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 자금조달 계획 어려워져 대우조선 인수 실패미래에셋, 미리 자금 마련하고 대우증권 인수 의지 천명
  • 2008년 10월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김승연 회장이 써낸 인수가격은 6조5000억원대이다. 말그대로 초대형 M&A였다. 물론 김 회장은 이 돈을 모두 손에 쥐고 있지 않았다. 자금조달 계획을 통해 인수자금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을 입찰제안서에 포함시켰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자금 조달이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본계약을 연기하고, 분할 납부 등의 대안을 제시했지만 산업은행은 수용하지 않았다. 한화그룹이 인수 의지가 없다는 것으로 판단하고, 이미 받았던 이행보증금 3150억원도 돌려주지 않았다. 반환소송까지 갔지만, 한화그룹은 이 마저도 돌려받지 못했다.

     

    지난 24일 미래에셋증권이 대우증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보면서 갑자기 7년 전 일이 떠올랐던 이유는 뭘까. 한화의 사례처럼 그룹의 사활을 걸어야 할 대형 M&A에서는 인수자금 확보 및 조달계획이 그만큼 중요해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대우증권 인수에 이미 올인했다. 기존 주식의 100%를 유상증자해서 1조2000억원 규모의 자금을 조달하기로 했을 때부터 모든걸 던진 셈이다. 이때부터 박 회장은 대우증권을 꼭 인수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냈다. 이마저도 부족해 대우증권 주식을 담보로 신한은행에서 8000억원 규모의 인수금융도 대출 받기로 해놨다.

     

    다만 미래에셋증권은 인수가격 상승 등을 우려해 글로벌 IB로 도약하기 위한 자본 확충이라고 연막을 쳤을 뿐이다. 물론 M&A를 염두해 뒀다고 가능성은 열어놨다.  

     

    통상적으로 수중에 있는 내 돈만으로 M&A 시장에 나서는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고 미리 돈을 빌려놓고 인수전에 나서는 경우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미리 자금을 마련했다는 것은 꼭 인수하겠다는 의지다. 만약 인수가 실패했을 경우 빌린 돈은 계륵이 되기 때문이다. ROE가 높아지면서 효율성과 건전성에 심각한 타격이 우려됐다. 그럼에도 박 회장은 위험을 감수했다. 아마 박 회장은 이번 인수전에서 질거라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박 회장은 베팅 역시 과감하게 했다. 2조4000억원대를 써내며 한국투자증권과 KB금융지주를 2000억~3000억원 이상 차이로 따돌렸다. 대우증권 인수가 그만큼 절실했다는 반증이다.

     

    물건의 가치는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따라 결정된다. 박 회장 눈에는 대우증권이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삼성동 한전부지 입찰에서 10조5500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써낸 것도 마찬가지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역시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는 1조200억원을 베팅하며 KT렌탈(현 롯데렌탈)을 차지했다.

     

    준비된 자만이, 절실한 자만이 값진 보물을 얻을 수 있다. 박 회장은 대우증권의 새 주인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다. 향후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이 발휘할 시너지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