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평가 눈치, 쓴소리 내기 어려워검역본부 출신 교수 비중 높아… 일부는 자신이 기획한 연구과제 수행
  • ▲ 역학조사위원회가 분석한 AI 유전자 관련 설명.ⓒ연합뉴스
    ▲ 역학조사위원회가 분석한 AI 유전자 관련 설명.ⓒ연합뉴스

    농림축산검역본부 조류인플루엔자(AI) 역학조사위원회의 무용론이 대두되는 가운데 민간전문가로 참여하는 대학교수가 거수기로 전락하고 있다는 우려가 많다. 때론 쓴소리도 해야 하지만, 정부 연구과제에 발목이 잡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할 수 있다는 이유이다.

    일부 위원은 아예 검역본부 출신 교수로, 정부 연구과제 수주에서 전관예우를 받는다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1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모 의원이 농림축산식품부로부터 받은 2011년 이후 정부기관의 AI 연구용역 발주 현황을 보면 농식품부 24건, 검역본부 25건 등 총 49건이다.

    이 중 과제책임자로서 현재 역학조사위 AI분과위원을 맡는 사람은 총 4명이다. AI분과위 전체 위원 32명 중 대학교수는 절반인 16명이다. 민간전문가로 참여하는 대학교수의 4분의 1이 정부가 발주한 연구과제의 책임자로 돼 있는 것이다.

    특히 현 위원 3명은 내년이나 후년까지 연구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처지다. 앞으로 연구용역비나 과제 평가 등에서 직간접적으로 발주기관인 정부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민간전문가로 참여하는 대학교수들이 정부 연구과제에 발목을 잡혀 AI분과위에서 쓴소리를 내기 어려운 구조라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지난해 12월 중순께 열렸던 AI분과위의 경우 전체 교수 중 7명이 사전에 참석 의사를 밝혔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는 농식품부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4명도 포함됐다. 참석 예정인 교수의 과반이 정부 연구용역에 연루된 상태였다.

    역학조사위 구성을 보면 검역본부 관계자 2명을 비롯해 한국오리협회·대한양계협회 등 생산자단체와 축산과학원, 국립환경과학원, 질병관리본부 등 공기관 위주로 짜졌다. 검역본부 발표내용을 객관적인 처지에서 평가·비판할 수 있는 구성원은 사실상 민간그룹인 대학교수가 유일하다.

    가뜩이나 역학조사위 활동은 현장 역학조사나 검증과정 없이 검역본부의 발표내용을 서면으로 검토만 하는 수준에 그쳐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사고 있다.

    민간전문가인 교수들이 검역본부 공무원의 의견을 합리화해주는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제기되는 가운데 쓴소리를 하고 싶어도 정부의 연구과제 수주나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의 교수가 적잖은 셈이다.

    일부 교수는 아예 검역본부 출신으로 알려졌다. 검역본부 근무 경력을 밑천 삼아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마당에 비판이 필요할 때 친정을 향해 날을 세울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더욱이 이들 검역본부 출신 교수는 정부 연구과제 수주에서 전관예우를 받는다는 의혹마저 제기된다.

    AI분과위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A교수의 경우 2011년 이후 농식품부 발주 연구용역과제를 3개나 수주했다. 2013~2016년 고병원성 AI 병원성 관련 연구과제, 2014~2015년 백신 도입 관련 연구과제, 2016~2017년 백신 접종 연구과제 등을 잇달아 맡았다. 2013년 이후 끊임없이 정부 연구용역과제를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검역본부 출신 B교수도 2013~2015년, 2016~2018년 잇따라 방역 관련 연구과제를 따내 책임자로서 연구를 수행 중이다.

    AI분과위 한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제출한 연구과제 내역에는 과제책임자만 나와 있어 공동연구에 참여하는 사례까지 포함하면 AI분과위 내에서 정부 사업에 얽혀 있는 교수는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검역본부 발표내용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며 "일부 교수는 아예 자기가 기획한 연구과제를 정부 발주 형식을 빌려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