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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땅콩 리턴' 논란이 시작된 지 열흘이 다 돼가지만 국민들의 들끓는 분노는 쉬이 가라앉지 않고, 대한항공도 쉽게 자존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대한항공의 리턴이 쉽지 않을 수 있다.
자꾸만 거듭되는 거짓말과 대한항공 측의 막무가내식 대응은 조현아 前 대한항공 부사장으로 하여금 진퇴양난(進退兩難)의 길을 걸어가게 하고 있다.
최근 미국 뉴욕 한인 방송 TKC는 사고가 있었던 5일(현지시간) "조현아씨가 만취해 비행기 탑승권 발권데스크에서부터 대한항공 직원들에게 언성을 높였다"며 일등석에 탑승한 뒤에는 "'IOC 위원들을 다 죽여야 돼'라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고 보도했다.
또한 항공기가 리턴하는 이유를 사무장을 내리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짐을 내리기 위해 회항하는 것으로 하라고 지시하는 등 회항 이유도 조작하려 한 사실이 교신내용을 통해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건 당시 사무장이 매뉴얼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는 대한항공의 해명과는 달리 매뉴얼을 정확히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구체적인 사건 정황 보도에 대한민국은 다시 한 번 분노했다. 이제는 놀랍지도 않을 정도라며 대한항공의 무한 거짓말 반복에 진저리가 난다는 여론의 파도가 일고 있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곧바로 공식 입장 자료를 통해 "뉴욕 한인방송 보도는 사실무근"이라면서 "해당 매체에 정정보도를 요청했고, 불가피할 경우에는 법적 소송도 불사할 계획"이라며 초강수를 두고 나섰다.
그러나 그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번 보도가 정말 억울했다면 대한항공은 소란이 있다고 주장되는 탑승권 발권데스크의 CCTV라도 공개한다고 나서지 않았을까?
앞서 참여연대가 "조현아씨가 사건 당시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심한 욕설을 했다"며 조현아 전 부사장을 고발하고 나선 것에 대해서도 대한항공의 대답은 "NO"일 뿐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해당 사무장이 직접 인터뷰에 나섰고, 조현아 전 부사장에게 욕설을 듣고 무릎을 꿇고 빌었다는 등 정확한 사건 설명을 했으며 당시 일등석에 함께 타 있었던 탑승객도 국토부 조사에서 조현아 부사장의 행위를 증명했지만 대한항공은 묵묵부답(默默不答)일 뿐이다.
'땅콩 리턴' 사건이 알려졌을 당시에도 대한항공은 초지일관 '사실무근'과 '오해'를 강조해왔다. "사무장을 내리게 한 것은 맞지만 임원으로써 당연히 지적해야 할 일", "해당 사무장이 매뉴얼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언성을 높인 것은 사실, 욕설은 사실무근" 등등.
그러나 이제는 '참여 연대',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 '해당 사무장'의 말에 믿음의 무게는 실어지고 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사과는 부족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과문을 읽어 내려갔을 뿐, 국민이 궁금해하는 질문에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열흘간 '고객 감동과 가치 창출'을 사훈으로 삼았던 창립 45주년, 대한민국 1등 항공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오히려 사과는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에서 나왔다.
노조는 15일 홈페이지에 '대국민 사과문'을 게재했다. 이들은 "대한항공 조종사노동조합 전체 운항승무원들은 대한항공의 일원으로서 이번 사건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깊은 사과를 드린다. 국민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리며,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라는 장문의 글을 올렸다.
진심 어린 사과와 사실관계 해명을 해야 할 사람은 대한항공 노조가 아니다. 그동안 사건 은폐를 위해 소극적인 태도로 오히려 반감을 키웠던 대한항공, 거짓된 진술로 단 1%의 믿음도 얻지 못하고 있는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이 모든 것을 회장으로서 관리·감독 했어야 할 조양호 회장이다.
특히 오늘 일간지 신문 1면 광고를 통해 대한항공 측은 '국민여러분들께 깊이 사죄드린다'는 사과 광고를 게재했지만, 무심한 듯한 몇 마디의 사과문은 깊이 와 닿지 않는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단 5분짜리 기자회견이 아닌, 24시간을 할애해서라도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대한민국에서 '대한항공'이라는 이름으로 위상을 지키길 위한다면, 더는 피하지 말고 사실에 근거한 해명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