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I 107달러·환율 1490원대 … 금융위기 이후 최대 변동성'100조+α' 시장안정 카드에도 외환시장 불안 확산선물환 롱포지션 312억→12억달러 … 환율 방어 여력 논란고유가·강달러 겹치면 환율 방어, 외환보유액 감소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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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하고 환율이 1500원 턱밑까지 치솟았다. 정부는 100조원 규모 시장 안정 카드를 꺼냈지만 금융시장의 불안은 외환시장으로 번지고 있다. 고유가와 강달러가 겹치면서 환율 방어와 외환보유액 관리 사이에서 정책 당국의 '줄타기'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9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 초반 한때 1498.9원까지 상승하며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치솟았다. 이는 2009년 3월 12일(장중 1500원)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동 긴장이 확대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위험회피 심리가 커졌고 원화 약세 압력도 동시에 높아졌다는 분석이다.

    국제유가 상승도 환율을 밀어 올리고 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가격은 배럴당 107달러 수준까지 치솟으며 2022년 이후 처음으로 100달러선을 넘어섰다. 브렌트유 역시 100달러를 상회했다. 시장에서는 국제유가가 10달러 상승할 경우 원·달러 환율이 약 15원 상승 압력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고유가와 강달러가 동시에 나타날 경우 원화 약세는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 구조상 유가 상승은 무역수지와 환율에 직접적인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중동 정세가 장기화할 경우 1550원에서 1600원대까지 상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전망도 나온다.

    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되자 정부는 대규모 시장 안정 장치를 다시 가동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금융시장 점검회의를 통해 채권시장 안정펀드와 정책금융 프로그램 등을 묶은 '100조원+α' 규모 시장안정 대응 체계를 강조했다. 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경우 유동성을 신속히 공급해 금융시장 충격을 완화하겠다는 취지다.

    기업 지원 프로그램도 동시에 가동됐다. 산업은행·기업은행·신용보증기금 등 정책금융기관은 총 13조 3000억원 규모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산업은행이 8조원, 기업은행이 2조 3000억원, 신용보증기금이 3조원을 각각 맡는다. 시설·운영자금 공급과 함께 최대 1.3%포인트 금리 감면, 기존 대출과 보증의 1년 만기 연장도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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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시장에서는 정부가 강조하는 100조원 대응이 상당 부분 기존 프로그램을 묶은 '총량(capacity)' 성격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 위기 상황에서 즉각 투입되는 신규 자금 규모는 제한적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유동성 대응 장치는 준비돼 있지만 환율 변동성까지 통제할 수 있는 장치는 아니라는 것.

    환율이 급등할 경우 당국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달러를 공급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외환보유액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현재 외환보유액은 아직 안정적인 수준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6년 2월 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4276억 2000만달러로 전월보다 17억 2000만달러 증가했다. 지난 2월 정부가 30억달러 규모 달러 표시 외평채를 발행한 영향과 운용 수익이 반영된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환보유액 규모보다 실제 개입 여력에는 시장의 의문부호가 그려진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외환당국의 선물환 순매수(롱) 포지션은 1월 말 기준 12억 9400만달러로 전월보다 1600만달러 감소했다. 지난해 5월 약 312억달러 수준이던 포지션이 9개월 연속 감소하며 약 300억달러 가까이 줄어든 셈이다.

    이 지표는 외환당국의 선물환 시장 개입 규모를 가늠하는 대표적인 지표로 꼽힌다. 당국이 그동안 역외차액결제선물환(NDF) 시장을 통한 달러 매도 개입으로 환율 상단을 방어해 왔다는 분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다만 선물환 롱 포지션이 외환보유액 대비 약 0.3% 수준까지 낮아지면서 선물환 개입 여력 역시 줄어든 것 아니냐는 평가도 제기된다.

    한은도 이날 중동상황 점검 TF 회의를 열고 국제금융시장 상황과 국내 금융·외환시장 영향을 점검했다. 유상대 부총재는 "현재 금리와 환율이 중동 리스크로 우리 경제 펀더멘털과 괴리된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며 필요 시 시장 안정화 조치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중동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환율과 외환보유액을 둘러싼 정책 부담이 동시에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당시 원·달러 환율이 1439원까지 상승하면서 외환보유액이 약 4600억달러에서 4140억달러 수준으로 감소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한 외환시장 전문가는 "정부가 강조하는 100조원 규모 대응은 금융시장 유동성 관리 성격이 강하다"며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정책 대응의 중심은 결국 환율 안정 문제로 이동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