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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케팅 버즈워드] 크라우드컬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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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편에서 계속)
소셜미디어 시대 이전부터 브랜드들은 문화적인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다. 브랜딩은 근대적 의미의 기업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명을 이루기 시작하면서부터 모든 집단과 단체, 심지어 개인은 일종의 브랜딩 활동을 지속해왔다. 특히나 영향력 있는 집단이나 단체의 브랜딩 활동은 곧 문화활동과 직결된다.
한 예로 카톨릭 교회가 있다. 카톨릭 교회는 기존 토착신앙과 로마교에 기독교 사상을 융합해 당시 유럽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치는 문화세력이 됐다. 유럽의 문화유산들 중 상당수가 카톨릭 교회를 ‘선전’하기 위해 제작된 것들이었다. 교황들은 예술가들을 후원하면서 그들에게 ‘카톨릭 브랜디드 콘텐트’를 의뢰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나 제단화들은 성당 후원자들의 가문이 얼마나 독실하면서도 부유한지 선전했다. 구전밖에는 별다른 매체가 없었던 시절, 글을 모르던 일반대중들에게 성당의 내벽과 외벽은 카톨릭 신앙과 지역유지들을 알리기 위한 완벽한 ‘매체’였다.
카톨릭 교회는 또한 ‘스토리텔링’을 브랜딩에 적절히 활용해왔다. 대다수 사람들은 순교자나 성인들이 일으킨 기적을 믿었으며, 십자군전쟁 때 가져온 ‘십자가 조각’이나 성인의 유골 일부에 특별한 힘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연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을 떠나 연옥에 머무르고 있는 친인척들을 위해 헌금하게 했다. 헌금함에 떨어지는 쨍그랑하는 돈 소리가 천국 예약의 소리라고 했다. 이렇게 ‘팩트체킹’이 불가능한 영역에 '과감한 스토리텔링'을 도입함으로써 카톨릭교회는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의 브랜디드 콘텐트는 당시와 매우 다른 상황이다. 석유화학물질 덕분에 비싼 안료를 사지 않아도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고, 상업과 제지기술발달 덕분에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게 되면서 스폰서 없이도 예술이 가능한 시대가 열렸다. 주문제작방식이었던 예술이 선제작 후판매 방식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슈베르트나 고흐 같은 '가난한 예술가'의 이미지도 그런 수급방식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근래 소셜미디어가 보급되면서 기존의 문화콘텐트 수급체계는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창작의 주도권이 일반대중의 손으로 넘어갔다. 세계최고의 인기가수도 유튜브에서만큼은 자기가 하는 컴퓨터게임을 보여주는 평범한 청년을 이기지 못한다.
1971년 집행된 코카콜라 "힐탑(Hilltop, I'd like to buy the World a Coke)" 광고
소셜미디어가 보급되기 전까지만 해도 브랜드들에게는 이런 대중문화를 이해하고 소화한 후 자기 것으로 만들 시간이 있었다. 가령 코카콜라는 미국인들 사이에 반전 시위가 극심하던 1971년 평화를 강조하는 전설적 광고 “세계에 코카콜라를 사주고 싶어요(I’d Like to Buy the World a Coke)”로 단번에 대중문화의 리더가 됐다. 80년대 나이키는 미국 주류매체에서 골칫덩이로 취급되던 흑인들을 스포츠영웅으로 묘사함으로써 일반대중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카우보이가 섹시한 남자의 대명사가 된 것, 남부문화가 미국의 주류문화처럼 인식되게 된 데는 매체에서 다루지 않은 일반 대중의 정서를 제대로 파악했던 말보로와 잭다니엘 위스키의 공이 크다.
지금의 브랜드들은 사면초가다. 2016년 셰어어블리(Shareablee)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미국에서 브랜드의 포스팅을 본 650만 명 중 반응을 보인 사람은 7%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출처). 사람들은 추상적인 개념보다는 진짜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브랜드들은 오래 전부터 이것을 알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탤런트 김혜자 씨는 오랜 세월 특정 조미료회사의 분신처럼 여겨졌으며 이것은 탁월한 전략이었다. 주류매체였던 텔레비전과 신문이 위력을 잃은 지금은 SNS의 스타인 '인플루언서'를 기용해보려 애쓴다.
그러나 인플루언서들은 SNS 상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확고한 자신의 아이덴티티 덕분에 인기를 얻은 것이다. 그들은 연기자도 아니며 브랜드 옹호자들도 아니다. 이따금 인기 있는 인플루언서가 브랜드와 합작해 콘텐트를 만든 것을 보면, 그토록 창의적이고 활기차던 사람들이 어쩐지 어색하고 볼품없이 느껴질 때가 있다.
당연한 일이다. 잘못된 인플루언서 마케팅은 인플루언서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모두 망칠 수 있다. 더욱이 인플루언서는 특정 '마이크로컬처'의 분신이며, 인플루언서의 아이덴티티를 훼손하는 것은 곧 그 마이크로 컬처를 공유하는 집단의 아이덴티티를 무시하는 처사다. 지금은 대기업이나 매체 없이도 사람들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다. 그리고 기업이나 매체가 ‘사람들’을 이용해 성공해야 하는 시대다.
스포츠브랜드 언더아머는 남성용이라는 인식을 타개하기 위해 지젤번천을 기용해 소셜미디어 이용자들의 참여를 독려한 캠페인 '나는 원하는 것을 의지한다(I Will What I Want)"를 집행했다.
70년대처럼 브랜드가 문화적 주도권을 쥐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미국의 스포츠웨어 브랜드 언더아머(Under Armour)는 기존의 남성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사회에 만연한 여성권리에 관한 문제를 제기했다. 슈퍼모델 출신 기업가 지젤번천과 통념을 벗어난 몸매의 발레리나 미스티 코프랜드(Misty Copeland)를 이용한 캠페인이 바로 그것이다. 언뜻 기존의 명사 마케팅(Celebrity Endorsement Marketing)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언더아머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문화를 제시하거나 주도하지 않았다. 이미 대중을 사로잡고 있던 '정치적으로 올바른' 양성평등관에 적절하게 '편승'했을 뿐이다.
정말로 매체환경은 달라졌다. 사람들의 콘텐트소비 양태가 달라졌다. 대중매체시대가 인공파도수영장이었다면, 소셜미디어시대는 대양(大洋)이다. 크고 둔한 배는 파도에 맞서다 부서질 수 있다. 크라우드컬처라는 크고 작은 파도를 타넘고 헤쳐나가려면, 브랜드들은 대형바지선이 아닌 날렵한 '서퍼'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