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질 막말로 스스로 C급 정치인 된 국회의원들


  • 19대 국회 마지막 국정감사가 23일을 끝으로 1차 일정을 마무리 했다. 당초 내년 총선을 목전에 두고4년 간 의정활동을 종합하고 민생국감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추석을 전후로 1, 2차로 진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전반기 국감은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마음은 지역구에 보내고, 몸만 국감장에 나온 의원들은 준비가 부족했고 여기에 막말과 망신주기식 고압적인 태도는 볼썽사나운 꼴을 잇따라 연출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의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는 야당 의원들이 최경환 경제부총리를 향해 "경제를 망친 주범", "재벌 하수인"이라 표현하는 등 막말을 쏟아냈다.  

    정무위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증인으로 채택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향해 '한일 전 축구 응원팀'을 묻거나 지역구 민원을 넣는 등 촌극도 벌어져 이튿날 사과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 부총리 향해 '하수인' ... 공무원노조 "C급 정치인들"

    국감의 구태는 올해도 반복됐다. 타깃은 최경환 경제부총리였다. 새정치연합 김영록 의원은 15일 국감에서 "얼마 안 있으면 물러날 것 같은데 법인세라도 정상화하는 게 가장 큰 업적이 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같은 당 박영선 의원도 "얼굴은 뻘게지셔 가지고.."라며 외모를 지적했다.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은 "기재부 공무원들이 재벌의 하수인이 되어서 재벌들의 소원만 들어준다"고 했다. 이에 새누리당 나성린 의원이 "아프리카 국가도 아니고 창피해서 함께 앉아 있기 힘들다"고 했다가 사과하는 촌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급기야 중앙행정기관공무원노동조합은 지난 17일 정부와 공무원에게 막말을 한 의원들을 규탄하는 성명을 냈다. 노조는 "면책 특권을 악용해 공무원들의 명예를 심각하게 훼손한 범죄"라면서 "C급 정치인들"이라고 비난했다. 

    안행위는 정종섭 행자부 장관의 '총선 필승' 건배사 논란으로 파행이 잇따랐다. 10일에는 야당 의원들이 퇴장해 반쪽 국감을 치렀고 18일에는 같은 문제를 놓고 여야 간 막말과 고성을 주고 받았다. 지난 15일 안전처 국감에서는 새정치연합 김동철 의원이 "도대체 머리로 일을 하는지, 발가락으로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장관이 모르시는 중에 과장이라는 '작자'가 이렇게 한 거냐"고 막말을 붓기도 했다. 

    다른 상임위도 부실하기 짝이 없다.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국정감사는 증인채택을 둘러싼 여야 공방 속에 파행했다. 메르스 사태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지만 이미 국감 시작 전부터 최원영 전 대통령고용복지수석, 김진수 보건복지비서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 증인채택에 대한 여야의 입장이 달랐다. 

    김용익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남은 의혹은 복지부와 청와대의 책임 소재인데, 증인들이 반드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김제식 새누리당 의원은 "청와대 국감은 운영위원회에서 진행되는데, 청와대 비서진을 상임위로 불러 진행된 바가 없다"면서 "문 전 장관에게 국감 3일 전에 출석을 요구했는데, 7일 전에 요구하지 않는 한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국감진행을 주장했다.  

    메르스 국감은 시작 1시간 만인 오전 11시경 파행을 맞았고 같은날 오후 5시께 산회가 선언됐다. 

    ◆ 물렁한 롯데 국감, 지역구 민원이 웬 말

    올 국감의 하이라이트로 꼽혔던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출석은 그야말로 물렁했다. 신 회장을 불러 롯데의 지배구조와 순환출자고리를 따지겠다는 여야 의원들은 엉뚱한 질문만 쏟아냈다. 여러 상임위를 대표해 정무위에서 신 회장의 출석을 따냈지만 내용은 '맹탕'이나 다름 없었다. 

    새누리당 박대동 의원은 신 회장에게 "한국과 일본이 축구시합을 하면 한국을 응원 하겠느냐"고 물었다. 행정고시 출신고시 출신의 박 의원으은  재경부를 거쳐 예금보험공사 사장을 지냈다.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은 신 회장에게 대놓고 지역구 민원을 넣었다. 그는 "롯데가 내 지역구인 계양산에 골프장을 건설한다고 통행을 금지해 등산객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두 의원의 발언이 알려진 뒤 여론의 질타가 거세지자 이튿날 국감에서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14일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건을 다룬 정무위원회도 재탕, 삼탕의 연속이었다. 기존 언론에 보도된 수준을 맴맴 돌았다. 두 회사의 합병 비율의 적정성, 국민연금이 삼성물산 합병 때와  SK-SK C&C 합병 때와 다른 선택을 한 데 대해 또 물었다. 최치훈 삼성물산 사장과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의 답변도 그간 삼성물산과 국민연금이 밝혀온 입장과 동일할 수 밖에 없었다. 

    ◆ 준비 안 된 국감에, 기업인 호출은 해마다 증가

    국감이 특별한 이슈도 만들지 못한 채 정쟁만 거듭하는 데는 '준비부족'이 가장 크다. 내년에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에서는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이 논의되면서 의원들의 지역구 수성에 수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국감 도중 자리를 뜨는 경우는 다반사이고 깊이있는 정책 국감은 실종 됐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의 한 초선 의원실 보좌관은 "우리 보좌진은 한 두 명이서 국감을 치르고 있다"면서 "나머지 인력은 모두 지역으로 나가 총선 대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새정치연합은 국정감사에서 목소리만 높일 뿐 '야당의 무대'인 국감에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당내 분열이 급기야 천정배 신당 합류로 이어지면서 당 지도부가 사실상 국감에 손을 놓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준비 안된 국감에 소환되는 기업인 수는 빠르게 증가하는 데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22일 낸 '국정감사의 본질과 남용:증인신문을 중심으로' 보고서에 따르면 16대 국회 국감에서는 기업인 출석이 평군 57.5명이었으나 19대에서는 124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특히 19대 국회의 국정감사 증인 출석 기업인 수는 평균 124명으로 16대 국회 평균 57.5명보다 2.1배 이상 늘어났다. 반면 일반인 증인 수는 16대 국회 평균 190.2명에서 19대 국회 평균 320.3명으로 1.6배가량 증가해 기업인 소환 빈도수가 상대적으로 많아졌다. 

    또 일반인 증인 중 기업인이 차지하는 비율도 2000년 22.2%에서 2014년 35.2%로 늘어났다. 2000년 국감에서 소환된 기업인 증인 수가 일반인 5명 중 1명꼴이었다면 2014년에는 3명 중 1명꼴로 증가한 셈이다.

    김수연 한경연 연구원은 "올해 국감에서도 기업인에 대한 무더기 소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증인신문은 활발한 경영활동을 저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은 내달 국감종합대책을 마련해 증인신청 실명제와 불출석증인 처벌 강화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증인신청실명제는 증인 채택 소위 구성과 증인을 신청하는 의원의 실명을 회의록에 명시하는 게 핵심으로 이번 국감이 끝나는 대로 발의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