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하되 '고정관념 창조적 파괴' 강조
  •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지혜롭게 열심히 하는 것이다. 100미터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 줄도 모르고 전력질주한다면 참사만 당할 뿐이다. 천천히 주변의 장애물을 살피고 가는 것만 못하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국내외 정세와 시장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새로운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낭패를 당하는 사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미 나와 있지 않으면서도 시장에 어필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사업화했을 때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 ▲ ⓒ 정주영 고 현대그룹 창업주는 창조적 파괴를 강조했다.
    ▲ ⓒ 정주영 고 현대그룹 창업주는 창조적 파괴를 강조했다.

    정주영 고 현대그룹 창업주는 임직원들에게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머리를 써서 열심히 하라”고 말하곤 했다. 고정관념을 창조적으로 파괴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현대그룹이 글로벌시대 한국경제의 동력으로 우뚝 서고, 그의 타계 이후 그룹이 자동차, 중공업, 상선 부문 등으로 분할됐음에도 갈라진 그룹들이 한국경제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이디어로 열심히 하라’는 정주영식 경영철학 DNA가 스며들어 조직의 동력으로 작동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아랫사람을 야단칠 때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정주영과 빈대의 인연은 19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향 통천에서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여러차례 가출을 시도했던 그는 1933년 네 번째로 가출해 인천부두 막노동판에 뛰어들었다.

     

    낮에 일하고 노동자 합숙소에서 묵던 그는 밤마다 빈대들이 달려들어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가만히 보니 빈대들이 나무 침상의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것이었다.

     

  • ▲ ⓒ 정주영과 빈대 일화를 다룬 일러스트
    ▲ ⓒ 정주영과 빈대 일화를 다룬 일러스트

    그는 침상 네 다리에 세숫대야를 놓고 물을 부어놓았다. 빈대들이 사람 냄새를 맡고 침상 다리를 타고 올라오다가 빠져죽으니, 며칠간은 잠을 편히 잘 수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빈대들이 달려드는게 아닌가.

     

    ‘여기에 올라오려면 세숫대야 물을 지나야 하는데, 헤엄도 못치는 빈대들이 어떻게 올라올까’ 궁금해하던 정회장은 이유를 알고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세숫대야 물을 건너 침상에 오르는 것이 불가능해지자 빈대들은 벽을 타고 천정까지 올라가 정회장의 몸으로 수직낙하했던 것이다.

     

    빈대는 4~5mm의 야행성 곤충으로 낮에는 숨고 밤에는 먹이를 찾아다니는데 지능이 거의 측정되지 않을만큼 미물에 속한다.

     

    그는 ‘하물며 빈대들도 목적 달성을 위해 저토록 머리를 쓰고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하는데, 사람이 최선을 다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교훈을 얻었고, 이후 직원들이 생각없이 일 할 때마다 ‘빈대’에 빗대 야단치곤 했던 것이다.

     

    ▶‘머리는 쓰라고 조물주가 만들어놓은 것’

     

    해방이 된 후 그는 돈을 모아 현대건설을 설립했다. 6.25 전쟁을 계기로 미군부대 막사 설치공사를 하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1952년 12월 선거공약을 한국전쟁 종결로 내걸었던 아이젠하워가 취임하기 전 1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었다. 대통령당선자 신분이었으니 경비 준비가 삼엄했음은 말할 나위도 없었다. 하지만 전쟁으로 폐허가 된 서울에 그가 묵을만한 마땅한 숙소가 있을 리 만무했다.

     

    미8군은 운현궁을 숙소로 결정하고 정회장에게 수세식 화장실 설치와 보일러 난방장치 시설, 내부 단장을 의뢰했다. 시한은 보름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사돈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속담처럼 당시 정회장을 비롯한 현대 식구들은 방안에 화장실을 설치한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고, 양변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조차 해 본 사람이 없었다. 더욱이 공사를 기일 내에 하면 공사비 갑절의 보너스를 받고, 못해내면 갑절로 벌금을 내는 조건이었다.

     

    양변기부터 본 적이 없으니 막막했다. 전쟁통이어서 새 물건을 살 곳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일단 싸인부터하고 나왔다.

     

    ‘머리 쓰면 안될 게 뭐냐’ 생각한 그가 착안한 것은 고물상이었다. 일꾼들과 무작정 용산 쪽으로 나가 고물상을 뒤졌다. 보일러통, 파이프, 세면대, 욕조에다 양변기까지 찾아냈다. 시간이 없어 주인이 비운 곳은 ‘정 아무개가 00 가져가니 물건값 받으러 오라’는 쪽지를 붙여놓고 와 공사를 서둘렀다.

     

    고물상을 뒤져 가져온 물건이었으니 제대로 작동할 리가 없었다. 열흘 만에 공사를 끝내고 보일러 시운전을 해보니 라디에이터를 비롯한 모든 연결점에서 온통 증기가 새나와 순식간에 전체가 구름 속에 파묻혀버린 것처럼 변해버렸다.

     

    밤샘 철야작업을 거쳐 보일러와 모든 연결점들을 뜯어 고치고 양변기도 제대로 작동하도록 수리했다. 13일 만에 완공하고 공사비를 받으러 갔더니, 미군들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고 ’현다이 넘버원’을 외쳤다.

     

    ▶한겨울에 묘지를 파랗게 단장하라!

     

  • ▲ ⓒ 정주영과 빈대 일화를 다룬 일러스트

    그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는 부산 유엔군 묘지 단장공사에서도 빛을 발했다.

     

    한국전에 출병한 각국의 유엔 사절들이 내한해 참배키로 했는데, 미8군 사령부는 유엔군 묘지가 너무 황량하다며 새파랗게 단장해줄 것을 주문했던 것이다. 그는 아이디어값을 포함해 실제 공사비의 3배를 요구했고 미군은 흔쾌히 응했다.

     

    계약을 맺고 온 정주영은 직원들을 시켜 인근의 모래질 보리밭을 통째로 사서 파란 보리들을 뿌리째 트럭 30대로 펴날랐다. 깊은 겨울에도 모래질 벌판의 보리 포기는 잘 캐낼 수 있었다.

     

    ‘유엔 사절 일행이 와서 각국 사병 묘지에 꽃이나 바치고 돌아갈텐데, 이게 풀이냐, 보리냐 따지겠느냐’ 며 보리 뗏장을 활용했던 것이다.

     

    공사를 마치자 미군 관계자들은 ‘원더풀, 굿 아이디어’를 연발하며 감탄했다. 영어도 제대로 못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목적에 맞게 해내는 탁월한 아이디어 덕택에 미군공사는 현대의 몫이었다. 당시 미군은 공사 발주할 일이 있으면 정회장에게 우선 물어보고 ‘바빠서 못한다’고 하면 다른 업체에 일을 맡겼던 것이다.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