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중동 익스포저 190억달러 … 전체 금융권 노출의 86% 차지UAE 73억달러·사우디 70억달러, 걸프 산유국에 자금 집중환율 1499원 찍고 1470원대로 급락, 유가도 100달러→80달러대 숨 고르기“직접 노출은 제한적” 평가 속 긴장 지속 … 전쟁 장기화 땐 은행 건전성 타격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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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 전쟁 긴장이 완화되며 원·달러 환율이 하루 만에 1470원대로 내려왔지만 국내 금융권의 긴장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국내 은행권이 중동 지역에 노출한 자금 규모가 약 26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분쟁이 다시 격화되거나 장기화할 경우 금융시장과 은행 건전성에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금융회사의 중동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220억달러(약 32조원)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은행 익스포저가 190억달러(약 26조원)로 전체의 86% 이상을 차지했다. 사실상 중동 금융 노출 대부분이 은행 여신 형태로 이뤄진 셈이다.

    구조를 보면 대출이 143억달러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지급보증도 35억달러에 달한다. 상당수는 중동 인프라 개발 사업이나 에너지 프로젝트와 연계된 프로젝트파이낸싱(PF), 기업금융, 무역금융 형태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동 지역 대형 인프라 사업에 한국 금융기관이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익스포저 규모도 확대됐다는 설명이다.

    국가별로 보면 자금은 걸프 핵심 산유국에 집중돼 있다. UAE 익스포저가 74억달러로 가장 많고 사우디아라비아 70억달러, 카타르 36억달러가 뒤를 잇는다. 세 나라가 전체 중동 익스포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2년 반 사이 UAE는 56억달러에서 74억달러, 사우디는 44억달러에서 70억달러로 빠르게 확대됐다.

    아직까지 직접적인 전쟁 당사국에 대한 금융 노출은 제한적인 수준이다. 국내 은행의 이란 익스포저는 약 10만달러, 이스라엘은 약 3억달러 수준에 그친다. 겉으로 보면 직접적인 전쟁 리스크는 크지 않아 보이지만, 시장에서는 중동 전역으로 갈등이 확산될 경우 금융시장과 실물경제 경로를 통해 간접적인 충격이 나타날 가능성을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은 전쟁 상황에 따라 크게 요동쳤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 1495.5원까지 상승하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고 장중에는 1499원대까지 치솟으며 1500원 돌파를 눈앞에 두기도 했다. 이후 전쟁 확전 우려가 완화되면서 환율은 1470원대 초반까지 내려오며 단기적으로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국제유가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전날 100달러를 넘어섰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간밤 84달러대, 브렌트유는 88달러대까지 떨어졌다. 주요 7개국(G7)이 전략 비축유 방출 가능성을 언급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쟁이 마무리 수순에 들어갔다"고 언급하며 조기 종식 기대가 커진 영향이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인 호르무즈 해협 역시 현재 정상적으로 선박 운항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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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권에서는 중동 익스포저 자체에 대한 우려는 아직까지 크지 않은 분위기다. 국내 은행들의 중동 익스포저 상당수가 걸프 산유국의 국영기업이나 우량 차주 중심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전쟁 당사국에 대한 직접적인 금융 노출도 제한적인 수준이어서 단기적으로 은행 건전성에 즉각적인 충격이 나타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상황을 낙관하기는 이르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전쟁이 장기화하거나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할 경우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은행권에도 간접적인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것. 시장에서는 국제유가가 10달러 상승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약 10~15원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유가와 고환율이 동시에 나타날 경우 외화 자산과 부채의 원화 환산 규모가 확대되며 은행의 위험가중자산(RWA) 증가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실물경제 충격도 변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국제유가가 100달러 수준에 도달할 경우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1.1%포인트 높아지고, 150달러까지 상승하면 2.9%포인트 상승 압력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기 둔화와 기업 수익성 악화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 은행권의 여신 건전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권 안팎에서는 결국 중동 익스포저 자체보다 유가·환율 변동성이 확대되는 거시경제 경로가 더 큰 위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중동 익스포저 자체보다 더 큰 위험은 고유가와 환율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상황"이라며 "전쟁이 길어질 경우 은행권은 해외 익스포저보다 거시경제 경로를 통해 더 큰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