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전략투자공사 출범 한 달…후보 사업 검토에 발 묶여"산업부 상업성 검토 안 끝나…공사는 모든 준비 마친 상태"美 "1호 투자 서둘러라" 전방위 압박…고율 관세 우려 확산정부 "국입 부합·투자금 회수 따져야…시간 쫓겨 결정 못 해”
  • ▲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8일 세종시에서 열린 '한미전략투자공사 창립행사'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재정경제부 제공) 2026.06.18. ⓒ뉴시스
    ▲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18일 세종시에서 열린 '한미전략투자공사 창립행사'에 참석해 기념사를 하고 있다. (사진=재정경제부 제공) 2026.06.18. ⓒ뉴시스
    한미 양국이 합의한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프로젝트를 전담할 한미전략투자공사가 출범한 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1호 투자 사업은 윤곽조차 드러내지 않고 있다.

    당초 공사 출범과 함께 '1호 대미 투자'가 발표될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정부는 미국이 제시한 후보 사업의 수익성과 위험을 검토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미국은 한국 정부와 기업에 약속한 투자를 신속히 이행하라고 요구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 새로 도입하는 관세 체계에서 한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6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한미전략투자공사는 지난달 18일 세종시에서 공식 출범한 이후 미국 측이 제안한 투자 후보 사업의 상업적 합리성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는 심사를 마친 뒤 다음 달께 국회에 관련 내용을 보고한다는 계획이다.

    한미전략투자공사는 지난해 한미 양국이 합의한 총 3500억달러 규모의 전략적 투자 프로젝트를 집행하기 위해 설립됐다. 이 가운데 2000억달러는 반도체와 에너지, 조선, 핵심광물, 인공지능(AI) 등 전략산업에 대한 현금 투자로 활용하고, 나머지 1500억달러는 조선산업 협력 사업에 투입하는 구조다.

    공사는 법정 자본금 2조원, 총원 50명 이내 규모로 운영되며 초대 사장에는 박종원 전 산업통상부 통상차관보가 임명됐다. 정부는 공사를 중심으로 사업관리위원회와 운영위원회 등을 가동해 후보 사업 선정과 재원 조달, 투자 집행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공사가 출범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났지만, 구체적인 투자 대상이나 규모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 한미전략투자공사 핵심 관계자는 "대미 투자사업은 먼저 산업부의 사업관리위원회에서 상업성 등 여러 항목을 검토해야 한다"며 "이 검토가 끝나야 공사의 운영위원회로 안건이 넘어오는데, 현재는 산업부에서 해당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직 공사로 안건이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에 공사가 검토를 시작할 단계는 아니다"라며 "공사는 관련 절차를 수행할 수 있는 체계와 구조를 모두 갖춰놓은 상태"라고 강조했다.

    당초 정부 안팎에서는 공사 출범을 계기로 루이지애나 액화천연가스(LNG) 수출터미널이나 원전·소형모듈원자로(SMR), 전력망 구축 사업 가운데 하나가 1호 투자 사업으로 발표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최근에는 대규모 초기 비용이 필요한 LNG 터미널보다 원전과 전력망 사업의 우선순위가 높아졌다는 전망도 제기됐다. 미국 내 AI 데이터센터 확산으로 전력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데다, 한국 기업들이 원전 설계·조달·시공과 전력기기, 변압기, 전선 등 관련 공급망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미국 측이 제시한 후보 사업 중 한국이 참여할 만한 수익성 있는 사업을 선별하는 작업이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대미투자특별법 시행령은 전략투자 사업의 선정 기준을 원금과 이자를 모두 회수할 수 있는 경우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 부담으로 조성된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정치·외교적 필요성만으로 사업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미국이 지난 5월 전달한 후보 사업을 대상으로 상업적 합리성 검토를 진행한 뒤 사업관리위원회와 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다음 달 국회에 보고할 예정이다. 사업 성격과 투자 규모에 따라 국회 동의를 받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미국은 법 제정이나 기구 출범 등 국내 절차보다 실제 투자 사업과 금액이 확정되는 것을 중요하게 보고 있다. 

    특히 미국 측은 최근 백악관과 국무부 등 여러 채널을 통해 한국 정부에 "1호 투자가 빨리 나와야 한다", "투자 이행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다"는 취지의 불만을 반복적으로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29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서남권(호남)에 800조원을 투입해 반도체 팹 4기를 건설하겠다는 내용 등을 담은 '3대 메가프로젝트' 투자 계획을 한국 정부가 발표 한 뒤 미국의 압박 강도가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건에 대한 국내 조사와 정보통신망법 시행 등을 둘러싸고 한미 간 마찰이 커진 상황에서, 대미 투자마저 지연되면서 양국 관계 전반의 갈등이 확대되는 양상이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의 투자 요구가 새 관세 체계와 맞물릴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이달 24일 종료되는 글로벌 관세를 대체하기 위해 무역법 301조 등을 활용한 새로운 관세 부과 방식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약속한 대미 투자에서 성과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미국이 이를 근거로 한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다시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강경화 주미대사가 15일부터 19일까지 닷새간 일정으로 일시 귀국한 것도 이 같은 미국 내 분위기를 국내 관계 부처에 직접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대사는 조현 외교부 장관을 시작으로 청와대와 국방부, 산업통상부, 재정경제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들을 만나 한미 현안을 협의할 예정이다.

    15일 외교부를 찾은 강경화 대사는 한국의 대미 투자 속도를 높여달라는 미측의 압박이 있지 않으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리 산업통상부와 미 상무부가 계속 협의를 이어 나가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상업적 합리성을 충족하는 프로젝트를 발굴하려고 하다 보니 조금 더 논의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도 "시간에 쫓겨 1호 대미 투자 사업을 발표할 수는 없다"며 "국익에 부합하는지, 투자금을 안정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지 등을 충분히 검토한 뒤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