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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홀릭]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했던가?
잘 나가던 그에게 제동이 걸렸다. 그것도 가족의 문제로. 마리텔(마이 리틀 텔레비전)에서 당분간 그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백종원은 마리텔 출연자 중 쌍방향 소통에 가장 능한 사람이었다. 요리를 하면서 유쾌하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사람, 요리를 통해 자신의 매력을 가장 잘 어필 할 줄 아는 사람이 바로 백종원이라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그의 하차 소식에는 “당분간”, “잠정”, “일시” 라는 수식어가 따른다. 바람이 잦아들면 다시 찾아오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도 될 듯싶다. 하지만 꼭 바람이 잦아들 때까지 사라져야만 하는가?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방송스타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셰프, 셰프테이너 전성시대를 이끌고 있는 장본인, 음식 만들기의 부담스러움을 제거해 준 자취생들의 우상, 기부문화의 새로운 아이콘, 이제는 더 이상 소유진의 남편이라는 타이틀이 필요 없는 스타 셰프 백종원.
전 충남교육감 백승탁씨의 20대 여성 캐디 성추행 파문 소식은 “백종원의 아버지”라는 수식어로 각 언론에 도배되었다. 최근 가장 핫한 인물이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공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유명세를 톡톡히 치룬 셈이다.
뉴스가 전해지기가 무섭게 방송하차를 요구하는 네티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곧 모든 방송에서 하차하는 백종원의 모습이 예상했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그는 출연하는 프로그램 중 유독 마리텔에서만 하차 소식을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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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쌍방향 소통 방식이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 그에게 가장 큰 부담요소로 작용한 것이다. 방송에서 직접 악플을 마주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리라. 그러나 이 역시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일뿐이다. 예상 가능을 넘어 확실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가 그저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길 바랬다. 그것이 백종원식 대처법이 되기를 바랬다. 그의 유연함이 이번 위기에서 어떤 식으로 빛을 발하게 될지 궁금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익명성으로 무장하고 무차별 공격하는 악플의 엄청난 파괴력은 그가 가진 유연함조차 두려움으로 치환시켜 버린 것만 같다. 구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연좌제가 악플의 형태로 부활한 모양새다. 혹자는 모 방송에서 한층 더 나아가 그에게 숨지 말고 나와서 아버지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라고 한다. 이 얼마나 성급한 궤변인가!
1인 가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는 뼈 속 깊이 가족중심주의 사고방식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연좌제를 운운하는 것도 이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백승탁 전 충남교육감의 성추행 사건은 지금 조사 중에 있을 뿐이다.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섣부르다.
사건이 보도된 이후에도 그의 레시피는 인기검색어 상위에 랭크되고 있다. 여전히 그를 지지하는 팬들이 많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최근 방송된 집밥 백선생에서 백종원은 아버지의 사건을 불식 시키기라도 하듯 한층 더 열정적인 모습으로 방송에 임했다. 그래서일까? 그의 모습에서 백승탁씨의 성추행 사건이 연상될 틈이 없었다.
그가 한 가지 알아줬으면 하는 것은 잔인한 악플러보다 자신을 한결같이 응원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그런 팬들을 위해 마리텔 하차 방침은 접어두는 게 어떨까? 쉽지 않겠지만 아버지의 사건에서 그가 보다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란다. 지금 다수의 팬들은 악플조차 백종원만의 스타일로 당당하게 맞서길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