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비중 30%' 카타르, LNG시설 피격에 "헬륨값 최대 50%↑"중동 데이터센터 지연 땐 AI 서버 수요 꺼져 반도체 공정 차질 불가피국내 산업용 전기요금도 인상 가능성 인플레 가능성이 국채 금리 상승땐 사모펀드사들 자금 경색 빅테크 업체 투자 회수 축소 나서면 시장 '쇼크'
  • ▲ 카타르의 라스라판 LNG 플랜트. /로이터 연합뉴스
    ▲ 카타르의 라스라판 LNG 플랜트. /로이터 연합뉴스
    이란과 미국 간 군사적 충돌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반도체 공급망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원유 운송로가 막힌 데다 반도체 생산에 필수인 헬륨 등 산업용 원료 공급에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최악의 경우 반도체 감산에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여기에 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단숨에 넘어선데 이어 100달러에 달할 경우 한국전력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이 경우 산업용 전기요금이 올라가면 기업들의 부담은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 원가 부담이 커지는 상황에서 중동의 데이터센터 건설이 지연될 경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호황도 한순간에 날라갈 수 있다. 

    미국에서는 사모펀드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중동전 여파로 인플레이션이 심화하고, 이에 따라 국채금리가 상승할 경우 빅테크업체들의 투자 축소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마이크론 주가가 지난 6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6% 이상 폭락한 것도 이 때문이다. 

    8일 관련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지난 4일 카타르 국영 에너지 기업인 카타르에너지는 기존 계약을 더는 이행하지 못하게 됐음을 의미하는 '포스마주르(불가항력)'를 선언했다. 이달 2일 카타르 핵심 액화천연가스(LNG) 가공 시설인 라스라판 공장이 이란의 드론 공격으로 가동이 전격 중단된 데 따른 것이다. 카타르에너지는 카타르 내 모든 LNG 생산을 관리하는 국영 에너지 회사다.

    우리 기업들이 카타르 LNG 생산에 예민한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반도체 생산과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헬륨은 웨이퍼 냉각, 장비 누설 테스트 등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핵심 산업가스로,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헬륨의 국내 수입량 64.7%(2025년 기준)가 카타르산이다. 카타르는 세계 헬륨 생산의 약 30%를 차지할 정도로 핵심 공급처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헬륨의 90%를 카타르에서 조달하고 있어 LNG 생산 차질이 이어질 경우 공급에 직격탄을 입게 된다. 수급 불안이 현실화하면 공정용 가스 단가가 먼저 오르고 시간이 지날수록 제조원가 전반에 압력이 누적되는 구조다.

    산업용 가스 전문 매체인 가스월드는 "카타르에너지의 헬륨 생산 중단으로 가격이 최대 50%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했다. 

    원재료 수급 문제와 더불어 폭등하는 에너지 비용도 반도체 업황의 대형 악재로 부상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면서 국제 유가가 배럴당 90달러선을 넘어섰고, 이는 전력 생산비 증가와 수익성 악화로 연결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핵심 원료 수급 불안과 전기료 인상이라는 '이중고'가 겹치면서 제품 단가 경쟁력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비축유가 208일분이긴 하지만 안심 신호는 아니다. 해협 병목이 길어질수록 운임·보험료·조달 리드타임이 동시에 흔들리고 원유·가스 가격이 오르면 정유·석유화학은 물론 전력비 경로를 통해 반도체 공장 원가에도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든다. 

  • ▲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반도체 공장 내부. /삼성전자 제공
    ▲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반도체 공장 내부. /삼성전자 제공


    24시간 가동이 기본인 반도체 산업은 전력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업종 중 하나다. 반도체 업종의 영업이익률이 아물 높다고 해도, 에너지 쇼크가 장기화할 경우 가격 경쟁력에서 버티기 힘들다. 특히 한국전력의 부채가 200조원에 이르는 상황에서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선다면 산업용 전기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중동 충돌이 장기화할 경우 글로벌 IT 시장 성장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동은 최근 AI 데이터센터 투자를 키우던 지역으로 분류되는데 전쟁 리스크가 커지면 프로젝트 일정이 지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아랍에미리트를 중심으로 향후 10여년 내 7~8GW 데이터센터 구축 계획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차질이 생기면 반도체 공급·수요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장조사업체 IDC는 최근 보고서에서 중동 정세 불안과 에너지 가격 상승 등을 이유로 올해 글로벌 IT 시장 성장률 전망을 기존 10%에서 9%로 낮췄다고 밝혔다. IDC는 메모리 공급 불안과 물류 리스크 확대를 주요 변수로 들었다.

    전쟁이 길어질 경우 방위 산업에서의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수 있다는 분석도 변수로 꼽힌다. 정밀 유도 무기와 드론에는 수십개에서 수백개의 반도체 칩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생산, 데이터센터 인프라, 에너지 공급망이 하나의 생태계로 맞물린 만큼 지정학 리스크가 기술 산업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 정세가 장기화할 경우 헬륨과 에너지 공급, 데이터센터 투자까지 이어지는 연쇄 영향이 현실화할 수 있어 글로벌 IT 산업의 주요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며 생산된 LNG와 헬륨의 해상 운송로도 막혔다. 빠른 시일 안에 카타르 외에 새로운 공급망을 확보하긴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대 헬륨 생산국인 미국이 지난 2021년 중국과의 패권 경쟁 중에 헬륨 수출을 대폭 줄이면서 카타르가 사실상 대체 수입 경로가 되면서다. 

    국내 수입 헬륨 중 미국산 비중은 2020년 58.2%에서 지난해 28.5%까지 감소했다. 미국 지질조사국에 따르면 2020년 1억 입방미터(㎥)였던 미국의 헬륨 수출량은 지난해 3800만㎥로 62% 급감했다. 미국(43%)과 카타르(33%)를 제외한 국가들의 지난해 헬륨 생산량은 러시아(9%), 알제리(5%) 캐나다(3%) 등으로 미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