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판을 틀 때부터 수상쩍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1월 국토부의 항공정비산업(MRO) 육성 방안에 따라 충북도와 투자협약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이후 국토교통부에 제출할 MRO 사업계획서 작성에 나서는 등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해 7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지시로 '재검토'라는 파행으로 치달으면서 사업 철회설에 대한 의혹이 갈수록 짙어졌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지난달 26일 "사업성이 없다"며 MRO 사업 포기를 공식 발표했다. 아시아나항공이 충북도와 충북 경제자유구역청, 청주시와 함께 MRO 사업을 추진키로 협약을 체결한 지 1년 8개월만의 일이다.

    이로 인한 파장이 적잖이 생기고  있다. 충북도의회 새누리당의원들은 이시종 충북도지사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다. 전상헌 충북경자청장은 이날 무산된 MRO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새누리당 소속 충북도의회 의원들은 'MRO특별위원회'를 구성해 MRO 무산에 대한 책임 추궁을 하겠다며 오는 9일 본회의 상정을 예고한 상태다.

    살펴보면 대부분 MRO 사업 철회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충북 지자체에게만 집중돼 있는 모습이다. 물론 이들 지자체의 책임도 크다. 공동 사업자로서 대응이 너무 안일했다. 하지만 기자가 보기에 아시아나항공의 모양새도 바람직하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이 청주공항 MRO 협약부터 철회에 이르는 과정에서 보인 모습은 전혀 대기업 다운 면모가 아니었다.

    아시아나항공은 대형 국책사업을 한 달만에 체결했다. KAI가 충북과 MOU를 철회한 직후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충북은 부랴부랴 아시아나항공을 끌어 들였다. 아시아나항공은 최대 몇 조원이 투입될 수도 있는 MRO사업 참여 가능성을 불과 한 달 만에 결정했다. 아시아나항공이 급하게 MOU를 체결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돌이켜보면 MOU는 말 그대로 양해각서여서 법적 구속력이 없는 탓에 'MOU만 맺고 사정을 봐가며 언제든 철회하면 그만'이라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였다. 결국 'MRO 철회 후폭풍'은 아시아나항공이 투자 지역 사업기반 등의 철저한 검증 없이 진행하면서 양산한 부작용인 셈이다. 

    아시아나항공의 어정쩡한 태도도 이번 사태의 크기를 키웠다. 충북 경자청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은 줄곧 "도의 입장을 이해하고 있고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라는 말을 되풀이할 뿐 1년 넘게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 충북도지사와 박 회장이 직접 만나 MRO 사업건에 대해 협의할 당시에도 부정적인 기류가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충북이 다른 대안을 검토할 시간과 다양한 선택의 기회를 놓치게 된 이유다.

    이 때문에 충북권에서는 현재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고 있다. 충북민간사회단체총연합회는 지난 7일 아시아나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아시아나의 무책임하고도 신뢰를 저버린 행위는 160만 도민을 우롱한 것이며 충북의 미래 먹거리 창출에 발목을 잡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시아나항공이 사과하지 않으면 금호아시아나그룹 계열사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불매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이번 사태에 대해 어물쩍 넘어가려해서는 안 된다. 이 지사의 입을 통해 기업의 입장을 대변할 일도 더더욱 아니다. 아시아나항공이 'MRO 철회'에 대해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수 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재원이 투입되는 초대형 투자계획이 한 달여 만에 결정된 이유와 박 회장의 재검토 지시 전후의 변화된 사업성 검토안 등을 충북도민에게 소명할 필요가 있다. 아시아나항공도 이번 일의 원인 제공자로서 사태 수습에 힘쓸 것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