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말 1차 컷 오프… 숏 리스트 포함 유력
한수원 포함 에너지공기업 새 돌파구 찾아야

  •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UAE 바카라 원전 기공식에 참석했다.  ⓒ 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UAE 바카라 원전 기공식에 참석했다. ⓒ 청와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시즌2의 막이 올랐다. 에너지 공기업인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새 수장을 맞으면서 백운규 산업부 장관 홀로 고군분투하던 해외원전수주에 다시 힘이 실리는 모양새다. 한국전력은 넉달 간 공백을 깨고 김종갑 전 지멘스 사장이 사장으로 취임했다. 한국수력원자력 역시 정재훈 전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을 사령탑으로 맞았다. 

지금까지 한전과 한수원은 비교적 발전단가가 저렴한 원자력을 기반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한수원이 원자력을 통해 전기를 생산하면 한전이 100% 사들여 공급하는 방식이다. 원전을 많이 가동하면 할수록 양쪽 모두에 수익이 커지는 구조였다. 

하지만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두 에너지 공기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됐다. 
국내 신규원전 건설은 금지됐고 기존 노후 원전의 수명연장도 없던 일이 됐다. 새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이다. 현재로서는 사우디·체코 등을 대상으로 한 '원전 수출'이 가장 강력한 답으로 꼽힌다.

백운규 김종갑 정재훈의 하모니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 사우디, 이달 말 13조원 원전 예비사업자 발표 

22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르면 4월 말 늦어도 5월 초까지 원전 건설을 위한 숏리스트(예비사업자)를 발표한다. 

사우디는 1400MW급 원전 2기를 짓는 사업을 추진하는데 사업비 규모는 최소 12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3조원에 달한다. 사우디는 오는 2040년까지 원전 총 16기를 짓는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 번 사업자로 선정되면 향후 수주전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다. 

사우디 원전 사업권을 둘러싸고 우리나라의 한국전력을 포함해 러시아 로사톰, 프랑스 아레바(EDF), 중국 CGN, 미국 웨스팅하우스 등이 경쟁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한전이 3곳으로 압축될 예비사업자에 포합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완공된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시공 능력 등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고리 원전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탈원전'을 선언하고 있다. ⓒ 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고리 원전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탈원전'을 선언하고 있다. ⓒ 청와대


  • 지금껏 한전과 한수원은 원전수출에 한걸음 물러서 있었다. 원전 수출을 총괄했던 한전과 한수원의 수장이 공석이다 보니 수주전에 있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급기야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월과 3월 각각 이뤄진 사우디아라비아와 UAE 원전 세일즈에 나홀로 오르기도 했다. 

    현지시간 18일부터 24일까지 미국 워싱턴 D.C.와 뉴욕을 방문한 백 장관은 특히 1차 후보군(숏리스트) 발표를 앞둔 사우디 원전 수주를 위해 양국 원자력업계가 협력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앞서 백 장관은 미국 정부와 에너지 신산업, 원자력발전소 분야 협력 강화를 모색하겠다면서 "리스트에 들어가면 합종연횡, 컨소시엄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고 말한 바 있다.

    지금은 한미 양국이 서로 숏리스트에 들어가려고 경쟁하는 상황이지만, 숏리스트에 포함된 이후에는 협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관련업계에서는 이번 수주전이 한전 김종갑 사장과 한수원 정재훈 사장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문재인 정부는 '국내 탈원전·해외 원전수출'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써왔다. 국내 탈원전에 대한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원전 수출을 이뤄내지 못할 경우, 탈원전 정책으로 인한 국제적 신뢰 하락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 SK하이닉스式 수술법… 한전에서도 먹힐까  

    동시에 두 수장에 거는 기대감이 상당하다. 

    한전은 지난해 12월 영국 뉴젠 원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앞으로 인수 협상을 벌여야 한다. 정부가 김종갑 사장을 임명한데는 향후 한전의 해외 수주 역량 확대 등을 감안한 인사라는 평가가 많다. 김 사장은 산업부 1차관 출신으로 SK하이닉스 사장, 한국지멘스 회장을 지냈다. 외국계기업 CEO를 거친 첫 한전 사장이다. 

  • ▲ 정부가 김종갑 사장을 임명한데는 향후 한전의 해외 수주 역량 확대 등을 감안한 인사라는 평가가 많다.  ⓒ 한전
    ▲ 정부가 김종갑 사장을 임명한데는 향후 한전의 해외 수주 역량 확대 등을 감안한 인사라는 평가가 많다. ⓒ 한전


  • 경영 능력도 높이 인정받고 있다. 과거 SK하이닉스 사장 시절 반도체값이 하락하자 비상경영체제로 전환하고 임원수를 40% 감원했다. 무급휴가, 임금삭감을 단행하면서도 R&D투자를 확대해 회사의 내실을 강화했다. 

    김 사장은 한전의 현재 상황도 '위기'로 인식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매출 59조8149억원, 영업이익 4조9532억원을 올렸다. 매출은 전년대비 0.6%P 줄고 영업이익은 58.7%P나 감소했다. 

    그는 취임사에서 "수익성이 구조적으로 개선되는 시점까지 비상경영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원전 수출을 확대하자"고 했다. SK하이닉스에서 성공한 체질변화를 한전에 적용하려은 움직임이 뚜렷하다.  

  • ▲ 한수원 정재훈 사장은 취임식에는 노타이와 무선마이크를 찬 채로 등장해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면서 '에너지 대전환'을 역설했다. ⓒ 한수원
    ▲ 한수원 정재훈 사장은 취임식에는 노타이와 무선마이크를 찬 채로 등장해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면서 '에너지 대전환'을 역설했다. ⓒ 한수원


  • 정재훈 한수원 사장의 행보는 파격적이다. 그는 지난 6일 취임한 뒤 곧장 10여명의 실장 및 처장 인사를 단행했다. 통상 취임식날 비서실 관련 인사를 진행해왔던 것과는 다른 행보다. 취임식에는 노타이와 무선마이크를 찬 채로 등장해 "변화를 두려워하지 말자"면서 '에너지 대전환'을 역설했다. 

    강력한 리더십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한수원은 현재 공석인 상임이사 등 임원 인사를 위한 준비 절차에 들어갔으며 지난해 이뤄지지 못한 정기인사도 이르면 내달 중에 단행될 전망이다. 한수원 내부에서는 지난해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사태를 겪으며 추락한 직원들의 사기가 올라설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는 실적 악화에 따른 경영 성과급까지 뚝 떨어졌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현재 원전 가동률이 60%대에 불과한데 정부와 소통을 통해 적정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 숙제도 남아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