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노조 원청교섭 요구, 공항·공공·건설 현장으로 동시 확산임금·복지 넘어 직접고용·구조조정까지 교섭 의제 넓어져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선 SK하이닉스까지 교섭 상대로 거론
  • ▲ 노란봉투법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원청교섭 투쟁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 노란봉투법 시행을 하루 앞둔 지난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공공운수노조 원청교섭 투쟁선포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노란봉투법이 10일 시행되자 산업현장이 곧바로 술렁이고 있다. 공항·공공·건설 현장에선 하청노조의 원청 교섭 요구가 본격화했고, 반도체 공사장에선 발주처까지 교섭 상대로 거론된다. 정부는 판단지원위원회와 현장 매뉴얼로 혼선 차단에 나섰지만 산업계는 법 조문보다 사용자성 해석을 둘러싼 현장 충돌이 더 큰 변수라고 보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은 법 시행에 맞춰 원청 교섭 요구 절차에 들어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는 15개 원청 사업장을 상대로 약9600명 규모의 하청노동자가 교섭 요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고, 인천공항과 지방공항 관련 노조들도 각각 인천국제공항공사와 한국공항공사를 상대로 원청 교섭을 요구하겠다고 예고했다. 노동계 안팎에서는 민주노총 전체적으로 13만7400여명에서 14만명 안팎의 조합원이 원청 교섭 요구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임금에서 직접고용까지 … 교섭 의제, 예상보다 넓어질 수 있다

    재계가 가장 경계하는 대목은 교섭 의제가 빠르게 넓어질 가능성이다. 정부와 법조계 해석을 종합하면 산업안전처럼 원청의 구조적 통제가 비교적 분명한 영역은 사용자성 인정 가능성이 높지만, 임금과 복리후생, 성과급, 직접고용 문제까지 어디까지 교섭 의무가 인정될지는 여전히 논란이 남아 있다. 다만 개정법 시행으로 정리해고나 구조조정에 따른 배치전환 등 고용조정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단체교섭 요구가 가능해진 만큼, 노사 충돌의 범위가 과거보다 넓어질 가능성은 분명히 커졌다.

    실제 조선 현장에서는 원청 성과를 하청 처우와 직접 연결하려는 요구가 등장했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에서는 급식업체 웰리브 노동자들이 원청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생산 공정의 핵심 하도급뿐 아니라 급식·지원 업무 종사자들까지 원청 보상체계와의 연동을 요구하는 장면이 나타난 것이다. 노동계는 실질적 지배력을 가진 주체가 책임도 져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산업계는 이런 흐름이 확산하면 원·하청 계약 질서와 비용 부담 구조 전반에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건설사 넘어 발주처까지 … SK하이닉스, 반도체 현장 첫 시험대

    이번 법 시행이 산업계에 던지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반도체다. 민주노총 산하 플랜트건설노조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장 발주처인 SK하이닉스에도 단체교섭을 요구할 계획이다. 시공사나 하도급업체를 넘어 발주처인 반도체 기업을 교섭 상대로 세우겠다는 구상이다. 업계가 이를 민감하게 보는 이유는 반도체가 시간 경쟁 산업이기 때문이다. 공장 착공과 장비 반입, 양산 일정이 조금만 밀려도 고객 대응과 투자 회수, 시장 점유율에 연쇄 충격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건설업 전반의 움직임도 같은 방향이다. 건설노조는 상위 100개 원청 건설사를 상대로 교섭 요구를 추진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안전과 권리 보장이 핵심 의제지만 현장에서는 공휴일 유급수당, 적정 하도급 대금, 처우 개선 요구가 결국 원청과 발주처의 비용 부담 문제로 번질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대형 산업 프로젝트는 발주처, 시공사, 협력업체, 재하도급 업체가 촘촘하게 얽혀 있어, 사용자성 판단 하나가 책임 구조 전체를 흔드는 변수로 작동할 수 있다.

    ◇석화·철강은 구조조정과 충돌 … 노노갈등도 뇌관

    석유화학과 철강 업종은 또 다른 시험대다. 두 업종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수요 둔화, 업황 부진으로 설비 조정과 인력 재배치 압력이 커진 상태다. 이런 국면에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문제가 교섭 의제와 쟁의 대상으로 올라오면, 노란봉투법은 단순한 노사관계 이슈를 넘어 사업 재편 속도를 늦추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산업계는 현대차·기아, 포스코, 현대제철, 한화오션 등 하청 비중이 높은 대기업 사업장 전반으로 압박이 확산할 가능성을 보고 있다.

    재계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노사갈등이 노노갈등으로 번질 가능성이다. 하청노조의 처우 개선이나 직접고용 요구가 커질수록, 원청 정규직 노조와 하청노조 사이에 재원 배분과 고용 안정성을 둘러싼 충돌이 불거질 수 있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판단지원위원회와 설명회, 세미나를 통해 현장 혼선을 줄이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충돌 강도는 매뉴얼보다 사용자성 인정 범위를 누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면서 "노란봉투법의 첫 진짜 시험대는 법 조문이 아니라 공항과 조선소, 석화 공장, 용인 반도체 공사 현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