물가 등 내부의 우려스러운 상황에서 중국과 유로존의 경기 둔화, 미국의 조기금리 인상 가능성, 엔저 등 대외 불확실성이 여전해 내년도 기업경영 활동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규제개혁을 통한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전삼현 숭실대 교수는 "규제비용총량제가 아닌 사전규제 비용총량제의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대국민서비스 실종, 국내 투자 및 내수 위축, 청년실업 증가 등과 같은 경제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며 정부 규제정책의 기조 변화를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