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올 상반기 VCM 개최… 계열사 대표 등 80여명 참석"작년 역사상 가장 힘든 해… 대혁신의 전환점 삼아야" 피력화학·유통 부진 유동성 위기에 선택과 집중 강조도
  •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지주
    ▲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롯데지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9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린 올해 상반기 VCM(Value Creation Meeting·옛 사장단회의)에서 고강도 쇄신을 주문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그룹이 가진 자산을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지금의 난관을 돌파하자고 역설한 것이다.

    이는 신 회장이 지난 2일 신년사에서 "올해는 불확실성 확대와 내수 시장 침체 장기화 등으로 경제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울 것"이라며 "혁신 없이는 더 큰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VCM은 매년 상·하반기에 열리는 행사로 이날 신 회장을 비롯해 계열사 대표 등 약 80명이 참석했다. 통상 상반기에는 전년도 경영성과를 돌아보고 그 해 경영 목표를 수립해 공유한다.

    이번 VCM는 지난해 말 불거진 롯데그룹 유동성 위기설 이후 열린 만큼, 핵심 사업군별 재무 건전성 강화 방안이 집중적으로 논의됐다. 이는 단순히 경쟁사 대비 비교 우위를 확보하는 것을 넘어 그룹의 생존을 위함이다.

    신 회장은 이 자리에서 "지난해는 그룹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한 해"라며 그룹 실적을 냉정하게 평가하며 "빠른 시간 내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유형자산 매각, 자산 재평가 등 다양한 방안을 시행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사업의 본원적 경쟁력 강화로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위기가 일상이 된 지금,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의 근본 원인은 외부환경이 아닌 우리 핵심사업의 경쟁력 저하"라고 단호하게 지적했다. 이어 "지금 쇄신하고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

    롯데는 2010년부터 13년간 자산 기준 재계 순위 5위를 유지해오다가 주력 사업의 부진으로 지난해 포스코에 밀려 6위로 한 계단 하락했다. 그룹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하는 화학 및 유통 부문이 최근 부진을 겪고 있고 한때 유통 시장에서 절대적인 위상을 자랑했으나 시장 중심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입지가 위협받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롯데는 지난해 말 정보지에서 시작된 유동성 위기설로 곤혹을 치렀다. 정보지에는 12월 초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 선언 가능성, 차입금 39조원, 이커머스 계열사 롯데온의 수조 원대 적자 등이 언급됐다.

    위기설이 확산되자 롯데는 즉각 "사실무근"이라고 공시했지만 시장 불안감이 커지면서 주요 계열사 주가가 일제히 하락하는 등 타격을 입었다.
  • ▲ 롯데그룹 계열사 대표들 ⓒ정상윤 기자
    ▲ 롯데그룹 계열사 대표들 ⓒ정상윤 기자
    신 회장은 그룹의 본질적인 쇄신을 위해 CEO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올해의 경영 방침으로 도전적인 목표 수립, 사업구조 혁신 글로벌 전략 수립 등을 제시했다.

    신 회장은 관성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구조와 업무 방식 혁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것을 주문했다.

    "과거의 연장선에서 매너리즘에 빠져 목표를 수립하는 기존 방식을 바꿔야 한다"며 "도전적인 목표와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어 "국내 경제, 인구 전망을 고려했을 때 향후 그룹의 성장을 위해 해외시장 개척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며 신규 글로벌 사업 모색을 당부했다. 이를 위해 해외 시장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차별화된 사업 전략을 수립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춰 달라고 강조했다.

    또 "지금이 변화의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하고 이번 위기를 대혁신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 회장은 또한 "우리 롯데그룹은 역경을 극복하는 DNA가 있어 IMF, 코로나 펜데믹 등 수많은 위기를 모두 돌파해왔다"며 "대표이사를 포함한 모든 임직원이 함께 노력한다면 어떤 위기도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당부했다.

    롯데는 위기 극복을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롯데케미칼은 단기 유동성 우려를 해소한 뒤 본격적으로 사업 구조 개편에 나섰다. 현재 60% 이상을 차지하는 기초화학 포트폴리오 비중을 2030년까지 30% 이하로 줄이고 첨단소재, 정밀화학 등 미래 성장 사업의 비중을 확대할 계획이다. 또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 법인인 롯데우베합성고무(LUSR)를 청산하기로 했다.

    화학 사업군과 함께 유통 사업군도 비효율 점포와 유휴 자산 매각을 통해 재무 건전성을 강화한다. 롯데백화점은 실적 부진에 시달리는 부산 센텀시티점의 인수자를 찾고 있으며 분당, 일산, 상인, 포항, 동래 등 5개 점포는 매각 후 재임대(세일 앤 리스백) 방식으로 매각을 추진 중이다.

    또 신성장 사업으로 추진했던 헬스케어 사업은 사업성이 부족하다고 판단해 과감히 철수하기로 했다. 앞서 롯데는 국내 렌터카 1위 업체인 롯데렌탈을 외국계 사모펀드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어피니티)에 매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