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저가 공세 이은 첨단기술 빠른 추격에 韓 '비상'美 통상환경 변화·국내 정치 불안정 따른 리스크↑고환율 이어지면서 반도체 철강 석유화학 등 줄비명
  • ▲ 반도체 생산라인. ⓒ뉴시스
    ▲ 반도체 생산라인. ⓒ뉴시스
    한국경제의 '대동맥' 격인 반도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등 기간산업이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중국 저가 공세에 미국 신(新)행정부 출범에 따른 통상환경 불확실성 확대, 국내 불안정한 정치 상황까지 겹치면서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산업계에선 글로벌 선두격인 반도체나 자동차와 같은 우리 기간산업은 이제 중국 등으로부터 크게 위협받는 처지이고, 석유화학이나 철강과 같은 전통 산업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한다. 우리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큰 산업인 만큼 회복 불능의 지경에 이르기 전 정부와 업계가 손잡고 경쟁력 강화 대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우리 경제를 최선봉에서 이끄는 반도체 산업은 중국 기업의 공세가 매섭다. 중국 최대 메모리 반도체 제조사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가 최신 규격의 메모리 제품인 'DDR(더블데이터레이트)5'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간 구형인 DDR4 위주로 생산해 왔던 중국 업체가 시장 주류인 고부가제품 DDR5 생산에 나서면서 위기감이 감돈다. 

    CXMT는 2019년 중국 최초로 DDR4를 생산했다. DDR5는 SK하이닉스가 2020년 세계 최초로 제품을 출시한 것으로 4년만에 추격에 성공한 셈이다. 앞서 DDR4는 중국이 생산 능력을 확대하며 물량공세를 펼쳐 사실상 중국 텃밭이 됐고 저가 공급으로 가격 하락을 주도했다. CXMT가 DDR5 생산 능력을 확대할 경우 DDR5마저도 가격 하락 압박이 높아지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을 빼앗아 수익성을 악화시킬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반도체와 함께 양대 산맥격인 자동차 산업 역시 중국의 공세가 거세다. 현대·기아차의 하이브리드 수출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30만대를 돌파하는 등 북미 시장 등에서 수출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 BYD가 올해 들어 테슬라를 제치고 전기차 판매 1위를 기록하는 등 빠르게 글로벌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BYD는 내년 진출 시장으로 한국을 공식 지목해 중국 전기차 공세가 본격화할 태세다. 

    BYD가 빠르게 성장하며 경쟁에서 앞서나가자, 세계 자동차 7,8위인 일본 기업 혼다와 닛산이 합병 논의에 나섰다. '차이나 쇼크'에 완성차 업체가 합종연횡에 나서는 등 생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합병이 성사되면 도요타, 폭스바겐에 이어 세계 3위 자동차 회사로 올라서고, 세계 3위의 생산량으로 2년 연속 3위를 유지했던 현대차그룹은 4위로 밀려나게 된다. 현대차그룹은 이들 업체와 양산 차 라인업이 비슷해 미국과 유럽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될 전망이다. 

    석유화학과 철강은 그야말로 중국발 저가 수출로 생존 기로에 놓였다. 국내 대표 석유화학 기업으로 꼽히는 LG화학·롯데케미칼·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등이 올해 3분기 모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유일하게 흑자 기조를 이어간 금호석유화학 역시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22.7% 축소됐다. 글로벌 경기 불황 속 중국 저가 공세가 이어지고 중동과 인도까지 새 경쟁자로 떠오른데다 고환율로 원재료 급등까지 겹치며 수익성은 악화일로다. 단일 규모로 세계 최대 화학단지인 여수 석유화학단지에서는 생존을 위한 공장 가동중단 사태도 잇따르고 있다.

    철강 역시 중국의 공급과잉에 따른 저가 수출 공세에다 내수 부진까지 겹치며 혹독한 한 해를 보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한국의 중국산 철강수입은 2020년 600만톤이었지만 올해는 9월까지 900만톤을 돌파했다. 반면 올해 1~9월 조강(쇳물) 생산량은 4764만톤으로 2010년 이래 가장 낮았고 공장가동률도 포스코 85%, 현대제철 84%로 최근 3년 새 최저 수준이다. 이에 국내 철강사들은 중국산 후판에 이어 열연강판에 대한 반덤핑 제소도 검토 중이다. 

    이정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중국의 공급과잉은 가격하락, 재고압박, 공장 가동률 저하 등을 초래하고 해외시장을 교란해 수입국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며 "공급과잉이 발생했는데도 중국 기업들은 일부 산업에서 최대 생산능력과 설비가동률을 유지할 것으로 계획해 향후 공급과잉 문제는 전세계적으로 더욱 심화·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런 상황 속 비상계엄 여파와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피즘' 강화로 인한 불확실성 확대는 기간산업 전망을 더 어둡게 하고 있다. 지난 11월 초 트럼프 당선 이후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비상계엄·탄핵 등 국내 정치적 불안 영향으로 고환율 리스크를 키웠다. 

    환율 상승으로 인한 원가 압박과 해외 생산기지 건설 비용 급증 등을 맞딱드리게 된 것이다. 수출기업의 경우 고환율 국면에서 환차익을 볼 수 있지만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는 부품 공급 협력사들은 고환율 부담을 떠안게 돼 제조업 기반이 취약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더욱이 트럼프 2기 출범 이후 전 세계적인 관세전쟁이 본격화할 조짐인데, 한국은 탄핵 여파로 트럼프 2기 대비를 위한 컨트롤타워도 부재한 상황이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는 최근 경제통상 리포트를 통해 "최근 중국기업의 해외진출 가속화로 세계 시장에서의 한중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돼 우리 기업의 사전 대비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트럼프 2기 고관세 시행 전 중국기업의 '밀어내기' 수출,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한 저가 공세가 예상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