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기평, 근시안적 조사 지적… 반대 논리였던 일본은 사업 확정해수부 "최소 아라온호 이상 돼야… 아니면 차라리 원점 재기획"
  • ▲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연합뉴스
    ▲ 쇄빙연구선 아라온호.ⓒ연합뉴스

    제2 쇄빙연구선 건조사업 예비 타당성조사(이하 예타)가 결국 차기 정부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예타 수행기관인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과기평)은 결론 도출을 세 차례나 미루면서 15개월을 허송세월한 셈이 됐다.

    일각에서는 과기평의 예타 조사가 근시안적인 안목에서 지엽적으로 이뤄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27일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에 따르면 과기평이 이달까지 제2 쇄빙선 예타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기대됐지만, 결론 도출이 어려워 보인다.

    예타를 맡긴 기획재정부 관계자도 "현재 검토 중이며 언제까지 결론 낸다고 확정된 건 없다"고 밝혔다.

    과기평은 지난해 1월25일부터 조사를 벌여왔다. 그동안 세 차례나 조사 기간을 연장하며 보완 작업을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도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판가름은 사실상 차기 정부에서 짓게 됐다. 사업은 15개월 동안 제자리걸음 중이다.

    결론 도출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과기평의 예타 조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래에 대한 투자 사업을 현재의 비교판단 잣대로만 저울질하려 한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게 과기평이 판단 근거로 내세웠던 일본과 중국의 쇄빙선 보유 현황 비교자료다.

    과기평은 경제 대국인 일본도 쇄빙선을 1척만 보유하고 있다며 우리나라가 북극 연구전용 쇄빙선을 갖출 필요가 있느냐는 견해를 펴왔다. 일본은 남극용 쇄빙선 1척과 북극용 내빙선(얼음에 부딪혀도 견딜 수 있는 배) 1척을 각각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은 지난 2월 제2 쇄빙선 건조사업 발주를 확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은 쇄빙연구선 대신 위성으로 북극 연구를 진행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쇄빙선을 추가로 건조하기로 했다. 제2 쇄빙연구선에 대한 미래 투자 가치를 높게 본 것이다.

    중국 사례도 비슷하다. 과기평은 중국이 쇄빙연구선을 건조하고 있어 총 2척을 보유하게 되지만, 기존 배는 쇄빙화물선이었다며 엄밀히 말해 쇄빙연구선은 처음으로 건조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중국이 건조하는 쇄빙연구선은 규모가 1만2000톤급이다. 중국은 세계 각국이 경쟁적으로 북극 진출에 나서는 '콜드 러쉬' 상황에서 첫 연구선을 1만2000톤급으로 설정한 것이다. 중국이 기존에 보유한 화물선도 규모가 1만5000톤급이다.

    한 번 건조하면 20~30년은 써야 하고 돈도 적잖이 들어가므로 장기적인 안목에서 중대형선으로 투자하는 셈이다.

    반면 과기평은 애초 제안된 1만2000톤급 쇄빙연구선을 중간조사 결과에서 5000톤급으로 반 토막 냈다가 해수부가 최소 아라온호 수준이 아니면 아예 예타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겠다고 하자 다시 원안 검토로 돌아오는 등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이다.

    과기평이 요구하는 보충자료도 사실상 형식적인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과기평은 제2 쇄빙선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도 극지연구소만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해수부에 제2 쇄빙선 활용계획 보완을 요구하는 이유다.

    문제는 원안대로 예타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연구시설·자재 등의 구성도 유동적일 수밖에 없어 활용계획을 구체적으로 짜기가 녹록지 않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과기평은 구체적인 보완 내용을 요구하지만, 구체적인 활용안을 제시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사업을 반대하기 위해 사실상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동안 해수부에서 제2 쇄빙선을 기후변화 연구 등에 활용하겠다고 제시하면 과기평은 기후변화 연구를 굳이 극지에서 할 필요가 있느냐고 딴지를 걸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수부 한 관계자는 "그나마 국가계획인 제3차 남극활동진흥기본계획에 제2 쇄빙연구선을 범부처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게 앞으로 평가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부연했다.

    일각에서는 과기평이 애초 제2 쇄빙선 예타를 탈락시키려 했다가 사업 추진의 필요성이 인정돼 거듭 탈락 위기를 모면하면서 내부 조율에 애를 먹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제기된다.

    해수부는 제2 쇄빙선 규모와 관련해 최소 아라온호와 동급인 7500~8000톤급을 수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으로 잡은 상태다. 예타 결과가 준중형급에 그친다면 예타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방침에 변화가 없다.

    해수부 관계자는 "과거 해양과학조사선 이사부호가 예타를 통과할 때도 한 차례 재기획 과정을 거쳐 재신청한 사례가 있다"면서 "현재로선 답답하지만, 과기평이 결론을 낼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