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카 비상, 삐뚤어진 관음증이 만연한 사회
  •  서스펜스의 거장 히치콕의 작품 가운데 이창, 현기증, 싸이코를 흔히 관음증 3부작이라고 부른다. 창문을 통해 남의 삶을 엿보고, 벽에 작은 구멍을 내어 여성의 신체를 훔쳐보다가 살인에 이른다는 설정을 통해 영화는 아주 흔한 몰래 엿보기에서부터 성도착증으로 발전한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관음증의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해 낸다. 영화에서 카메라의 눈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심리를 대신하며 몰래 엿보기를 하는 주인공에게 동화되는 기제가 된다.

     

    ‘몰래’라는 수식어는 꽤나 짜릿한 호기심을 동반한다. 그리고 인간은 부지부식 간에 이 호기심에 아주 쉽게 노출되거나 빠져버린다. 본능이라고 하니 이를 부정할 수만은 없겠다.


    그러나 최근 몰카의 확산은 관음증의 대중화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단순 훔쳐보기가 개인의 성적 취향에 국한된 것이라면 기술의 발달과 함께 고도로 스마트해진 몰카의 대량 생산은 마치 대중의 그 취향을 획일화 시킨 것만 같다. 카메라의 눈으로 몰래 지켜본 누군가의 삶은 그것이 노출되는 순간 불특정 다수인 대중의 볼거리가 되고 만다.

     

  • ▲ <히치콕의 ‘싸이코’>ⓒ
    ▲ <히치콕의 ‘싸이코’>ⓒ

     

    최근 워터파크 몰카 사건을 시작으로 하루가 다르게 관련 뉴스가 봇물 터진 듯 보도되고 있다. 문제인 건 이미 뉴스로 접할 즈음이면 손안에서 SNS를 통해 관련 동영상을 공유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30대 남성의 사주를 받은 20대 여성은 그에게 돈을 받고 무방비 상태인 여성들을 거리낌 없이 몰카로 찍어댔다. 이러한 동영상은 해외 사이트에서 천만원 정도에 거래된다고 하니 돈에 몰카 동영상뿐만 아니라 썩어빠진 양심까지 함께 팔아넘기는 셈이 된다.

    고교생이 여교사의 치마 속을 촬영하고, 산부인과 의사가 환자와 간호사 등 여성의 신체 부위를 137차례 촬영하는 등 우리가 접하는 관련뉴스는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다. 학교에서는 쉬쉬하며 가해 학생에 대해 강제 전학 처분을 내렸고, 징역 1년을 선고받은 산부인과 의사에게는 “의사라는 직업을 고려할 때, 신상을 공개하면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특권계층의 봐주기 판결을 자초해 비난이 일고 있다. 사회악의 불이익까지 헤아려주는 법원의 한없는 아량에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 인해 가해자는 매우 쉽게 죄의식에 면죄부를 받게 된다. 그러나 본인도 모르는 사이 동영상에 등장해 어느새 피해자가 돼버린 여성들의 수치심과 이로 인한 심리적 충격은 어디에서도 보상 받을 방법이 없다. 몰카로 그들의 일상이 난자당했는데도 말이다.

    몰카 범죄가 2010년 1134건이었던 것에 비해 지난해에 6623건으로 4년 사이 6배가량 급증했다는 보도는 이제 우리사회가 몰카로 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뜻한다. 그것은 평범한 일상에 불안 심리를 확산시키며 특히 피해여성들에게는 트라우마가 되고 있다. 몰카의 대량 생산을 아무렇지 않게 소비해내는 방관자, 대중 역시 문제다. SNS를 통해 빠르게 유포되는 동영상의 유혹을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은 삐뚤어진 관음증이 만연한 사회에 우리의 양심 역시 무감각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보면 영상을 유포한 가해자와 이를 즐기는 대중은 무책임한 공범인 셈이다.

    보다 더 강력한 법적 장치의 마련 역시 시급하지만, 무엇보다도 가해자와 대중의 사라진 양심을 복구하는 것이 더 큰 문제다. 몰카의 주인공이 당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텐데 말이다.

    일명 Peeping Tom. 관음증을 뜻하는 이 말의 유래를 잘 생각해보라. 재단사였던 톰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보지 말 것을 신신당부했던 여성의 알몸을 창문 틈으로 몰래 봤다는 이유로 눈이 멀게 되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다. 실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은가.

     

     문화평론가    권   상   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