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입김대로 재계 겨눌 수도정관변경 통과 현실적으로 어려워
  • 국민연금이 한진칼에 대한 경영참여형 주주권 행사를 결정하면서 국민연금이 '제 2의 사정기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세부적인 기준도 없이 대통령의 뜻에 따라 성급하게 기업 경영개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재계에서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지배하는 '연금사회주의'로 흐르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나온다. 특히 이번 결정이 문재인 대통령 발언 이후에 뒤집혔다는 점에서 이러한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 정권 입김대로 재계 겨눌 수도
     
    지난달 23일 문재인 대통령은 공정경제추진전략회의서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위법에 대해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적으로 행사할 것"이라고 사실상 가이드라인을 던졌다. 

    같은 날 국민연금 수탁자전문위원회는 한진칼·대한항공에 대한 경영 개입에 반대 입장을 결정했다. 하지만 이들은 엿새 만에 다시 회의를 열었고 의견을 수정하지는 않았다.

    대신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수탁자위 결정을 따르겠다던 입장을 뒤집고 한진칼에 한해서만 경영개입을 선언했다. 

    국민연금은 한진칼 지분을 7.34% 보유한 3대 주주다.

    국민연금은 한진칼에 이사가 회사 및 자회사 관련 배임·횡령 등으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즉시 사퇴한 것으로 간주하는 정관변경안을 8일까지 제안하기로 했다. 

    기금위가 이러한 결론을 낸데는 구조적으로 정부 측 인사 비중이 높은 탓에 있다. 

    기금위는 위원장이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정권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또 국민연금 이사장 역시 복지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임명되나 대통령의 인사권 내에 있다.   


    ◇ 정관변경 통과 현실적으로 어려워  

    한진그룹은 국민연금이 정관변경을 요구하면 향후 절차에 따라 이사회에서 관련 내용을 논의할 계획이다. 

    다만 통과를 위해선 '주주 2분의 1 이상 참석, 3분의 2 이상 동의'가 필수적이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28.93% 지분을 보유해 10.71%를 보유한 행동주의 사모펀드 케이씨지아이(KCGI)가 국민연금의 손을 들어준다고 해도 국민연금 요구가 주총에서 통과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재계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결정이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경영에 개입하는 일이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말 기준, 국민연금이 지분 5~10% 지분을 갖고 있는 기업만 해도 213곳에 달한다. 또 1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79곳이나 된다.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이 언제든지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다음 차례가 될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이들 기업 중 삼성전자, 카카오, 현대차 등은 특수관계인 지분이 국민연금 지분과 외국인 지분을 합친 것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이 해외기관이나 행동주의펀드 등과 뜻을 함께할 때는 이들 기업이 경영권이 언제든 무너져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영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주권 행사에 발맞춰 정치적 입김에서 벗어날 독립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금운용위를 복지부에서 분리해 경영권 행사의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정권, 정치권의 영향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면서 "국민연금의 수익성보다 정치논리가 우선돼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